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일정 기간 살면서 입에 이혼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는 부부들이 있다면 무척 이상적이며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 부부는 이혼이란 말을 많이 하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의 내가 혼자 다 하곤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바라던 결혼 생활이 아니었다. 애를 낳으면서 주말부부로 혼자 키운다는 건 내가 무슨 원더우먼이라도 되는 양 내 능력에 대한 착각에 기인한 선택이었으며, 집 앞에서 밤을 여러 차례 지새웠던 남편은 나를 아껴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내 기준에서 하는 말이다.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며 나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진심이라는 걸 안다. 단지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법. 상대를 위하는 방법을 부모에게서 못 배운 것이다. 거기다 너무 바쁜, 시간을 내기 힘든 회사에 다니기도 한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어서인지 실체 없는 사랑이 힘에 부치고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었다. 듣는 것도 싫었다.
너무 고달프고 힘든 하루하루였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아이를 챙기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또 혼자 아이를 챙긴다. 몸에 힘도 없고 표정은 밝지 못하다. 주변에서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애를 낳은 후배들은 말하곤 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혼자 어떻게 다 헤쳐나가세요. 난 그때 그 말을 은근히 즐겼던 걸까?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말에 그냥 이 정도면 그럭저럭 하고 있나 보다 했는지도 모른다. 애가 엉망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눈물이 난다. (심지어 난 출산하는 날도 허리 통증을 느끼며 혼자 운전해서 학교를 갔다. 조퇴를 하고 집에 와서 목욕탕 청소까지 끝내고 타지에 있는 남편을 그제야 부른 그런 여자였다. 뭘 그리 완벽하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병원에 갔더니 이미 30퍼센트가 열려 있는 상태였었다. 너무 억척같이 산 거 같다.)
우리 엄마가 고생하며 자식을 키운 것을 알기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지만 딸이 원더우먼인 줄 알고 혼자서 척척 잘해나가는 줄 알고 아무런 도움도 안 주시는 것도 너무 속이 상하고 힘이 들었다. 엄마는 올케에게 말하곤 하셨다. "너희 시누는 혼자 애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더라"라고.
한숨이 난다. 엄마에게 말하고 울고 싶지만 차마 말할 순 없다.
'엄마, 내가 잘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고요. 너무 힘들어요. 힘들어서 병날 거 같아요. 마음의 병.'
정말 나는 마음의 병이 왔다. 항상 우울하고 힘들었다. 남편을 두고 첫사랑 생각도 했다. 그랑 결혼했다고 뭐가 그리 달랐으랴만 그래도 온갖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어느 해인가는 아파트 거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 모습에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기도 했다.
위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원더우먼인 줄 알고, 시어머니는 가정적이지 않으신 분이고, 남편은 일에서의 성공이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는 80년대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는 것을 딱히 달가워하시지 않는 분이었다. 엄마가 너무 고생하셨으니 아버지 마음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나도 너무 힘들었다.
기댈 곳이 없었다. 마음도 몸도.
학교가 오히려 편했다. 학생들과 지지고 볶고 지쳐가는 삶이 오히려 나았다. 그랬던 학교도 진상 교장선생님 때문에 상처를 입고 마음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직업적 성취감에 불타올랐던 내 삶이 그냥 무의미한 삶으로 전락했다.
그런 마음 상태로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웠더니 아이가 문제였다. 예민하고 편안하지 못한 아이였다.
다 내 업보다. 내가 뿌린 씨앗이고 내가 거둔 결과물이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고, 혼자 펑펑 울 때도 많았다. 세상을 원망했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결혼을 후회했다.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모든 걸 원망했다. 결혼하지 않고 일에 매진했더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고 부모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결혼을 후회했다. 그리고 남편을 원망했다. 이혼하자고 수차례 이야기했다. 나도 근근이 죽지 못해 버티는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차라리 이혼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치고 지친 남편도 어느 순간 말하곤 했다. 이혼하자 그래.
"애는 내가 알아서 키운다."
"당신이 뭔 수로 키워. 맨날 퇴근도 늦고 애들 밥은 어떻게 챙기고 돌봄은 어떻게 하냐고?"
"이혼하는 마당에 그게 왜 걱정인 건데? 내가 어떻게 키우든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잖아. 애들 알아서 크겠지. 그거 걱정할 거면 이혼을 왜 하는 건데?"
남편 말이 맞다.
결국 나는 이혼도 못하는 겁쟁이다. 너무 힘든데도 결국 나만 생각할 수 없는, 엄마였다.
결혼하고 긴 세월을 남편과 주변환경을 원망하며 결혼을 후회했다. 7년을 힘들게 한 아들도 애증의 상대가 되었다. 너무 미워서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지만 자식인데 버릴 수는 없다. 엄마인 나조차 거부한 자식을 누가 돌봐주겠는가?
그렇다. 난 내 마음에 사랑이 없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사랑이었다.
자식을 버릴 수도 없고, 남편을 내칠 수도 없는 그 마음. 결국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었다면 떠올리기 힘든 그 수많은 사건들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학교 아이가 나한테 그랬다면 나는 당장 병가를 내고 병휴직을 냈을 것이다. 그 아이 이름은 내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엄마 자리는 휴직이 불가능하다. 버티고 버텨야 된다. 그 버틸 수 있는 힘. 결국엔 사랑이었다. 내 몸으로 낳은 내 아이에 대한 사랑. 결혼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게 한 남편이지만 나만 바라보는 남편에 대한 사랑.
사랑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을지도 가끔은 의문이다.
일주일에 2,3일은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해도 즐거운 척해야 했다. 그나마 학교는 교실에서 나오지 않으면 어른을 크게 대면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인 직장이었다.
그렇게 부은 눈으로 출근해도 나를 소중하다고 아껴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힘을 내야 했다. 또 결국은 사랑이다. 나를 바라보는 학교 아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 꾸역꾸역 출근하는 것이 괴롭지만 결국은 아이들의 사랑의 눈빛이 나를 살릴 수 있었다.
사랑이 모든 걸 지탱해 줄 수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남녀든 친구든 가족이든 관계의 지속도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이 관계를 또 만들어 나간다. 관계는 사람에서 나오고 사람은 또 사랑을 하며 관계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고 사랑이다.
사랑... 부처 같은 마음으로 내가 아이를 더 넓게 사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실수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좀 더 사랑을 많이 줬더라면 아이는 저렇게 되지 않았을 터인데.
결국은 모든 게 사랑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쓰기에 대한 사랑이고, 나에게 험한 말을 했던 아들에게 오늘도 밥을 차려 주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다. 이혼하자고 하면서도 남편의 옷을 빨아주고 다려 주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다. 원더우먼으로 날 착각하는 우리 엄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때 되면 생각나고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내가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이 없는 줄 알았던 나란 사람도 사랑이 있는 사람이란 걸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남편, 아들 사랑한다. 우리 이 힘겨운 순간들을 추억할 날이 꼭 오기를 함께 기원했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 큰아들 00야! 너도 사랑의 마음을 저기 니 마음 밑바닥에서 좀 끄집어 냈으면 좋겠다. 엄마는 또 눈물이 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