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칼국수의 고장 강릉에서
강릉에 살아보니 - 장칼국수는 어떤데요
집집마다 다른 장맛
무더운 여름을 막 지나와서 그런지 막국수 얘기를 먼저 썼는데, 사실 강릉은 장칼국수의 고장이다. 보통 우리는 ‘칼국수’라고 하면 사골이나 해물 육수의 하얀 칼국수를 떠올리지만, 강릉 사람들은 장을 풀어 넣어 맛을 낸 빨간 장칼국수를 먼저 떠올린다. 오죽하면 강릉 토박이 지인 중에서는, 서울로 대학교를 가면서 난생 처음 하얀 칼국수를 먹어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장칼국수는 고추장을 풀어넣어 맛을 낸 강원도 영동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막장을 섞어 끓이기도 한다. 영동지방에서 유래되어 경북, 강원도 영서지방으로 퍼졌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라 ‘원조‘를 논하는 것이 의미없는 음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명한 장칼국수집에 대해 강릉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아, 거기는 우리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이랑 비슷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혹은 ’우리 할머니가 해주신 게 제일 맛있어‘라든가.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할머니가 만든 장맛 같은 건 맛보지 못하고 자란 나에게 장칼국수는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게다가 전편에서 언급했던 막국수처럼, 집집마다 그 맛이 다르다. 집마다 다른 동치미 국물을 쓰듯이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장칼국수는 겉모습은 시뻘건 것이, 강릉 짬뽕집들을 생각하면 아주 자극적이고 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국물을 한 입 먹어보면 생각보다 부드럽고 구수해 보기와는 다르다. 고춧가루보다는 고추장으로 맛을 냈으니, 칼칼한 매운 맛보다는 좀 더 묵직하고 걸쭉한 매운 맛이 입안을 적신다. 직접 반죽해 손으로 밀어낸 칼국수 면은 쫀득하고, 위에 뿌려낸 김가루와 깨는 고소함을 더해준다. 마지막에 넣은 달걀물은 매운 국물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한 그릇이 바로 장칼국수다.
강릉에 이주해와서 처음 가본 장칼국수집들은 현대장칼국수, 형제칼국수, 벌집칼국수, 금학칼국수 등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평일에도 줄을 서는 형제칼국수는(7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매운 맛으로 유명하다. 매운 단계를 선택할 수 있는데, 보통 맵기를 해도 충분히 맵다.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는 곳으로, 나도 가끔 이 곳 장칼국수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벌집칼국수는 개인적으로 너무 달았다.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입맛에 맞겠다. 현대나 금학은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장칼국수 맛으로, 적당한 매콤함과 묵직함에 밥 말아먹기 좋은 국물이 정석 같은 느낌이다. 장칼국수가 처음이라면 가보기 좋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칼국수집은 교동 택지에 위치한 나운칼국수다. 황태를 넣어 끓여 진한 고추장 국물 속에서도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청양고추까지 송송 썰어넣어 매운 맛 마니아에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참을 수 없는 맛. 포장도 가능한데, 생면과 육수를 따로 싸줘서 집에서 형편에 맞게 끓여먹기 좋다.
나운칼국수 이전엔 동일장칼국수를 좋아했는데, 여기는 바지락살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었다. 지금은 조개 양이 많이 줄어 아쉽지만, 맛은 여전히 그대로다.
칼국수만 먹기엔 헛헛해 다른 메뉴를 곁들이고 싶다면 강릉역 근처의 까치칼국수를 추천한다. 검은콩가루를 함께 넣어 반죽한 면발의 장칼국수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고, 사이드메뉴로 반드시 시켜야 하는 소고기김밥은 속이 꽉 차 든든하다. 달달한 소고기 볶음과 부드러운 장칼국수 국물도 꽤 잘 어울린다.
강릉에 온다면 유명한 장칼국수집 한 군데만 가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고, 다른 집들도 찾아가 맛보면서 비교하고 또 나만의 취향을 찾는 재미를 경험해보시는 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