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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n 12. 2024

에너지? 기? 그 무엇?

열번 째 이야기 

아홉번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가끔 제가 참장공과 태극권을 하면서 느낀다는 그 무엇의 실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때마다 제가 떠올리는 것은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는 노자도덕경의 첫 구절입니다. 道라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道가 아니듯, 제가 느끼는 그 무엇도 말과 글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 이야기를 조금은 구체적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태극권 준비 운동으로 양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다음 양손을 천천히 어깨정도까지 올렸다가 내리는 자세를 반복하는 지극히 단순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처음 이 동작을 따라 할 때는 이 무슨 의미 없는 몸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냥 허공에 대고 양손으로 맹물을 휘휘 젓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손의 움직임과 함께 공기 중 저항이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되면 겉보기에는 예전과 별다를 바 없는 동작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동작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더 이상 물이 아니라 흡사 조청을 젓고 있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조청의 밀도는 점점 더 진해집니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공기 중 강한 저항이 느껴지고 덩달아 동작도 같이 느려져서 옆에서 보면 거의 멈추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입술과 혀에서 아주 약하게 흐르는 전류 같은 특별한 감각과 함께 입 속 가득히 침이 고이는데 그 느낌만으로도 만족감이 매우 커서 계속 그 동작만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랫배에는 이름 모를 장기가 하나 더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장기는 심장처럼 뛰기도 하고 수축과 이완을 하기도 하고 천천히 돌거나 앞뒤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양손을 아랫배 근처에 두고 손동작만 아주 작게 해도 이 장기가 손동작에 맞추어서 같이 움직이는 듯 느껴집니다. 비유하자면 막대자석을 철가루가 흩어져 있는 곳 근처에 두고 자석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자석이 움직이는 대로 철가루들이 따라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나의 손동작이 이런 자석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손동작이 있어야만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생각만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몇몇 기본 동작을 머릿속으로만 상상해도 비슷한 반응이 저절로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음 두는 곳에 에너지가 간다는 말이 속설이나 과장이 아니라 진실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장공시 기본자세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나의 에너지 흐름에 몸을 맡기면 각종 자세들이 저절로 나오는 시점이 있습니다. 태극권 동작과 비슷할 때도 하고 요가 동작과 비슷할 때도 있습니다. 요가를 할 때는 선생님 주문에 맞추어 특정 자세를 취한 다음 숫자를 헤아리면서 그 자세를 유지합니다. 힘은 들지만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면서 조금 있으면 끝날 것이라는 걸 믿고 견딥니다. 하지만 참장공 도중 저절로 나오는 요가자세들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할 때 느껴지는 괴로움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세도 저절로 점점 더 깊어지기도 하는데, 몸에서 느껴지는 편안함도 이에 비례하더군요. 한참 동안 하나의 자세로 유지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다른 자세로 이어지곤 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나의 의도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경험해 보신 분들은 이 정도만 설명드려도 어떤 느낌인지 알 듯하고, 전혀 경험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무리 더 긴 설명을 덧붙여도 이해하기가 힘들 듯합니다. 에너지, 기, 프라나.. 무엇이라 불러도 관계없습니다. 생생한 경험을 통하여 존재를 확신하게 된 이 실체, 지금 이 시간에도 스위치를 딸깍 올린다는 생각 정도만으로도 골반 깊숙이부터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하는 이 흐름을 도대체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전수되고 있던 그 존재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고 모두 유사과학, 비과학으로 폄하되고 있는 현시대 과학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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