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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Sep 23. 2020

매일 받는 사랑 고백

들어도 들어도 좋은 말, 오늘도 훅 들어온다.

예뻐요,
치마 예뻐요,
핀 예뻐요.
선생님 정말 예뻐요.


  매일 아침 내 꼬맹이들이 말한다. 아이들 말인데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힘이 나는 행복한 말들이다. 그 말이 쌓이고 쌓여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종종 갑자기 훅 들어온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좋아요.


  누구 한 명 시작하면 여기저기에서 고백이 시작된다. 세상에 나만큼 고백을 많이 받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이 꼬맹이들 덕분에 매일 행복해서 웃고 감동받아 운다.


나보다 더 많은 고백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





  코로나가 여전히 참을 수 없는 버거운 존재로 존재감을 뽐내지만 인원이 적은 나의 시골 유치원은 매일 등원이다. 바이러스를 생각하면 무척 걱정되지만 한 편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등원할 수 있어 다행이구나 싶다.


  유치원 교사를 시작한 지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스물넷 갓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버겁고 어려웠다. ‘가르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나조차 완벽하지 못한데 누군가를 가르치다니. 뭐든 완벽하게 해내야 하고 완전하게 해결해야 하고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허덕였다.

  지금 이 선택이 맞을까, 이 말이 맞는 말일까 걱정되고 고민됐다.

 ‘바르게 앉아라, 바르게 서라, 손을 똑바로 들어라, 골고루 먹어라...’

 등등등 잔소리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생각했다.

 ‘나도 항상 바르게 앉는 건 아닌데, 좀 삐뚤게 서면 어떻게 되나? 인생에 큰 문제가 되나?’

  그렇지만 배운 대로, 이미 경험한 나의 선생님들 가르침, 19세기의 방식을 바탕으로 20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때때로, 아니 자주 그러고 있다.)


꼭 가르쳐야 하나?


 교사는 꼭 가르쳐야 하나?
앞에 서서 ‘나를 따르라’하며 이끌고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만 하나?
가끔은 뒤로 좀 갈 수도 있지 않나?
조금 돌아가면 안 되나?
옆에서 같이 크면 안 될까?
아직 나도 더 커야 하는 미성숙한 인간인데....
다산 정약용이나 공자, 맹자처럼 성인군자도 아닌데....


  매일 ‘사랑해’ 말해주고 무조건 다 듣고 이해해주기엔 내가 가진 사랑의 우물은 너무도 자주 말랐다. 게다가 뜬금없이 훅 들어오는 학부모의 불만은 그 우물을 더 빠르게 마르게 했고 교사라는 직업이 싫어지게 하기도 했다.


  사랑을 퍼주고 나눠주면 마음이 피폐하고 바닥이 드러나는 똑같은 인간인데 겨우 몇십 년 먼저 태어나 고작 4년 동안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배우고 교사가 된 것뿐인데 완벽하다 스스로 자신할 수 없었다. (물론 경력이 20면 넘게 추가된 지금도 그렇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용기만 넘치고 실패와 실수로 허덕이던 어린 교사였을 때였다. 일을 딱 3년만 하고 돈을 모아 다시 대학을 가서 다른 멋진 어른들의 일(그 당시는 컴퓨터 관련 직업이 멋져 보였다.)을 하리라 마음먹던 때였다.

  식판에 급식을 받고 식탁에 앉은 어느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김치를 자르고 있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옆에서 김치 안 먹는다 투정 부리던 아이가 잘하지도 못하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잘라 숟가락 위에 밥을 떠 그 위에 김치를 올려주는 게 아닌가.  그랬더니 그 숟가락을 받아 든 아이가 밥을 먹고 웃는다. 김치를 잘라준 아이도 스스로 김치를 올려 밥을 먹었다. 그 후 둘이 종알종알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밥을 먹다 말고 주르륵 눈물이 났다. (난 정말 잘 운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운다.) 그 장면은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오만함이었다. 교사는 무조건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편견이며 자만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현명하다. 배워야 하는 것은 결국 나였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아이들을 통해 배워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내려앉고 헐렁헐렁한 여유가 찾아왔다. 굳이 뭘 넣어주고 이끌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있었고 그것을 발견해서 알아주고 격려하며 같이 가면 되는 거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감동스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여전히 자주 힘들어 투정 부리지만 나의 일이 참 좋아졌다. 그렇게 지금도 나는 대한민국 유치원 교사로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이 감동스럽다. 그 당시 생각한 멋진 어른들의 일보다 더 숭고하고 감동스러운 것들을 배운다.


가르치러 출근하지 않는다.
배우러 간다.


  오늘 아침도 피아노를 치는데 아이들이 그런다.

“선생님 예뻐요. 피아노 치니까 더 예뻐요.”

(피아노를 엄청 잘 차는 것도 아닌데....)

  이 말을 들으니 사랑 우물에 사랑이 채워지고 미소가 장착된다. 꼬마 선생님들은 사랑으로 나를 키운다. 사랑으로 힘이 나게 해 준다.


  “너희들 사랑 덕분에 오늘도 배우는 일이 참 행복하단다. 고마워, 내 꼬마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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