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를 컵에 가득 따랐다. 배달음식에 딸려온 콜라 몇 캔이 냉장고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눈에 가시 같은 콜라들을 언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만 하다 한두 개가 쌓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내 돈 주고 콜라를 사마신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정말 이 달기만 한 음료는 왜 마시는지 통 모르겠다. 탄산을 즐기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지 왜 이 설탕물을 처마시는 거지? 사이다, 환타도 모두 콜라와 한통속이라 전부 냉장고 구석탱이에 찌그러져있었다. 그런데도 콜라를 마셨다 이 말이다. 화장실 청소용으로 변기통에 모두 들이부을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왐마 더 스릴 있네. 락스를 마시면 이런 느낌일까. 금기를 행한 것 같은 짜릿한 기분. 그러니까 나에겐 콜라란 락스와 다를 바가 없다 이 말이다.
위장이 언짢아서 마셨다. 정확히 10일 만에 요가수련을 했다. 선생님이 그동안 몸이 안 좋았냐고 물으셨다. 몸은 너무나도 멀쩡한데 그냥 게으름을 좀 피우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한때는 수련을 빠지면 큰일이라도 날 듯 야단법석을 떨었다. 작년에 선생님이 인도로 떠나셔서 마이솔 수업이 없어지게 된 날, 얼마나 심란했는지 모른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요가를 좋아했는지를. 정확히는 아쉬탕가 마이솔이겠지. 그거 말고는 다른 요가수련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같이 수련했던 분과 심란한 마음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대책을 논의했고 각자의 수련을 응원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아 수련 좀 땡땡이쳐볼까 그동안 너무 안 빠지고 나갔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신기했다. 일주일을 통으로 안 나갔다. 그리고 10일 만에 수련을 가는 길, 요가원 앞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이건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 가기 싫을 때 느끼는 심리적인 통증 아닌가. 분명 꾀병이 맞는데 진짜로 통증이 느껴지니 참 기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 지금 마흔이라고. 하기 싫어서 배가 아프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나이를 처먹었다고. 발길을 잠깐 집으로 돌렸다가 다시 요가원으로 향했다. 선생님께 오늘 영 아니다 싶으면 하프까지만 수련하겠다고 밑밥을 깔고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중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지만 중단할 수준은 아니어서 대애충 수련을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난리가 났다. 와랄랄랄랄랄라랄랄랄랄라. 배가 아파도 무언가 몸 밖으로 배출이 되면 속이 시원하긴 하다. 그냥 뒤틀리고 아프기만 하면 정말 환장하고 답답해 미칠 노릇인데 문제의 놈들이 밖으로 나왔으니 되었다. 그것도 위도 아니고 아래로 나왔으니 아 이 얼마나 상쾌하고 시원해. 와랄랄랄랄랄랄랄라 거사를 치르고 온수매트를 틀고 찜질기를 배에 댔다. 이렇게 약해서 어따 쓰냐. 늘 궁금하다. 운동이나 요가를 하는 게 체력증진에 소용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나마 요가라도 해서 이 정도인 건지. 아니면 노화의 속도가 체력증진의 속도보다 빠른 것인지.
활명수 한 병이 들어가면 좀 시원할 것 같아서 사러 나갈까 하다가 그냥 콜라를 마셔봤다. 어차피 활명수나 콜라나 다 똑같은 한통속 아닌가. 속이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갈색병에 뭐가 들어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맛은 콜라랑 비슷하구먼.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 정말로 소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콜라가 약보다 더 해로우면 해롭지 절대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플라시보 이펙트로 뇌가 열심히 속아주는 척을 해준다. 나는 원래 헛소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럴 때 꼭 가르치려드는 인간들이 있다. 콜라를 마시면 탄산이 어쩌고 저쩌고 당류가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약을 먹어야 한다 병원을 가야 한다 어쩌고 저쩌고. 으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 그게 무슨 개소리냐 하면서 와하하하하하 비웃어주던가 아니면 개드립에 맞장구를 쳐주던가. 가르치는 건 정말로 조언이나 도움을 물을 때나 하면 된다.
요가를 가지 않은 일주일 동안 작정하고 월화수목금 5일 내내 점심약속을 가졌다. 천변 산책, 사회 초년생의 취업턱, 북촌 산책, 동네 마실, 도반과의 만남. 평일을 즐기게 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평일의 낭만이 너무나 귀하다. 깜깜한 새벽에 출근하여 깜깜한 밤에 퇴근하고, 밖에는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천둥이 치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하루종일 격무와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본 사람들은 다 알 테지. 점심 약속을 하루 이틀 연이어 잡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번 주 수련은 나가리다 하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도반은 나보다 더 활기찬 얼굴로, 나보다 더 큰 목소리에, 나보다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 예쁜 애쉬 그레이가 빛나는 가발을 쓰니 아이돌 가수 같았다. 안 그래도 늘씬한 몸에 탄탄한 근육이 멋있었던 분이라 정말 잘 어울렸다. 그가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수련을 하는 건 분명 요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아닌 것 같아도 싫으면 이렇게 할 수가 없다고. 가끔씩은 남이 보는 내가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일 년 동안 같은 수련실에서 옆에 매트를 깔고 서로의 수련을 지켜보았으니... 다른 도반도 이 분도, 두 분 다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셨다. 그리고 똑같은 조언을 해주시고 똑같은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따로 만났는데 말이다. 나는 뼛속까지 이과생 공대출신이라 ‘에너지’, ‘흐름, ’반다‘ 같은 의미를 잘 모른다. 도무지 들어도 이런 추상적인 말들이 와닿지가 않는다. 수련실 내의 그 기운 같은 게 있다고 하는데 그 기운이 이렇게 도반들과의 조우로 이어지는 것인가. 잘 모르겄다 나는.
오늘 마지막 마이솔 수련을 마치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사나의 숙련도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건강만 하라는,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요가인 특유의 뻔하고 어찌 보면 염세적인 것 같기도 한 말이다. 요가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는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나도 그저 건강하시라고 답했다. 그저 건강만 하시라. 그럼 냉장고에 처박힌 저 콜라들은 변기통에 버리지 말고 일단 보관은 해보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활명수 사러 나가기 귀찮을 때 또 플라시보 이펙트로 써먹을지. 에라이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