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는 강원도 음식이라구요
오랫동안 내게 막국수란 족발 세트에 함께 나오는 쟁반막국수였다. 커다란 네온사인 간판에 ‘춘천닭갈비 막국수’라고 적힌 가게에서 먹는 막국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갖은 생채소에 검은 빛깔의 쫄깃한 면에, 매콤달콤새콤한 빨간 양념장을 비벼먹는 쟁반막국수. 어릴 적부터 면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기 때문에 가끔 먹는 쟁반막국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이십대에 교대 근처 샘밭막국수를 처음 접했다. 한창 지금 남편을 만나고 미식에 눈을 뜨며 서울 시내 맛집이란 곳은 다 찾아다니던 시기였다. 메밀면에 슴슴한 동치미 국물을 끼얹어 먹는 막국수는 투박한 맛이 아니었다. 메밀의 구수함에 동치미의 미묘한 단맛과 새콤함이 어우러진, 은은한 어른의 맛을 풍기는 막국수는 내게 세련됨 그 자체였다. 당시 평양냉면도 처음 접해 보았지만 그 밍밍한 맛을 이해하기에 나는 내공이 부족한 어린애였다(’대체 이딴 걸 왜 먹나‘ 생각하던 어린애는 그로부터 5년 후 평양냉면에 푹 빠지게 됩니다).
강릉에 이주해 오면서 막국수라는 음식이 춘천 고유의 음식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막국수는 강원도 고유의 음식이었다. 메밀꽃 축제가 열리는 평창에도 유명한 막국수집들이 있었고, 강릉엔 동네마다 유명한 막국수집이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막국수집들은 집마다 다 특색있는 맛을 가지고 있다. 송정 해변가에 위치한 영동막국수는 육수에 사과를 갈아넣어 은은하고 상큼한 단맛이 인상적이고, 정주영 회장님이 즐겨 드셨다는 송정 해변막국수는 아주 심심한 맛이 원조 평양냉면과 비슷한 느낌이다(마찬가지로, 정주영 회장님이 좋아하셨다는 양양의 실로암 메밀국수 역시 아주 심심한 맛이다). 형제막국수는 동치미국물에 고기육수를 넣었는지 감칠맛이 아주 탁월해서 가장 요즘 서울 평양냉면 맛과 닮아 있다. 포남동 해동막국수는 국물에 은은한 한약재 향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현지인 맛집’으로도 이름난 본가동해막국수는 물막국수에도 양념장을 얹어주는데, 입자가 굵은 국내산 고춧가루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강릉에만 몇 개인가의 지점이 있는 삼교리동치미막국수는 구정에 있는 본점에서 전수를 받아 개업한 곳으로, 지점마다 조금씩 특색이 다르다. 가장 선호하는 곳은 역시 본점으로, 무난하고 깔끔한 맛의 호불호 없을 막국수를 내놓는다. 아기들을 예뻐하셔서 아이들 데리고 방문하기도 부담없다.
그 외에도 많은 막국수집을 가봤지만 이른바 ‘현지인 맛집‘으로 알려진 곳은 대부분 무난하게 맛이 괜찮은 편이다. 살짝 달달한 동치미 육수와 고소하고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은 비빔양념. 돼지고기 수육에서 가게의 특징이 또 도드라지게 나타나는데, 족발 스타일로 간장양념에 달달하게 삶아낸 곳도 있고 특별한 기교없이 깔끔하게 삶아낸 곳도 있고 을지면옥처럼 차가운 냉제육 스타일로 삶아내오는 곳도 있다. 때문에 막국수집에 가면 사이드 메뉴로 만두보다는 돼지고기 수육을 권한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하기엔 좀 비싸지만, 만두는 기성품을 쓰는 곳도 많이 때문에 지갑 형편이 괜찮다면 수육을 먹어보자.
강릉 이외의 지역에서 기억에 남는 막국수를 꼽아보자면 춘천의 신흥막국수를 얘기하고 싶다. 주문 즉시 반죽해 면을 뽑아 내주시는데, 메밀 함량이 높다는 점을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다. 메뉴판에는 순메밀막국수도 따로 있어 100% 메밀면을 시킬 수도 있다.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 특유의 식감과 향이 매력적이고, 양념과 들기름, 평양냉면 육수 등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비교해 먹는 재미가 있다.
돼지고기 수육인 편육은 돼지 다리살 중에서도 발에 가까운 걸 쓰셨는지 족발의 윗부분을 썰어먹는 비주얼과 식감이 독특하다. 막걸리를 절로 부르는 맛이다.
매일 메밀면을 반죽하는 사장님의 전완근이 대단한 것도 특징.
쓰다보니 결국 춘천의 막국수 맛집까지 흘러갔는데, 강릉과 이 일대에도 훌륭한 막국수집에 많이 있으니 이곳에 방문한다면 짬뽕만 먹지 말고 막국수도 꼭 먹어보시길 권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막국수집은 영동막국수다. 바다 바로 앞이니 막국수 한 그릇 후루룩 먹고 송정해변 솔숲길 거닐며 소화시키고, 바로 옆의 안목해변까지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 완벽한 반나절이 될듯.
물막이냐 비막이냐 고민되신다면 두 개 다 시키시고, 나홀로 여행이라 다 먹을 수 없다면 물막을 추천 드립니다. 개인 취향이에요.
* 주관적인 입맛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 일부 가게는 현재 맛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