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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Nov 03. 2023

세상을 망친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

인류는 어쩌다가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하다는 “유사과학”을 믿게 되었을까?

mRNA 백신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충제인 DDT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던 한 과학자에 대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더 떠올랐는데 mRNA 백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DDT가 더 적절한 비유인 듯하여 잠시 미뤄두었고요. 그런데 인류에 끼친 정신적, 물질적 피해 규모로 보자면 잠시 미뤄둔 그 노벨상 수상자를 따를 자는 아마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20세기 방사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수십 명에 이르는데 그중 한 명이 허먼 멀러 (Hermann Muller) 교수입니다. 그는 초파리 실험으로 방사선이 유전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로 194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죠. 멀러 교수는 방사선 노출량에 비례하여 돌연변이 발생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고 (당시 학계에서는 유기체는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돌연변이는 자연 상태에서도 항상 발생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결과는 20세기 후반을 완벽하게 지배했던 LNT (linear non-threshold)  모델–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하며 노출량이 증가하면 할수록 위험이 증가한다-의 출발점이 됩니다.


노벨상 수상 후 멀러 교수는 LNT모델 (아래 그림 1번)이 방사선 및 모든 발암물질 관리의 표준모델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 수상 직전 저용량 범위에서는 LNT모델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나온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을 연구하는 팀도 존재했는데 당시 멀러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자문 역할을 했다고 하죠. 이 팀은 두 개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중 하나에서 LNT모델과는 전혀 맞지 않은 연구결과 (아래 그림 2번)를 얻었고 멀러 교수도 그 사실을 인지했지만 그는 노벨상 수상시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논문을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연구팀뿐만 아니라 그의 노벨상 수상 전부터 멀러 교수의 견해에 반박했던 연구자들도 존재했고, 그 이후에도 LNT모델이 부적절하다는 학문적 반박이 계속되었습니다만 한번 자리 잡은 도그마를 깨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더구나 LNT모델이 방사선 관리의 표준이 된 후부터 더 이상 이 이슈는 학문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LNT모델에 기반하여  수많은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 시스템하에서 먹고 사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양산된 상황에서 LNT모델을 부정하는 발언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고도 불온한 주장으로 간주되었죠.


하지만 반 세기 이상 지난 현 시점, LNT모델은 과학이 아닌 차라리 유사과학임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특히 저용량범위에서는 위험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까지 존재하죠 (위 그림 3번). 지구 평균 2-3 mSv, 높은 곳은 수십 mSv까지의 자연 방사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0.000x mSv 로 사회가 불안에 떨고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하다는 궤변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된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이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일상에서 경험하는 저용량 방사선은 아무런 영향이 없거나 건강에 유리하거나 둘 중 하나로  대중들이 방사선에 신경 쓰면서 살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LNT모델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인류는 방사선은 0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망상을 가지고 살게 되죠. 그리고 그 방사선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만들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함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방사선이 얼마나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틈만 나면 여기서 방사선이 검출된다, 저기서 방사선이 검출된다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한국은 그 동안 LNT모델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가장 컸던 국가로,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는 LNT모델이 악용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글을 적을 때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최근 사회 분위기를 알기 위하여 검색하다가 얼룩소라는 곳에서 <방사선 호메시스>와 관련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논쟁 당사자는 제주대 미디어심리학 전공 교수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역학 전공 교수였는데, 미디어심리학 전공 교수는 제가 아는 그 어떤 예방의학자나 역학자보다 더 정확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미디어심리학 전공 교수는 자연방사선의 존재 의미를 포함하여 (가장 중요합니다) 다양한 세포실험, 동물실험, 역학연구결과 등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면서 <방사선 호메시스>가 실제 하는 현상임을 주장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대한 역학 전공 교수의 답변은 <방사선 호메시스>란 뇌피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학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 연구에서 이 이론을 지지하는 연구가 없다"는 것을 자신 주장에 대한 근거로 들고 있었습니다.


앞서 올린 "mRNA 백신 vs. 후쿠시마 오염수, 어떻게 다른가?"에서 역학이란 분야는 방사선 호메시스과 같이 비선형성 영역의 문제를 신뢰성 있게 검증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연구자들, 특히 역학자 스스로가 알지 못하고 있음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미디어심리학자의 주장을 뇌피셜이라고 반박한 이 역학자를 보면서 다시 한번 이 오류가 현실에 얼마나 만연한지,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학자는 호메시스가 매우 보편적인 생명현상임을 모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박테리아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명체는 방사선을 포함한 수많은 저용량 스트레스에 대한 노출을 통하여 자기 방어기전을 활성화시키도록 진화해 왔는데, 이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정보는 A, C, T, G로 구성된다>는 수준의 보편성을 가진 현상입니다. 역학연구에서 호메시스를 관찰하지 못했다고 호메시스를 부정하는 것은 마치 중력을 측정하지 못했다고 중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의식을 측정하지 못했다고 의식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미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쁜 것은 적을수록 좋고, 좋은 것은 많을수록 좋다>는 선형성의 오류가 완벽하게 지배해 버린 현실에서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한 것>이라는 기존 도그마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주장일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동안 확진자 0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했던 모든 노력이 전체 사회에 엄청난 피해만 끼치는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었듯, 방사선 노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러 교수의 노벨상으로부터 시작된 LNT모델, 그리고 그 LNT모델하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았던 인류가 과연 언제쯤 그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 살아 생전 가능할까요? 현재 세계적으로 LNT모델에 대한 급격한 균열이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습니다만 가장 오랫동안 코로나 방역 치하에 살면서 이 곳이 가장 안전한 사회라고 믿었던 한국은 아마도 LNT모델의 망령도 가장 오랫동안 지배하는 국가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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