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천재 백종원. 그는 돈을 어마무시하게 번다. 돈 이전에 그에게서 샘솟는 음식에 대한 탐구정신과 창의력은 대한민국 최고이니 그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또한 그런 남자를 꼭 집어 선택한 소유진의 탁월한 사람 보는 눈에 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온갖 아름다운 말로 찬사를 보내고 싶었지만 언변은 짧고,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돈 많이 벌고 잘 살고 싶다는 거다.
남편은 결혼 전 제대로 된 옷도 하나 없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11월엔 홑껍데기 잠바 하나를 걸치고 다니기에 땀이 많아서 저 사람은 추위를 안 타나보다 했다. 웬걸. 그저 옷이 없었을 뿐이다. 돈을 모으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제대로 된 옷이 하나 없던 그는 신혼여행 가는 날도 형이 벗어준 외투를 입고 여행을 떠나야 했다. 불쌍하도다.
그런 그가 여러 가지로 돈에 대해 허당이다.
벌금 천재다. 그리고 때론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다.
1.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벌금
그것도 아파트 주차장이다. 우리 집 앞 주차장. 아파트 주민 중 누군가가 애국정신을 발휘하여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리는 고된 수고를 하면서까지 신고를 했나 보다. 자그마치 8만 원.
규칙과 법규를 어기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에겐 남편은 그야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잔소리를 한다. 왜 그러냐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법규를 지키고 살아야지 그러는 당신이 싫다고. 모범과 정의를 실현해야 되는 대한민국 교사의 남편이지 않냐고.
그는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뭘 이런 걸로 고발을 하냐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 주 뒤 또 날아온 벌금 고지서.
벌금 고지서를 한 번 받아놓고선 또다시 장애인 주차 구역에 떡하니 차를 댄 것이다. 왜 그러니 남편씨. 한숨만 나온다. 그렇게 나의 아까운 돈 16만 원은 아깝지 않게 국가를 위해 바쳐진다.
2. 아파트 정문 앞 신호 위반
대한민국에 이렇게 정의로운 사람들이 넘쳐나니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나라인가? 나름 정의롭다고 부르짖고 살고 불의를 못 참는 나이지만 신호위반을 하거나 난폭 운전하는 사람을 신고하지 못하는 건 블랙박스를 뒤지고 다운로드하고 사이트에 올리는 행위가 귀찮기도 하고, 살면서 저런 실수를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자비로운 마음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엔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모양이다. 엄지 척. 훌륭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여. 그대들의 수고로움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터이니 앞으로도 계속 정의롭기를.
아파트 앞 정문 출입구를 나서면 한 개의 길이 좌회전 우회전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러다 보니 갈라진 좌회전 길은 차 세대 정도가 정차할 공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쁜 아침 출근시간에는 한 갈래 길에 차가 몰리고 좌회전할 차들은 엄청나게 기다려야 된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 앞이 차량 통행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니다. 그러면 빨간 신호에도 눈치를 봐가며 그냥 좌회전을 해버리곤 한다. 나만 그러랴. 바쁜 아침 시간에 그러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다. 간혹 파란불이 되기를 꾸역꾸역 기다려 좌회전을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도 넘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이럴 땐 나도 법규를 어기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구나.
저녁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남편의 예쁜 마음에 남자들만의 외식이 이루어지던 저녁. 길게 늘어선 좌회전 차량을 참지 못하고 살포시 우회전 차로로 들어선 남편.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많은 좌회전 대기 차량을 제치고 호기롭게 좌회전. 그땐 기뻤으리라. 끽해야 5분 정도의 기다림을 멀리 하고 혼자서 당당하게 좌회전을 할 때는.
그 뒤 날아든 신호위반 벌금 딱지. 7만 원. 오늘도 국가발전에 자발적으로 기여한 남편 너님. 훌륭하도다.
(처음엔 여기가 어디지. 대체 어디서 위반을 한 거야 하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반대편 아파트의 가게 이름이 보인다. 나의 탐구 정신으로 찾아낸 가게 이름. 정의가 넘치는 세상에 박수를 보낸다.)
3. 호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당신, 글로벌한 벌금 천재
한 달 호주 출장을 간 그. 호주의 차량은 운전석이 반대라고 한다. 적응이 오죽 어려웠으랴. 버벅거리다 사고가 날 뻔도 하고 식겁한 경험을 카톡 페이스톡을 하며 늘어놓곤 했다.
한 달이 끝날 무렵. 자랑이다. 이제 운전 너무 잘한다고 신이 났다. 다행이다 싶다. 남의 나라에서 운전을 하는 게 오죽 힘이 들었을까. 거기다 그 넓은 호주 여기저기 운전하고 다니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은 사막을 다녀왔다고 자랑도 한다. 꼬박 2시간을 운전했다고 한다. 무튼 한 달 출장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다행이었다. 그리고 출장비 나오면 명품 가방을 사라고 한다. 앗싸 나도 명품 2호가 생기는구나. 남편이 밥도 참치캔, 햇반, 라면으로 때워가며 아낀 식비가 출장비로 나오는 것이니 미안하기도 하지만 사라니 사보지 뭐. 까짓 거 남편 출장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고.
