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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Oct 09. 2024

전국 5대 짬뽕보다 맛있는 짬뽕을 찾아서

입맛은 주관적이니까요

’전국 3대 짬뽕‘, ’전국 5대 짬뽕‘이란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그것은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어느 맛집 블로거가 임의로 정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유명해져 당시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던 나는 전국의 짬뽕 맛집을 찾아다녔다.  


사실 오랫동안 짬뽕은 내 선택지에는 없는 단어였다. ‘짜장이냐 짬뽕이냐’가 한국인에게는 난제처럼 여겨져 왔지만 나에겐 달랐다. 선택은 늘 망설임의 여지 없이 ‘짜장’이었다. 초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외식 메뉴가 얼큰한 메기매운탕이었으니, 적어도 매운 맛이 장애가 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짬뽕은 맛이 없었다. 내 입에는 그랬다.


하지만 ‘전국 5대 짬뽕’은 다르긴 달랐다. 짠맛과 감칠맛과 매콤함이 어우러진 국물과 때로는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푸짐한 해물, 하지만 저력있는 집은 눈길을 끄는 화려함 없이 약간의 채썬 양파와 애호박, 마찬가지로 길게 썬 돼지고기 몇 점만으로도 멋진 맛을 냈다. 서울에 살 때는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평택 영빈루와 홍대에 위치한 초마에 자주 갔다. 집 근처에 위치해 자주 갔던 천객가도 나름 짬뽕 맛집이었는데, 없어진지는 한참 되었다(참고로 전국 5대 짬뽕은 강릉 교동반점, 공주 동해원, 군산 복성루, 대구 진흥반점, 평택 영빈루라고 한다. 순서는 가나다 순.) 2011년 잠깐 강릉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강릉 짬뽕 맛집 도장깨기를 많이 했다. 지금은 거의 좋아하는 집만 가고, 가끔 신흥강자를 방문하는 정도다.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강릉 교동반점은 교동 대로변에 위치한 오래된 짬뽕집이다. 비슷한 상호명이 많아서 ‘강릉 교동반점 본점’으로 찾아야 한다. 메뉴는 짬뽕과 짬뽕밥, 군만두 뿐이다. 강릉에는 짜장이나 탕수육도 없이 오직 짬뽕만을 취급하는 짬뽕집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집들의 주인이 바뀌어서인지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위해서인지 조금씩 다른 메뉴도 취급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 교동반점도 주방장이 몇 번 바뀌어서 맛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충실한 맛을 내고 있다. 짬뽕 한 그릇 1만2천 원으로 건더기도 채소와 고기에 홍합살과 조갯살 몇 점의 심플한 스타일이라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만,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해 개운한 매콤함이 인상적이다. 위에 뿌린 후춧가루가 포인트. 즐겨찾는 곳은 아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면 한 번쯤 먹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호불호도 직접 경험해봐야 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강릉 교동반점의 짬뽕. 커버사진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짬의 짬뽕.

수많은 짬뽕집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강릉역 근처 중기골목에 위치한 신짬이다. 현지인이 많이 찾아 점심에는 대기줄이 생기는 곳으로, 고기 육수의 진한 짬뽕 국물에 해산물이 어우러져 있다. 매장에서 먹으면 밥은 무제한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으며, 포장을 해가면 생면을 따로 싸주기 때문에 붇지 않은 면을 즐길 수 있다. 양이 많아 두 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 그리고 드물게 친절하다.


포남동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황궁짬뽕도 맛있다. 1만 원짜리 해물짬뽕에 푸짐하게 해물이 올라갔고, 양도 상당해 먹고 나면 굉장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친절하지는 않고 주문하면 (강릉의 많은 식당들이 그러하듯) 오래 기다려야 한다. 30~40분은 기다릴 생각을 하고 마음 편하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리기를 추천한다.


매운 맛 마니아에게는 짬뽕1번지가 제격이다. 홍합, 게, 새우 등이 산더미처럼 올라가 있고 양도 많은 편. 과거에는 토요일에만 짜장면을 같이 팔았었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짜장면이 상시로 바뀌었다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메뉴에서 빠지고 대신 주먹밥 메뉴가 생겼다. 맛은 크게 변하지 않은 편. 개인적으로는 짬뽕에 공깃밥을 시켜서 국물과 같이 먹는다. 그야말로 탄수화물 파티다.

해산물이 푸짐히 올라간 짬뽕1번지의 짬뽕. 오징어값이 올라 솔방울 오징어도 들어갔지만 진짜 오징어 다리가 여러 점 들어가 반갑다.

과거 강릉 홍제동에는 화교 소학교가 있어 화교들이 자녀들에게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쳤다. 6.25 전쟁 후 강릉에 터를 잡은 화교들이 중식당을 운영해 모은 돈으로 1968년 설립했는데, 지금은 폐교되어 잡초만 무성해졌다. 화교들이 짬뽕과 짜장 등을 만들어 팔다가 그 중 얼큰한 짬뽕이 특히 강릉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아 짬뽕 특화 식당들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이유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5대 짬뽕’ 중 하나인 복성루도 항구도시 군산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그럼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국집들은 왜 ‘전국 5대 짬뽕’에서 빠졌을까? 거기는 짬뽕 말고도 먹을 게 너무 많으니까 그런 것이다. 짬뽕으로 이름난 집들은 가보면 오로지 짬뽕만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아량을 베풀어 짜장을 파는 곳도 있고, 사이드 메뉴로 즐기라고 탕수육과 군만두 같은 튀김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시그니처 메뉴는 짬뽕이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식당들은 다른 맛있는 메뉴들도 많기 때문에 ‘전국 5대 짬뽕’ 같은 리스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이다.


사실 중식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짬뽕과 짜장, 탕수육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많다. 게살 샥스핀으로 유명한 동해의 덕취원도 자주 찾는 맛집인데, 해삼과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삼선짬뽕도 맛있고 직접 만드는 군만두도 맛있으니 강릉에서 짬뽕 이외의 중식 요리도 맛보고 싶다면 방문해 보자. 동해는 강릉 바로 아래에 있고, 망상 해수욕장이나 천곡동굴, 무릉별유천지 등 즐길 거리가 많으니 강릉과 묶어서 가볼 만하다.


식약처가 발행한 ‘외식 영양성분‘ 자료집에 따르면 짬뽕의 나트륨 함량이 4천 밀리그램으로, 흔히 짜다고 하는 라면의 나트륨 함량보다 두 배가 많다. 보기만 해도 신장이 아파오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가끔은, 얼큰한 짬뽕 한 그릇 정도는 괜찮잖아? 소금기 섞인 짠 바람이 불어오는 이런 동네에서는 특히나 더.

유천택지에 위치한 쯩라이의 굴짬뽕. 팔선 출신 셰프가 웍을 잡는 중식당으로, 짜장과 굴짬뽕이 맛있고 요리류도 맛있다. 짬뽕은 옛날 호텔 짬뽕 맛.
유천택지에 위치한 <중식당 유천점>은 크림짬뽕 같은 변종 메뉴를 먹고 싶을 때 가면 좋다. 매운 맛 마니아로서 이곳의 매운고추짜장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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