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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Nov 13. 2023

도대체 긍정적인 게 뭔디요?

개념어의 한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사용하는 흔한 미사여구들 중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들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긍정적인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그 긍정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도 해보지 않은 채

나 자신과 또 타인에게 어떠한 특정 '개념어'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주위에 있는 몇 사람들에게 내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글은 나를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향한 나의 변명([변명]: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이자 맑고 분명한 마음을 갖고도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그 반대로 늘 긍정적이고 밝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속은 안으로 곪아터져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 Unsplash의Patrick Tomasso

작년 이맘때쯤부터 시작해서 한 회사랑 진행하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다. 남미에서는 꽤나 큰 회사이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에 비할 수 없이 회사 내부의 체계도 없고 담당자의 책임감도 전혀 기대할 수 없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한 달씩 휴가를 가버리고 연락을 안 받는다)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씩 하게 해서 나를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당황하게 만든다. 이들에게는 안 지키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이라서 중요한 일정을 벌써 수개월째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왜 그럼 다른 회사를 찾지 않느냐고? 일단 이에 대한 아주 간단한 답변은, 다른 곳도 많이 찾아봤지만, 결론적으로는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이 회사와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 자체를 당분간 보류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되어버리는데 이 결정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러모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진퇴양난의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 되기까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이미 손을 털고 나올 타이밍을 놓쳐도 너무 놓친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놓친 데에는 '긍정적인 태도'의 잘못도 일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된다'라고 생각하고, 상대의 말을 믿으며 일을 하는 것은 대부분 좋은 태도이지만 10번을 약속하면 8~9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대를 또다시 한번 믿어보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명확히 예상되는 문제가 있는데 '결국에는 다 잘될 거야'라고만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도 긍정적인 태도는 아니다. 

사진: Unsplash의Nathan Dumlao


그렇다면 긍정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정의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란,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똑바로 직시하되,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활력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타인의 비난에 쉽게 상처받지도, 당장의 유리한 상황이나 운에 기대어 '다 잘될 거야'를 남발하지도 않으며 그렇기에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 불안함에 덜덜 떨지 않는 이들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예상한 그대로 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대와의 통화를 끝낸 뒤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이 나는 마음속으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일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결국 나의 긍정과 나를 부정적이라고 생각 사람들의 긍정 중 누가 이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혹시나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딱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듣지 않으면 독단적인 인간이 되기 쉽지만, 그것이 나에 대한 평가라면, 특히 내가 생각하는 바와 너무나 다르거나 터무니없는 평가라면, 그건 굳이 새겨듣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웬만하면 듣지 않기를 권장한다. 주관성이 들어간 모든 개념어는 내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나의 평가가 그에 부합하다면 충분하다. 타인이 내린 정의에 굳이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문제들 속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내가 내린 '긍정'의 정의에 부합한다. '어찌 됐든 결국에는 성공하겠죠'라고 굳이 겉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지 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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