사연 많은 독일어 학원

이방인들의 이야기 집합소

by 문맹

수년 전의 일이다. 매 번 집에서 홀로 독일어 공부를 시도하다가 망하기를 10쯤 반복하던 어느 여름, 커다란 결심을 했다.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독일어 학원을 제대로 다녀보자. 즐겁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외국인 친구들과 한 두어 달 독일어 학원을 다녀 봤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남은 것은 동네 친구만 국가별로 주구리 장창 생겨서 올림픽을 개최해도 될 만큼 술친구만 잔뜩 생겼다. 친구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함께 모여서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일어로, 심지어 새로 만난 친구 나라말까지 배워가며 아무래도 넓은 오지랖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끝났다. 이건 아니지...


나의 마지막 도전은 뻔한 회화 학원에 가서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 취미로 공부하는 사람들과 모닝커피를 손에 들고 슬렁슬렁 공부하는 것을 반드시 넘어서야만 했기에 힐링 독일어 수업이 아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목숨 걸고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입시반에 등록하기로 했다. 회화는 서툴지만 독일에 오래 살아서 대충 읽고 듣기는 되지만 입시반(C1)에 들어가기에는 택도 없는 실력이다. 그래서 그 하나 아래쯤의 레벨(B2)을 목표로 삼았다. 급하게 결심했기에 새로운 어학코스가 시작되기 딱 하루 전 입시학원을 찾아갔더니 이미 반 배정이 다 끝난 후였다. 한두 명의 빈자리는 있으니 당장 개별 레벨테스트를 받아 보라고 한다. 학원 등록을 책임지고 있는 50대가량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자기 옆의 책상으로 나를 안내했고 민망하게 그 직원 바로 옆에 앉아 시험을 봤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대부분이 객관식이라 30분 안에 끝냈다 - 시험의 제국 출신답게 객관식은 알면 답이 바로 나오고 모르면 그냥 찍어야 하는 것이라 시간을 낭비하며 질척이며 시험을 보지 않는다. 문법은 답은 기억 안나도 많이 본 유형의 문제들이라 빨리 풀었고, 읽기도 어디서 많이 본 내용들만 나와서 대충 아는 것 위주로 풀고 모르는 것은 재빨리 찍어 해결했으며 쓰기 시험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깊이 생각할 건덕지가 없었던지라 초스피드로 끝내버렸다.


