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빨리 답을 내던 나는 처음으로 마음껏 길을 잃었다

by 렐레

마음 속 질문의 불꽃놀이를 만난 후 나는 내가 했던 선택들을 하나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나씩 되짚어 보려고 하니 ‘모르겠다. 그냥 나는 결과적으로는 다 좋았어..’라는 생각이 가로막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차분히 앉아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며 손가락에 생각을 맡긴 채 글로 적어보았다. 그럼에도 두어 글자 쓰고 갈팡질팡 망설이는 손가락을 위해서,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해지자고 몇 번을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흔드니 그간 나뭇잎 사이에 가려졌던 농익은 과일 같은 진심들이 하나씩 땅으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사실 나는 내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어.’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걸 하고 싶었다. 패션 디자인이라든지, 그림 작가라든지.. 그렇지만 당시 흔히 들렸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공학을 전공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졸업하면 안정적이게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곤 그 뒤로는 다시 패션 잡지를 열어보지 않았다. 취미로라도 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나도 모르게 났던 생채기가 다시는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게 했나 보다.


지방 사업소에서 서울로 가는 커리어. 당시 내가 다니던 지방 사업소의 중간관리자 분들이 갑자기 나와 면담을 하고 싶다고 했고, 지주사에서 서울에 새로 꾸려진 조직으로 내가 오면 좋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전해주었다. 기한은 한 달 내로 빠르게 이동해서 왔으면 좋겠다고. 서울이라는 다이내믹한 도시를 경험했고 결론적으로는 많이 성장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사수도 없고 어디에도 없던 조직의 포지션, 매년 거의 2배로 불어나는 조직, IT회사는 아니지만 IT프로덕트를 만드는 직무로 모호해지는 나의 커리어, 지방 사업소와 서울 지주사 두 곳 모두에게 보고하는 시스템. 나는 볼멘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정말 온몸이 찢어질 듯이 힘들었다. 내가 3년을 열심히 몸담은 곳이기에 부인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앞으로 나의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지에 대한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작은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일. 퇴근하고서 밥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새벽에 잠들 때까지 재미있게 작업했다. 새로운 고민들이 생기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줬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되어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 내 영향력이 생기는 SNS의 세상도 너무 재밌었다. 그렇지만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결국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즐겁게’ 그리고 ‘많이’ 돈 벌고 싶다는 두 가지가 함께 있었지만 결국 ‘많이’ 벌고 싶은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돈’ 때문에 한다는 찌든 것처럼 보이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방법을 몰라 기하급수적인 금전적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할 수 있으니까 좋다’라고 퉁쳤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거야.. 근데 마음이 왜 이러지?’


솔직함의 과정이 해방감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쓴 가루약을 삼키듯 쓰라린 느낌을 주었다. 나를 감싸고 있었던 모호함이라는 안전망을 한 겹 한 겹 걷어내고 내 안의 욕망을 마주하는 과정은 그 욕망을 부인하게 했던 차가운 현실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 한 겹 씩 모호함을 까서 볼수록, 땅에 뱉어진 껌을 밟은 듯 찝찝한 느낌을 주었다. ‘아니 그럼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왜 못 그랬담? 말은 못 해도 스스로 그렇다면 그런 거지 왜 스스로에게 조차 솔직하지 못했을까?’ 선택들 사이에 끈적하게 붙은 두려움의 정체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건 바로 ‘너 너무 유별난 거 아니니?’라는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보기에 나는 유별난 사람이었나 보다. 하긴, 선생님들이 버린 교재들을 주워다가 공부하는 과정도, 패션디자인을 한다고 물려받은 옷으로 엉뚱한 조합의 옷을 입었던 것도.. 지금하고 있는 모호함에 대한 고민이 무색하게 과거에 나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건 곧 한국 사회에서 좋은 평가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 뒤에서 비웃는 말들을 돌아서 듣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거나, 개성 있다는 말을 방패 삼아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는 것은 나에게 크고 작은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모나 보였던 부분을 깎았고, 시간이 지나며 크게 유별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사람들과 무난히 어울리고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꾹 눌러야만 했다. 비단 풍요롭지 못했던 환경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나에게 ‘유별나다’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 새끼 때 오랫동안 밧줄에 묶여 있으면 어른이 되어 밧줄이 끊어져도 도망가지 못하는 서커스단 코끼리처럼 여전히 내 생각은 ‘유별남’이라는 밧줄로 묶여 있었다.


그런데 유별나다는 건 뭘까? 사람은 80억 개개인이 다 다르다는데 유별남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하는 걸까? 내 과거가 ‘그래 유별났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사회에서 규정하는 ‘눈에 띄지 말고 무난하게 살자’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다르면 뭐 얼마나 달랐다고… 다시 질문의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나를 찾겠다고 멈췄던 시간 속에 억울함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다음으로 가는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음을 열어 놓고 보니 내 안에 숨겨놨던 낫지 않은 상처들만 확인했던 것이다. 정말 울고 싶었다. 이게 뭐람? 이거 하자고 잠깐 멈추고 돌아보자고 했던 거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재빨리 답을 내던 나는 처음으로 마음껏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