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7번째 벌금 고지서가 왔다

호주에서 렌트 시 속도위반 조심, 또 조심하세요.

by 나무 향기

설렘을 안고 출장을 간 남편. 일을 해야 될 상황이긴 하지만 한 달을 외국에서 머문다는 건 분명 설레는 경험이다.

남편은 출장비를 남기고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최대한 식비를 절약하며 호주에서 한 달을 보냈다. 호텔 조식을 제외하고는 컵라면, 햇반, 참치, 캔김치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면서 알뜰하게 살았다. 그 알뜰함이 두둑한 출장비가 아닌 두둑한 벌금을 남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남편은 호주 출장 한 달 동안 렌트를 했다. 운전석의 방향도 달라 운전하기도 힘들었고 산 하나 안 보이는 넓은 평원을 운전하는 것도 지겹다고 하기도 했다. 업무상 필요한 운전이었으니 힘들지만 나름 호주에서 운전에 잘 적응하고 한 달을 끝내고 집으로 왔었다. 같이 가신 분도 있었지만 운전은 전적으로 남편만 했다. 그렇게 미래에 벌어질 일은 절대 예상도 못한 채 국제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 출장이었다.


남편의 설렘 호주, 6장의 고지서도 부족하다고 느낀 건지 7번째 벌금 고지서를 집으로 보냈다.

속도위반 벌금 고지서 6개가 집으로 날아왔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3개씩 나뉘어서.


6개로 끝인 줄 알았다. 합해서 1,818달러면 충분히 호주 경제 성장에도 기여했고, 우리 남편도 신호 위반에 대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했다. 끝이 아니었다.

그제 우편함에 또 한 개의 벌금 고지서가 꽂혀 있었다. 7번 째다. 6킬로미터 초과에 231불. 마지막이길 바란다.

이젠 쓴웃음조차 나지 않는다.


호주에서 렌트를 하게 되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한 번쯤 남편처럼 벌금 고지서를 받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뵌 적도 없는, 호주를 여행할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에 대해서 걱정의 마음도 앞선다. 그래서 이 글을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분명 남편 같은 케이스가 한 두건이 아닐 터인데 호주는 벌금으로 먹고사는 나라인지, 렌터카 업체에서도 이런 벌금 체계에 대한 안내는 일절 없었다고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호주가 제2의 고향이 된 느낌이다. 이렇게 친근한 국제우편물이라니. 벌써 7번째. 내 고향도 3시간 거리라 멀게 느껴지는데 지금은 계절도 다른 호주가 내 옆 동네 같은 느낌이다.

231불. 우리나라 벌금이 결코 비싸지 않다는 걸 실감 나게 하는 액수다.


뜻하지 않게 오랜만에 영문도 읽고 있고 모르는 단어도 찾아보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6번까지는 숫자 확인만 하고 치웠는데 7번이나 배를 타고 왔을 우편물을 쓱 보고 치웠으니, 우편물이 살짝 측은한 느낌이 든다. 내가 측은해서 우편물도 측은해 보인다. 배 타고 오는 수고를 한 우편물에 대체 무슨 내용이 있나, 7번째가 되니 들여다볼 호기심과 정성이 생겼다. 너도 참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겠구나 싶어 그저 버리기엔 안타까운 마음이다.

상세 내역

허용 속도 100킬로미터에 측정 속도 109킬로미터. 기계의 오차 범위가 있을 수 있어서 최종 벌금 속도 106킬로미터. 6킬로미터 초과에 231불이라는 내용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fines.vic.gov.au에 접속해서 내라고 친절한 안내장도 같이 넣어주셨다. 벌금을 안 내게 되면 추가 벌금과 페널티가 적용되니 시간 들이지 말고 FINES VICTORIA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벌금을 내라고 하신다. 남편도 이렇게 호주 웹사이트에 접속해 내 카드로 벌금을 완납했다.


선택권(Options)에 대해서도 안내되어 있다.

벌금을 내든지, 당신이 운전한 게 아니면 정해진 기한까지 운전한 사람에 대해서 알려달라든지, 속도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상황이었으면 전화를 걸든지 웹사이트에 방문해서 소명을 하라고 한다. 남편은 속이 상해서 벌금을 낸 후, 웹사이트에 뭔가 내용을 남긴다고 열심이다. 묻지는 않았다.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이 남기는 글에 누가 신경이나 쓸 거라고 고생인가 싶다가도 얼마나 속상하면 저러나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글을 읽다가 위 사진을 보니 기한이 7월 19일까지다. 고지서가 도착한 게 20일인데 19일까지 내라고 되어 있고 기한 내 내지 않으면 26.60불의 가산금이 추가된단다. 가산금도 어마하다. 자기들은 분명히 공지했다고 다짐까지 받고 있다. 그러면 남편은 어제(22일) 3일 치 가산금도 같이 낸 걸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건지. 지금 열심히 주무시고 계신 남편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마 어제 기한이 지난 고지서에 대해 소명하는 글을 웹사이트에 적고 있었던가 보다 짐작해 본다.


이상하게 작년부터 안 써야 될 돈을 자꾸 쓰게 된다. 작년, 올해, 내년(ELS 손실)은 아마 이렇게 아깝게 돈이 계속 빠져나갈 모양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집을 고친 것도 아니고, 집기를 바꾼 것도 아니고, 안 나가야 될 돈들이 나가는 거라 아깝기 그지없다. 속이 쓰리다.


선진국 맞나? 봉투에 인쇄된 저 흐릿한 영문을 보시라. 80년대 느낌 물씬. 잉크값을 아끼는 건지, 옛날 타자기로 인쇄한 건지? 과거로 여행 간 느낌의 저 봉투. 정겹게 받아들이자. (글 읽고 난 남편이 도장이라고 합니다. 도장 아닌 거 같은데.)


내 옆동네 같은 호주. 벌금 고지서를 7개나 받고 나니 고향 같이 친근하다.



어른들은 돈을 잃으면 돈으로 액땜한 거라고 위로를 해 주신다. 돈을 잃지 않았으면 건강을 잃거나 사고가 났을 거라고 하신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냥 그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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