직원은 매우 만족해했다 - 주어진 시험 시간의 딱 절반만 사용하여 시험을 끝낸 나의 이 이례적인 열의 없음이 자신의 업무를 편리하게 만든 것이 흡족했던 모양이다. 만연의 미소를 띠며 내 시험지를 그 자리에서 바로 채점을 해주었고 나의 실력은 겨우 중급반 끄트머리나 갈 수 있는 정도로 판명되었다. 내가 가고 싶던 최상위 입시반에 들어가긴 모자란 점수가 나왔기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실력에 맞는 반에 들어가야지 생각하고 있는 참에 그녀가 갑자기 나를 도발했다. 읽기 시험에서 틀린 문제 몇 개를 지적하면서 왜 이런 것을 틀렸냐고. 레벨테스트에서 틀린 것에 취조를 당하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뭐라도 받아쳐야 할 것 같아서, 2번을 답으로 할까 하다가 그러면 답이 너무 뻔한 것 같아 3번으로 썼다 했더니 그녀 왈, 시험을 이렇게 빨리 마쳤는데 읽기 부문에서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린 것이 말이 안 된다면서 실력 좋은 너의 작은 실수(?)인 것 같단다. 그리고는 틀린 문항 몇 개를 갑자기 '맞는 것으로' 채점해 주었다. 대체 이건 무슨 일이지? 하고 이 의심스러운 관용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나를 최상위 반으로 배정시켰다. 진실은 나의 레벨에 맞는 반은 이미 수강생이 꽉 차서 최상위반에만 자리가 남았었고 뒤늦게 온 나를 받아서 얼렁뚱땅 그 빈자리를 채워서 학원의 실적을 올린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실력은 안되지만 등록담당 직원의 빽(?)으로 원하는 반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망신은 가서 당하면 되고 일단 독일대학 입시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빡세게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다음 주부터 시작된 독일어 시간. 역시 최상위 반이라 다르다. 학생들은 자기소개를 하는데 거침이 없다. 초, 중, 고급반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자기소개는 수십 번쯤 해 보았음이 명백한 훌륭한 독일어 실력과 자연스러움과 자신감을 장착하고 있다. 나도 질세라 다 틀리는 말로 새로운 학생이고 창피하지만 독일 산지 오래되었으며 이번에는 꼭 독일어를 정복해야겠기에 도와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했다. 나를 바라보는 젊은 학생들에게서 스쳐가듯 동정의 눈빛을 볼 수는 있었으나 내 코가 석자이니 스스로 알아서 아줌마의 길을 가시라는 분명한 메시지도 읽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학원 수업의 자리는 지정석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항상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독일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압둘과, 튀니지에서 온 학생으로 독일대학교에 입학하고자 고군분투 중인 학생, 압델 사이에 앉았다. 시리아인인 압둘은 독일에 온 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말하는 속도가 거의 원어민에 가까웠고 압델은 물론 말도 잘하지만 수업시간에 하는 대부분의 연습문제의 정답을 다 맞힐 정도로 문법실력도 뛰어났다. 역시 당장 대학을 가야 하고 직장을 잡아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과업의 무게는 나처럼 '한 번 해볼까' 하고 온 아줌마와는 달랐다. 망신살이 뻗히더라도 이들 사이에 끼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늘 초중급 교재 문법책을 사서는 1과, 2과 (똑같은 부분, 명사나 관사)만 시작하고 중도 포기하고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짓만 10년을 하다가 갑자기 한 번도 다루어본 적 없는 고급문법의 그것도 뒷부분을 따라가자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업의 골자는 잡겠는데 자잘한 문법들을 모르니 (예를 들어 독일어 관사, 동사활용 등) 답을 알아도 도저히 매끈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가 없고 연습문제는 찍으면 맞고 열과 성을 다해서 열심히 풀면 틀렸다. 틀린 것의 이유에 대해 압둘과 압댈에게 질문을 하면 선생님께 조용하라고 야단맞아 가면서도 내가 묻는 것에 성실하게 답변해 준다. 아~~~ 고맙기 이를 때 없는 젊은이들... 20명 사이에서 문법실력은 꼴찌인 듯싶고 성실성도 거의 꼴찌였다 - 집에 와서도 산더미 같은 숙제를 못하는 날이 더 많았으며, 식탁에 앉아서 징징 짜면서 어려운 숙제를 하면서 딸, 아들, 남편까지 동원시켰다. 이거 풀어봐. 답이 왜 c야? - 원어민들의 문제는 정답은 알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줄도 모르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모국어를 지껄여대면서 잘난 척 삼매경에 빠져 자격도 없는 선생질을 한다는 점이다... 가족에게 운전은 배우지 말라 했던가? 언어도 추가다!


독일어 학원에서 그래도 좀 어른 다운 짓을 한 것은 선생님이 학생들의 의견 (문법이나 독일어가 아닌)을 물으셨을 때이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꺼운 얼굴의 소유자로서 클래스를 위해(?) 총대를 메고 대부분 내가 답변을 했다. 독일어를 잘해서가 절대로 아니라 인생을 길게 살면 젊은 사람들보다 답변하기 쉬운 그런 질문들이 있지 않는가. 나의 역할은 그런 인생 이야기들에 대해 답변을 하고, 어설픈 독일어로 이 메마른 수업시간에 단비 같은 농담을 투척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시험에 얼렁 붙어서 대학에 가고 싶은 것이지 독일어 학원에서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거나 눈에 띄고 싶은 그런 열망은 '제로'이기에 선생님이 생활적인 혹은 간혹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 귀찮아서 알아도 답변하지 않는다.


