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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Feb 21. 2024

내가 글을 쓴다고?

개학 준비 교육과정 만들기 주간이 시작되었고 몸이 두 개라도 힘들 정도로 바쁘다. 교육과정을 짜야 되니 관련된 여러 가지 계획서를 줄줄이 제출하라고 한다.

올해는 교육부에서 학교자율특색(학자특)을 전 학년에 걸쳐 계획성 있게 실시하라고 새로운 개념의 교육활동 주제가 제시되었다. 이리저리 이름을 바꾸어봤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듯 결국 맥락과 흐름이 똑같은 교육활동을 이름만 바꾸는 과정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회의감은 내 마음의 문제이고 나의 불만일 뿐 공무원인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따라 또 다른 시도를 헤쳐나가야만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지만 귀걸이를 코에 걸었을 때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는 활동은 고민을 가져오고 같은 생각을 자기 전에도 잠을 자는 중에도 깰 무렵에도 하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학년군별로 학자특 주제는 정해졌고 그에 따라 학년에서 추진할 목표와 활동 계획을 제출하라는데 막힌다. 일단 2학년에 새 교육과정이 실시되면서 교과서가 바뀌었고 현재까지 교과서는 배달도 안되었다. 결국 큰 목표나 주제는 같지만 바뀐 교과서를 보고 계획을 세워야 되는데 이것부터 막힌다. 전자교과서를 훑어볼 새도 없었는데 먼저 보신 선생님이 작년과 비슷한 흐름이고 추가된 것이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막막함음 지울 수 없다.


퇴근할 때까지 문구를 고민하고 잠자기 전도 고민하고 깨서도 고민하지만 멋있는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의 흐름이 브런치까지 와 버린다. 자존감이 썩 높지 않은 나는 계획서에 쓸 한 줄 문구 때문에 자존감이 더 떨어진다.

이 두 세 문장도 시작하지 못하는 내가 글을 쓴다고? 글을 올릴 때마다 주저주저하는 모습도 못 버리고 있고, 또 한 번 브런치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에 휩싸인다.(사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여기서 맺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이다.) 이렇게 밑천 없이 말하고 싶은 걸 고민하고 나서 그저 조금 정제된 글로 올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초기보다 뜸하게 글을 쓰고 뜸하게 방문하던 브런치였다.

이젠 통계 수치도 잘 안 보게 되고 메인에 걸리고 싶은 소망도 사라졌다.

내 깜냥을 알아버린 게 브런치 글쓰기의 수확일지도 모른다.


어제 오래간만에 조회수를 봤더니 얼마 전 아들에 대해 쓴 글은 어디에 노출된 건지 구글 써치로 조금 조회수가 올라 있다. 남편과 서울 여행기가 엠 다음에 올라서 폭발 수준은 아니지만 조회수가 오르고 있다. 처음처럼 엠다음 어디에 올랐나 찾는 건 안한다.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 메인이나 엠 다음에 오르면 시도 때도 없이 조회수를 살피고 내 글이 좀 좋나?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서울 여행기의 조회수가 오른 것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마 제목 때문인 것 같고, 조회수가 올랐던 글에 라이킷이 달리고 독자수가 조금 늘었던 것과 달리 이 글엔 라이킷도 안 달린다. 짐작하고도 남는다. 제목 때문이다. 의도한 바는 전혀 없고 옆에서 남편이 제목을 지어준 글이었다.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낚시  바늘을 물려다 만 물고기처럼 제목에 클릭했다가 안 읽은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지점이 얼굴 붉히게 만든다. 남편이 내리면 되잖아라고 하는데, 브런치 벗들과 온라인으로나마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던 글이라서 내리기도 망설여진다. 글벗들이 오프라인 벗과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벗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달린 댓글도 있고 내리겠다는 결단은 안 내려진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정성을 기울여 쓰고 이 정도면 그래도 나한테는 만족이야 했던 글이 노출되는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제목으로 낚시질 한 것 같은 글 앞에서 내가 글을 쓴다고?

계획서 문장 하나 탁 하고 떠올리지 못하면서 내가 글을 쓴다고?


오늘 아침은 내가 글을 쓴다고?라는 의문에 답을 찾으며 시작하는 하루이다.

그러면서 또 쓰고 있을 나라서 문제라면 문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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