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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Sep 09. 2022

사랑으로 이야기하기, 이야기로 사랑하기 16

Exodus 엑소더스(출애굽기)

성경의 가장 첫 책인 창세기의 이야기는 천지창조로 시작해,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등 익숙한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어 대부분의 성경통독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읽어내는 책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책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태평양 건너서까지 매일 목소리를 가다듬고 녹음해 보내드린 성의가 무색하게 듣지를 않으셨단다. 


아무래도 아버지께 성경은 무리일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이영표 선수의 간단한 묵상집을 들고 친정에 들렀다. 묵직한 영성이 바탕이 된 이영표 선수의 책을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이게 이영표 선수가 직접 쓴 글이냐며 놀라 하셨다. 그리고 담담히 그 책의 내용을 듣고 계셨다. 이영표 선수의 책에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군데 나오는데도, 아버지는 별다른 반감 없이 그 내용을 그대로 듣고 계셨다. 


그러나 듣는 것은 이야기 책이 묵상집이나 지식 책보다 훨씬 재미있고 몰입이 좋다. 아버지도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서사가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인정하셨다. 


고민을 이야기하니 남편이 벤허나 엑소더스와 같이 성경이 배경이 된 영화를 보여드리면 어떠냐고 조언을 해준다. 그 순간 어렴풋이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이 나왔던 옛 영화 생각이 났다.  


창세기의 이야기보다 더욱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엑소더스(출애굽기)이니 부모님도 들으실 만하시고 낭독하는 나도 도전이 될 듯했다. 


아버지께서 옛날 보신 영화의 추억을 떠올리시며 글의 내용에 마음을 여시게 되면 좋겠다 싶었다. 


아버지,


찰턴 헤스턴, 율 브리너 주연의 1950년대 영화 십계를 기억하세요?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틈을 타서 히브리 민족은 홍해를 건너고, 따라오던 이집트 병사들은 바닷물에 잠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인데요. 그 유명했던 영화가 사실은 성경의 두 번째 책인 Exodus, 출애굽기를 소재로 한 영화였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셔서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고집 센 파라오의 손에서 어렵게 탈출시킵니다. 그리고는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켜야 할 규칙들을 십계명으로 주시죠.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속박하는 욕심, 두려움, 피해의식 등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엄마가 오랜 간병에 지쳐 심신이 많이 피곤해지신 상태인데, 다행히 제가 읽어 드리는 성경을 들으시면 마음이 평안해지시고 잠도 잘 오신다네요. 아버지께서도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이해하려고 애쓰시지 마시고, 그저 아버지가 세상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저도 두 분의 건강과 영혼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읽어 볼게요. 


사랑합니다~




나는 B형 남자 세명과 산다. 


남편과 아들 둘 모두 B형 혈액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좋은 건 밤을 새우면서도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옳은 것' 보다는, '내가 좋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다. 


절대로 내가 조언하는 대로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 없으면서도, 아침마다 자신의 옷차림이 어떤 지 물어보는 남편, 밤늦도록 공부는 안 하고 놀다가 "숙제해야 하지 않냐?"는 말에 "내가 알아서 하는데, 엄마 말에 기분이 나빠 하기 싫다."라고 화를 내는 큰 아들, "건강 따지다가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스트레스받아 암 걸린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인스턴트 음식만을 탐닉하는 작은 아들과 살며, 매일의 삶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 각자의 개성을 수용하고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엔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누르며 살아오자니, '고집'이란 단어는 생각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내 생명을 깎아먹는 힘든 단어였다.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라는 인물을 택한다. 그에게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하라고 한다. 노예가 나라의 큰 재산인 시절에 호락호락하게 그들을 해방시켜줄 리는 만무할 터. 파라오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 


파라오가 고집을 피울 때마다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 재앙을 한 가지씩 내린다.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 개구리 재앙, 이, 파리, 가축의 떼죽음, 부스럼, 우박, 메뚜기, 흑암 그리고 마지막 모든 이집트 민족 장자의 죽음까지. 한두 가지 만으로도 항복을 할만한데 파라오는 지독한 고집을 부리며 이스라엘 민족의 앞길을 막아선다. 


큰 아들을 잃고 겨우 항복을 하고서도, 결국 탈출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뒤쫓게 하여 자신의 병사들을 홍해 바다에서 수장되게 하는 '고집의 끝판왕' 파라오. 유독 고집이 센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낭독을 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하나님 스스로가 매번 파라오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드시겠다고 선포하시는 대목이다. 그리고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힘을 보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파라오가 고집 센 게 하나님이 뜻이라면 출애굽기의 파라오는 그저 영화의 악역 배우일 뿐, 미워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남편의 고집도, 아들들의 고집도 그저 하나님의 영광과 힘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라면, 미워할 이유도 안타까워할 이유도 크게 없는 것 아닌가? 


모세가 괜히 파라오한테 가서 "내가 하나님을 좀 아는데 당신 고집부려서 좋을 것 없으니 내 말 들으라고", 파라오에 가서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파라오 고집 세서 이거는 안 되는 일"이라며 잡음을 넣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오늘 입은 옷이 어떠냐는 남편의 질문에 거슬리는 곳이 보여도 좋다고 하고, "성적은 네가 잘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라고 한마디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들이 보는 치즈라면 먹방을 같이 보며 '맛있겠다!'라고 맞장구 쳐주면 될 것을. 


그러다 보면 어느날엔가 내 맘에 들게 말끔히 옷을 차려입고 나오는 남편을, 자기가 가고 싶은 학교를 가기 위해 성적관리 혼자서 잘 알아서 하는 아들을, 그리고 몸 만든다고 열심히 운동하며 샐러드 챙겨 먹는 기특한 아들을 만나게 되는 건데 말이다. 

 

수천 년 전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오늘의 나에게 '내가 더 잘 안다'는 교만과 '너는 잘못됐다'는 편견으로부터 해방!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의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감독이 각자에게 맞는 배역을 주고 그들의 연기를 디렉팅해가고 있다는 것, 나 또한 실수가 많은 배우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일의 우리 마음을 답답하게 묶고 있는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아버지가 TV 뉴스를 보신다며, 밤늦게까지 고집을 피우고 잠을 못 자게 하셨다며 엄마가 힘들어하신다. 


"감독님의 멋진 시나리오가 있으시겠죠. 파라오의 마음도 하나님이 완고하게 만드셨다잖아요. 아버지의 마음도 하나님이 알아서 감독하고 계시겠죠. 감독님 시나리오가 우리 시나리오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나와 같은 O형이신데, B형이 고집이 세다는 편견에서부터도 온전히 자유로워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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