공부 못하는 나는 그러한 질문에라도 답변해서 칭찬을 받고 싶었다. 선생님들의 나이가 지긋하기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재미없는 질문만 계속하시는 것도 한 몫했다. 선생님과 그나마 세대가 가깝고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고민이 비슷한 나는 선생님들의 질문의 의중을 빨리 파악하고 원하는 답변을 바로 내놓을 수 있었다. 아니, 답할 의지가 있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집에서 받는 설움을 푸는 기회라서 내가 더 적극적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울 집 식탁에서 내가 독일어로 말하면 아들은 바로 발음을 지적하고 (지적이라기보다 그냥 키특 키특 놀려 먹고), 딸은 요목조목 문법을 지적하며, 남편은 맨날 자신이 공격당하다가 어쩌다 애들이 나를 놀리는 것에 흥분해서 같이 편먹고 공격에 가담했다가 나한테 분노의 폭격을 한 몸에 당한다. 애들의 괘씸한 행동들은 참을만해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사춘기 애들 잘못 건들면 피곤해지기 때문에 호르몬이 잠잠해질 때까지 일단 임시후퇴하는 것뿐이고 지들이 애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애비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 엄마의 분노에 의해 처벌당하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파악될 지어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학원에서 집에서 받는 설움을 보상받겠다는 듯이 당당하게 다 틀린 독일어로 내 생각을 부르짖었고 그것에 대해 '칭찬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독일어 선생님들은 그냥 잘했다 잘했다 해주셨다. 아주 짜릿했다. 아무 말 대잔치 해도 그냥 칭찬해 주셔서...


학생 중에는 젊잖은 중년의 일본 여성도 있었다. 그분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나보다 훨씬 독일어를 잘하시지만 그 일본인 특유의 외국어 배우기의 문제, 즉 읽기, 쓰기, 문법실력은 찬란하지만 말은 잘 못하셨다. 잘 들어보면 문법에 맞추어 정확하게 말씀하시지만 정확하려는데 너무 포커스가 간 나머지 어…으…

하시고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이 발화한 말을

스스로 고치느라 듣는 사람이 흥미를 잃게 만드신다. 어쨌든 그분 덕에 나의 말하기 점수는 원래 받아야 하는 것에 두 세배쯤 더 받게 된 것 같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여러 민족의 학생들이 함께 앉아 공부하는 독일어 시간은 문화 충격과 때로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발생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20명가량 학생들의 국적을 나열해 보자면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동유럽 국가, 터키, 인디아, 일본, 한국 등 동양권, 그리고 시리아 난민들과 튀니지,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학생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으로 각양각색이다. 이들은 모두 독일대학 입시준비나 독일에서 취업하기 위해서 독일어 최상위 레벨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로 정해진 시간 안에 이것을 해내느라 뜨거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나는 나와 공통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 안에서 4주 동안 마음의 참평화를 누렸었다 - 우리는 다 이방인이고 독일 시스템에 적응하고자 애쓰는, 모두 한 배를 탄 사람들이구나.


언젠가 수업시간에 체벌에 대한 이야기가 토픽으로 떠올랐었다. 탄자니아에서 온 학생이 자신의 집에서 늘 있는 일이라며 들려준 이야기가 모든 학생들을 폭소와 쇼크로 몰았다. 학생 왈, 자신의 가족은 11명으로 8명의 형제자매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아이들을 쭉 일렬로 세워놓고 매질을 하신단다. 8명의 아이들을 몇 대씩 때리신 후에 이렇게 물으신다고 했다 - 오늘 너희는 무엇을 잘못했느냐? 그러면 미리 매 맞은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그날 잘못한 일을 아버지께 고한다고. 이 말에 우리 모두는 폭소를 터뜨리며 놀랐다. 탄자니아 학생이 이 이야기를 아주 유머스럽게 해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의 주장은 체벌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자신의 형제자매 8명은 아버지의 이런 양육방법을 통해서 모두 잘 커서 잘살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참으로 신박하다. 틀린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루를 뒤돌아보면 잘못하거나 반성할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맞을 매, 먼저 맞고 난 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뒤돌아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물론 자녀를 매질하는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탄자니아 학생의 일화를 듣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 어떻게 저럴 수가. 아마도 가장 놀랐던 것은 우리 독일어 선생님이셨을 것이다. 독일에서 자녀를 때리면 경찰에게 잡혀가기에 (이건 대한민국을 비롯 대부분의 문명국에도 적용되는 룰이겠으나 자녀의 체벌사건에 대해 진짜 신고를 하여 경찰이 출동하고 체벌 사건이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나라는 이 중에 응당 독일이다)... 당시 사춘기 자녀 둘을 양육하고 있던 나는 탄자니아 아버지의 양육법에 감동해서 집에서 실천해 볼까 했으나 혹시 체벌 후 내 자식들한테 신고당해서 못하는 독일어로 독일 경찰에게 심문당하는 상상을 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 감옥에 독일 수감자들과 같이 있는 그림도 머릿속으로 찰나에 그려 봤는데 오금이 저렸다. 아니지, 애들을 때리면 안 되지. 아무리 현지 적응이 중요해도 감옥까지 경험하는 건 아니지 하며 탄자니아식 양육법 실천의지는 대번에 꺾였다.


