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너'란 남편

쫓아오는 그 by '나'란 여자

by 나무 향기

그는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겠다고 한다. 뭐가 그리 좋은 것일까?

하지만 나는 싫었다. 멀리 직장이 있어 자주 만날 수 없는 것도, 시어머니가 너무나도 도시 할머니인 것도, 결혼을 위한 기반이 잡혀 있지 않은 것도 싫었다.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해 겨울 방학, 하와이로 한 달간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하와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해피뉴이어를 외치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그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집요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묵는 호텔로 전화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하와이로 올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그를 만났지만 다시 시작할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혼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를 가을에 다시 만나고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상견례는 깨졌다. 어이없는 이유였다. 이유를 적고 싶지는 않다. 아마 적으면 큰 흥미를 끌지도 모를 이야기다. 드라마 소재가 될법한 이야기이도 하다. 하지만 그한테는 부끄러운 일이고 너무나도 도시 할머니 같은 우리 시어머니가 한몫을 하셨던 일이며 그가 철없이 전달했던 말도 원인이 있었기에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우리 부모님은 어이없는 상황을 겪고 결혼이 순조롭지 않은 딸 때문에 슬퍼하셨다.

아버지는 한 날 술을 드시고 취한 상태로 말씀하셨다. 그 과묵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우리 아버지가...

"우리 이 이쁜 딸이, 왜. 뭐가 모자라서 결혼을 못하는 거고..."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2005년 겨울 막바지에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멋도 모르고 시작된 결혼. 갑갑한 집을 떠나 독립된 내 집에서 혼자 산다는 게 처음에는 좋았다. 나도 독립이란 걸 드디어 했구나 하는 기쁨.

그땐 이렇게 힘든 결혼생활이 나에게 펼쳐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유별나고 독특한 시어머니, 아이를 혼자 키우는 외로움과 힘듦, 예민한 기질의 아들, 주말부부를 하는데도 연락도 없고 일만 하는 남편,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내 처지.(그렇게 힘들 때마다 난 첫사랑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선 안되지만 사람 마음이 내 맘대로 되면 각종 종교도 정신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너'란 남편은 나와의 결혼으로 인생 목적의 반은 성취한 사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랑 헤어지고 화장실에서 1시간을 울었다는데... 믿어주는 척 하지만 사실 믿진 않는다. 화장실에서 1시간을 운 남편. 그런 남편이 내 남편이다.



이과보다는 문과가 찐 적성인 남편

'응'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말하는 남편

자화자찬을 즐기는 남편, 긍정적인 남편

나는 없어도 되지만 소파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남편

아들 둘을 둔 부자 남편임에도 아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남편

나 없이는 못 산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사실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남편

공대 출신이지만 집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수리를 수월하게 하지 못하는 남편

나보다는 소파, 탄산음료, 골프, 영어공부, 책을 더 좋아하는 남편 (가족여행을 가면 한 때는 앞에 혼자 걸어가며 전자책을 읽거나 영어 듣기를 하고 있곤 했다. 아들이 저렇게 되는데 남편도 한몫했다. 여행은 가족이 함께 정을 나누고 함께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 가는 건데 그냥 몸만 같이 있지 영혼은 같이 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욕심이 많은 남편 (예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이번에 브런치에 도전해 보라고 하니 완성된 글이 나오기 전에는 신청 안 한다고 한다. 아마 10년이 지나도 브런치 작가 신청 못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니 함께 맥주 한 잔도 하기 힘든 남편 (나도 술꾼도시여자가 되고 싶은데 술 마셔줄 사람이 없다.)

학창 시절을 썩 열심히 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남편 (간간히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일찍 담배를 한 느낌이다.)

완성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 하지만 완성을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는 않는 남편(결혼 10주년 기념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살을 빼고 찍자고 했다. 그 뒤 17년이 되도록 가족사진은 못 찍고 있다. 찍을 일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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