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연일 우리 사회가 시끄러웠을 때 그런 정도의 방사선 노출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취지의 글을 몇 차례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mRNA 백신에 대하여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졌던 분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코로나 백신과 동일한 관점에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코로나 백신의 장기 안전성을 우려한다면 당연히 후쿠시마 오염수도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가? 후쿠시마 오염수도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말이 달라지는가? 등등..
하지만 생명체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방사선과 mRNA 백신은 양극단에 위치한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사선은 지구 탄생 이래부터 수십억 년 생명체 진화를 함께 해온 존재이나, 지질나노입자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코로나 mRNA 백신은 21세기에 와서야 인류가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가 진화과정 중 경험하지 못한 외부 물질 중에는 단기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저농도에서 장기적으로 유해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데, 지질나노입자에 기반한 mRNA백신은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방사선처럼 생명체 진화를 함께 해온 요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지구 어디에서나 검출되는 자연방사선의 경우 평균값이 2~3 mSv 정도이고, 지역에 따라 수십, 수백 mSv에 이르는 곳도 있습니다. 방사선은 0만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연방사선조차 0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받아들이고 대신 인공방사선이라도 0에 가깝게 줄여야 한다는 입장인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학주의의 허망한 숫자 놀음에 빠져버린 인간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생명체 진화를 함께 해 왔다>는 문장이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낸 두 권의 책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미국 테네시 대학 소속의 한국계 연구자가 1972년 사이언스에 보고한 논문입니다. 이 연구자는 아메바를 가지고 주로 실험을 했었는데 우연히 세균 감염으로 아메바가 거의 전멸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살아남은 몇몇 아메바가 있었고 신기하게도 이 아메바 내에는 세균이 함께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실에서는 살아남은 아메바들을 번식시켜 가면서 실험을 계속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놀랍게도 이 아메바에서 세균을 제거하면 아메바가 죽어버린다는 것을 관찰하게 됩니다. 즉, 그동안 아메바는 이 세균이 존재해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진화를 해버린 겁니다.
방사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지구의 방사선은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환경하에서 생명체는 수십억 년을 통하여 진화해 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방사선에 약한 개체들은 멸종하고 방사선에 강한 개체들만 생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존한 개체들은 세균과 공생 단계로 발전한 아메바처럼 이 방사선을 자신 생존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노하우를 익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저용량 방사선이 생명체에 해롭기는 커녕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는 방사선 호메시스가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지금까지 방사선 호메시스가 과학계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 연구에서 호메시스 현상을 신뢰성 있게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연구자들은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 관찰되는 현상이 역학연구에서 보이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사람에서는 그런 현상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자신 역학자이긴 하지만 그건 역학이라는 학문을 너무나 과대평가하는 겁니다.
역학은 방사선 호메시스과 같이 비선형성 영역의 문제를 신뢰성 있게 검증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이 아닙니다만 , 이 사실을 연구자들, 특히 역학자 스스로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학연구결과에 근거하여 방사선 호메시스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고 더 나아가 정책 결정에 사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비선형성은 방사선 호메시스뿐만 아니라 생명현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디폴트 모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선형성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대다수 역학자들은 역학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기보다는 의미없는 빅데이터, 현란한 통계기법 등과 같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죠.
코로나 사태는 다시 한번 역학이라는 분야가 얼마나 위험천만의 학문인지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역학 연구결과란 시기, 대상자, 장소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기존 내러티브에 맞는 역학 연구결과들만 선택적으로 저널에 발표되고 이는 다시 과학적 증거로 포장되어 세상에 알려졌죠.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역학은 하루속히 연구의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역학으로 신뢰성 있게 답을 줄 수 있는 질문과 죽었다 깨어나도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을 구분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저의 연구자로서 경력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손상을 입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분명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엄청나게 쏟아질 역학연구 결과를 두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옥석을 가리는 일.. 아마도 저의 남은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