그 이후에도 그 학생에게 탄자니아의 문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독일문화와 동떨어진 문화권에서 독일로 이주하게 되면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얼마나 크게 들까. 본인도 살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며 그를 상대하는 독일사람들은 그 와의 생각 차이에 또한 얼마나 많이 놀라겠는가. 평화로운 만남이 보장된다면 서로 차이가 많은 문화의 사람들의 만남은 사실 서로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렇지만 이데올로기 갈등과 싸움이 끝없는 유럽에서 (아니 세상 어디에서든지) 문화의 차이가 큰 사람들이 조화롭게 서로에 대해 배우며 살아가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느 날은 수업 시간에 독일 뉴스를 보느냐에 대해 토론을 했다. 나의 비루한 독일어 실력에 튼튼한 조력자인 압델 (17세)은 자신은 독일 뉴스를 매일 시청하고 초미의 관심은 그날 난민에 관한 뉴스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했다. 혹시 난민들이 사고를 치거나 테러를 일으키거나 또는 독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이 무슨 잘못을 한 뉴스가 나면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섭단다. 그런 날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더욱 사나워 보이고 찬바람 쌩쌩 부는 대접을 받는 것이 너무 두렵단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나는 정말 울컥했다.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현재 독일에 가장 필요한 간호사가 되고자 하는 이 아름다운 17살의 청년은 대체 왜 매일 뉴스를 보면서 독일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누가 이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던 꿈을 다 포기하게 만들고 남의 나라로 쫓겨오게 하여 난민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는가. 자신의 부모와는 연락한 지 3년이 넘은 이 젊은이는 왜 남의 나라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이 나라에 와서 그 나라 말을 배우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그 말을 들을 당시에도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 후에도 생각이 날 때마다, 또 뉴스에서 난민 소식이나 테러소식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압델을 생각하며 아련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의 생활, 가족들과 연락이 다 끊겼다는 이야기... 이들의 잘못은 시리아에 태어난 것인가? 내가 만약 시리아에서 태어났으면 압델처럼 살 수 있었을까? 독일에서 조금만 차별을 받아도 길길이 날뛰면서 아무런 잘못 없는 남편에게 득달같이 화풀이하는 내가 압델 같은 시련을 겪게 된다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독일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살아나갈 수 있을까?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대망의 4주간 독일어 입시반은 마지막 시험을 턱걸이로 붙으면서 그 막을 내렸다. 압둘과 압델의 도움으로 4주를 버텨 겨우 시험에 합격해 어찌 저찌 자격증을 땄지만 아직도 독일어 회화 실력은 그대로이다. 왜? 독일어 수업보다 수업시간에 만난 사람들이 내 가슴에 더 다가와 차 들어왔고 그 4주간 나의 하루하루는 이방인들이 서로 독일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곱씹어 보는 것으로 가득 찼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들의 인권과 난민들의 생활 모습에 대해 성토를 하면 모두 이과 성향을 가진 우리 집 독일인들은 차가운 가슴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래서 엄마의 독일어는?'이라고 소리 없이 채찍을 갈기며 내가 왜 독일어 학원을 다니는지를 계속 상기시켜 주었지만 한 번 딴 가지를 친 나의 생각은 속성코스에 꽤 비싼 학원비를 투척한 것을 까맣게 잊은 채 다른 고민으로 가득 찼다. 아 독일어 마스터는 또 한 번 물 건너갔다. 이거스을 죽을 때까지 숙제로 안고 가야 하는가? 전혀 망설임 없이, 그럴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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