며칠 전 식탁 위에 살포시 놓여 있는 국제우편물 네 장. 당연히 남편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뜯지도 않은 우편물. 영어로 쓰인 우편물이니 더 뜯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업무 관련이려니. 오래간만에 저녁 산책을 하자고 하는 남편. 잘 살펴보지 않는 우편함 통에 눈이 꽂힌다. 어랏. 식탁 위에 고이 모셔진 우편물과 똑같게 생겼네.
"여보 이거 뭐지?"
뜯어보는 남편. 산책 가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말을 못 하는 거 보니 무슨 일이 있긴 한가 본데.
한숨 쉬며 겨우 말한다.
"속도위반 벌금이다."
살펴보니 겨우 2km 초과에 231불. 비싸기도 하다. 호주 벌금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는구나. 잘 사는 나라인가 보다. 식탁에 살포시 놓인 벌금 고지서도 함께 뜯어본다. 370불짜리까지 나온다. 운전에 적응할 무렵 신나게 밟아댄 결과 370불. 자그마치 6장.
구찌는 고사하고 천가방도 하나 못 사겠다. 화가 나지만 포기 상태다. 내년 초면 내 손으로 투자한 ELS로 천문학적인 원금 손실을 볼 예정이라, 잔소리를 하다가도 쑥 들어간다. 난 은행 호구. 넌 호주 호구.
이번엔 남편이 더 화가 나는 모양이다. 걷자고 답답하다고 계속 애원한다. 걷기 싫어. 글이나 쓸 거야. 당신의 글로벌한 벌금에 대해서.
글 쓰는데 건넛방에서 계속 한숨이다. 미치겠단다. 그래 미칠 만도 하다. 넓은 호주 평야를 운전하며 얼마나 즐거웠을까. 다음에 호주에 올 일이 생기면 나는 멋진 운전자일 것이다 생각하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수많은 벌금 고지서가 네 가슴을 후려칠 것이니, 나는 자판이나 후려치며 잔소리를 대신할 것이다.
호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당신. 당신은 진정한 기부왕이며 글로벌한 벌금 천재이니.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 남편의 사주를 보면 자수성가할 팔자란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철학관에서 저 말을 듣고 와서는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야야, 니 자수성가할 팔자란다. 호호호."
어린 시절 남편에게 그 말이 무슨 큰 의미가 있었으랴. 어린 시절 비교적 유복했던 그이니 그저 흘려듣고 말았을 말인데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저 말을 자주 이야기한다. 자수성가할 팔자라고 웃으시던 엄마 얼굴이 생각난다고. 왜 이렇게 사는 게 팍팍한지 모르겠다고, 로또라도 당첨되면 좋겠다고, 돈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 한 푼 못 받고 시작한 결혼이니 그나 나나 힘들긴 매한가지다. 육아휴직도 마다하고 100일밖에 안된 둘째를 떼놓고, 엄마 젖을 먹고 싶어 한 달을 굶는 그 꼬물꼬물한 아기에게 매몰차게 분유를 먹여가며 열심히 다닌 직장이다. 교사 월급 고작 얼마라고 아기의 예쁜 시절을 돈과 맞바꿔치기 했으니 나도 어지간히 어리석은 자이다. 공부만 잘했지 생활의 지혜나 깨달음은 하나도 없었던 지난 시절. 무엇을 얻는 것이 중요한지 매 순간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건만 그 시절의 나는 돈이 더 중요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후배들이 30평대 집을 사서 살림을 시작하는 것이 부러웠고 몇 부 다이아를 받았느니 하는 말도 부러웠고 부러움 천지였다. 돈 없는 것에 대한 설움. 집착하고 싶지 않았지만 돈에 대해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돈에 집착한다고 돈이 모아지면 얼마나 좋으랴. 허당 남편을 보고 있으면 아끼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또 근검이 몸에 밴 나는 오늘도 아끼고 산다. 그나저나 브런치를 하면서 쇼핑을 끊었더니 당신이 이렇게 그만큼 돈을 써버릴 줄이야.
돈 안 써도 어딘가는 빠져나가야 될 돈은 빠져나가는 게 이치인가 보다. 돈으로 액땜하는 게 다행이라던 언니 말을 떠올린다. 아껴봤자 결국 제로섬 게임.
굵직한 사건 외에 꽤 많은 벌금 딱지를 받은 남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남편 차는 남의 눈에 잘 뜨이는지,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지, 신고당한 벌금 건이 또 있습니다. 경찰보다 더 우리 남편을 사랑해 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 00시 시민 여러분. 이제 저를 봐서 남편 차 신고는 그만 좀 해주심이.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터이니 더 이상 저를 울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남편아. 제발 부탁이다. 법규는 무식할 정도로 융통성 없을 정도로 지키고 살자꾸나. 당신의 사랑스런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