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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n 15. 2024

“저용량 방사선”으로 치매 치료에 도전하는 의사들

얼마전 방사선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하여 오랫동안 고군분투해 왔던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평생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분인데 방사선과 관련된 현시대 패러다임의 오류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자신의 남은 생을 방사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바치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찬 분이셨습니다. 

 

호메시스라는 책을 이미 읽고 오셨던지라 대화는 자연스럽게 방사선 호메시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방사선은 용량과 조사부위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장기별 호메시스를 인위적으로 유도하기에 매우 유용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공포 때문에 의료기술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니, 최근 진행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소식 하나를 알려주시더군요. 바로 “저용량 방사선”으로 치매 치료를 시도하는 의사들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의료분야에서 방사선은 암치료에 주로 이용됩니다. 항암치료로 사용되는 방사선 용량은 수천 mSv 이상으로 일반인 방사선 노출허용량이 년간 1 mSv임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높은 용량이죠. 그런데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방사선은 암세포를 죽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고용량을 사용합니다만, 치매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선은 뇌세포 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저용량을 사용합니다. 바로 방사선 호메시스 원리를 이용하는 치료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경희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정원규교수가 치매환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을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실로 돌아와 이런 저런 검색을 해 보니 이미 언론에 기사화된 내용이었으며 세계적으로 동물실험부터 소규모 임상실험까지 관련 논문들도 꽤 많이 발표되었더군요.  정원규교수님께서 2023년 말에 찍으신 비 온 뒤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저용량 방사선이 치매 치료에 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 사례는 2016년 캐나다에서 처음 보고되었는데, 그 스토리가 흥미진진했습니다. 당시 여명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되던,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했던 81세의 중증 치매환자가 CT촬영을 두 차례 한 후 단 며칠 만에 인지기능과 행동장애가 회복되는 것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CT촬영을 한 이유는 방사선 호메시스를 알고 있었던 남편이 직접 주치의한테 요청하여 이루어졌다고 하고요. 그 결과에 고무되어 그녀는 83세 생일 때까지 두 달에 한 번씩 계속 CT촬영을 했고, 32개월 동안 노출된 방사선 총량은 480 mSv였다고 합니다. 

 

그 후 여러 국가에서 동물실험과 소규모 임상시험들이 산발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최근 총 12개 동물실험과 4개 임상시험을 요약한 리뷰 논문이 발표되었더군요. 결론적으로 저용량 방사선은 동물실험에서 치매를 포함한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보이는 다양한 병리적 현상들을 개선시켰으며 (아밀로이드 플라크 감소, 타우단백질 축적 응집체 감소, 항염증효과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서도 인지 기능과 행동장애가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려할만한 부작용은 없었다고 하고요. 

 

현재 정원규교수팀이 진행하고 있는 다기관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연구설계는 2023년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발표된 논문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정원규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암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선 용량의 20분의 1 정도를 사용한다고 밝혔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매우 높은 용량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방사선 관련 법과 규정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현시대 지구의 자연방사선 평균이 년간 2.4 mSv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값은 평균일 뿐이고 국가 간 차이는 물론이고 동일 국가 내에서도 지역 간 자연방사선 노출량 차이는 매우 큽니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지구 평균보다 높은 노출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 간 차이가 2배 이상입니다. 살기 좋은 국가의 대명사격인 북유럽 지역은 한국보다 더 높고, 지구상에는 노출량이 10 mSv, 100 mSv를 넘어가는 지역도 여러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출허용량 1 mSv를 금과옥조로 삼으면서 살고 있다니.. 이 얼마나 코미디에 가까운 일인가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구 탄생 초기의 자연방사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습니다. 방사선이든 뭐든 생명체 진화과정을 함께 해왔던 환경요인들은 모두 저용량 범위에서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호메시스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요인들은 노출 제로가 되면 오히려 건강에 해를 끼치는 특성이 있습니다만, <세상을 망친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에 나오는 허먼 멀러 교수의 공로로 인류는 <방사선은 제로만이 안전하다>는 LNT(Linear non-threshold) 모델을 기본원칙으로 삼는 자충수를 두게 되죠. 그리고 여기에는 기후위기 과학자들과 팬데믹 과학자들이 그랬듯,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의 연구자들을 배제해 버렸던 방사선 분야의 과학자들이 존재합니다. 

 

LNT모델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방사선을 관리하면서 먹고사는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로 인하여 인류가 지불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 또한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의학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점은 저용량 방사선이 가지고 있는 호메시스 효과를 난치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인류가 놓쳐버렸다는 것이었고요. 

 

그러나 소수 의사들과 연구자들의 도전정신으로 드디어 저용량 방사선이 치매치료에 도입되는 시점을 앞두고 있는 듯합니다. 전해 듣기로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결과는 상당히 기대할 만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매의 성공 소식이 전해지면, 다른 질병에서도 저용량 방사선을 환자 치료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듯하여 마음이 설레기까지 합니다. 반세기 이상 유사과학의 대명사로 몰렸던 호메시스가 의학의 전면에 등장하는 그날을 위하여 저도 지금부터 <호메시스: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 개정판을 슬슬 준비해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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