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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Mar 15. 2024

의료관리학이라는 학문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한 발은 얼음물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끓는 물에 담그면 평균적으로 매우 안락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균이라는 것의 허상을 꼬집기 위하여 만든 사례죠. OECD 국가 평균 의사수를 맞추는 것이 의료개혁의 가장 큰 화두가 된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의료계간 갈등이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군요. 와중에 모든 사태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K교수는 모 정당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요..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얼마 전 있었던 의대증원 관련 MBC 100분 토론에  2명의 전문가가 출연했었습니다. 한 명은 방금 언급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전공자인 K교수이고 다른 한 명은 가천의대 예방의학 전공자인 J교수입니다. 전자는 찬성 측 전문가로, 후자는 반대 측 전문가로 나왔죠.  


의사들 사이에서 의료관리학은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헌을 세운 분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의료관리학이란 특별한 학문이라기보다는 "Public Health", 즉 보건학이라고 부르는 아주 넓은 학문의 세부영역으로, 대부분 의대에서는 예방의학이라는 전공에서 다루고 있죠. 물론 보건학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학부 및  석박사 과정이 있는 대학들도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의료관리학 혹은 예방의학 전공자>라면 <의사로서 보건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보면 됩니다. 즉, K교수와 J교수 모두 동일 전공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J교수는 코로나 사태동안 감염병 수리모델링, 백신 이익-위험 분석 등으로 맹활약을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J교수만큼은 아니지만 K교수도 코로나 사태동안 꽤 많은 발언을 했던 인물에 속하죠.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감염병 팬데믹"과 "의사수 추계" 문제에 모두 능통한 전문가라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라는 질문입니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 고도의 분업화, 전문화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더욱 의아해질 수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 분들이 전공하는 분야에서는 가능합니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이슈에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등장하여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마 이 분야 전공자들일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오류도 큽니다. 


그들은 주로 예측모델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칩니다. 어떤 구체적인 숫자들이 대학 교수 혹은 연구자의 입을 통하여 나오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그 자체로 신뢰할만한 과학적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예측모델? 맥나마라 오류"에서 적었듯 실제로 많은 예측모델들은 보기에만 그럴 듯 해 보일 뿐, 수많은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봐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시 그들이 했던 예측모델링은 과학을 빙자한 사기에 가까웠고, 의사수 추계와 같은 작업도 불확실성이 매우 큽니다. 


의대 졸업 후 30년 이상 예방의학 전공자로 살았던 저는 언젠가부터 제가 몸담고 있는 이 학문에 심각한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학문의 오류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분야나 오류는 존재하고, 과학의 발전이란 이런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이 분야는 학문의 오류를 넘어서는 폐해가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연구에 기반하여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학문이 가진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은 신념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흔한데, 자신들이 하는 일을 두고 근거중심 정책, 즉  evidence-based policy라고 부르더군요. 


국가 정책들 중에서는 단기간에 정책 오류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책 오류였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료정책이란 젼형적인 후자의 경우로, 훗날 오류였음을 인지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 장기간 잘못된 정책에 의료공급자와 소비자가 적응하면서 시스템을 왜곡시켰기 때문에 바로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때는 정책을 만들 때 관여했던 관료들, 정치인들, 학계 인사들은 모두 사라진 다음으로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요. 


따라서 의정책이란 처음부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큰 틀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세부 정책들은 점진적이 유연해야만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그들이 한다는 소위 예측모델에 기반하여 과격한 정책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것은 정부가 참고로 했다는 그들의 예측모델에서조차 2천 명이라는 숫자는 나온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2천 명이라는 숫자에 열광하면서 의료개혁을 외치는 대중들과 정부가 던지는 어떤 협박성 발언에도 반응을 하지 않게 된 전공의들과 학생들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의대교수로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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