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네 그음식5
“여기 참 황량하다.”
2012년 12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국 뉴욕. 아내와 나는 지금까지 봐온 여러 이미지를 조합하며 뉴욕을 상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 뉴욕 공항에 도착할 때까진 그랬다. 공항은 시끌벅적하고 여러 인종들이 가득했다. 미국의 수도, 세계의 수도, ‘멜팅팟’. 인종전시장이란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가야 했다. 주소를 보여주자 택시기사는 차를 몰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기분을 설레게 만들었다. 퇴근 시간인지 차도가 막혔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이내 어두워졌다. 시끌벅적하던 풍경이 어느새 달라지고 있었다. 높은 빌딩이 사라지고 건물들이 어느새 낮아져 있었다. 불빛들이 잦아들고 반딧불처럼 빛이 깜빡거렸다.
반딧불처럼 근사하기보다는 을씨년스런 풍경.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택시가 멈췄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내려서 트렁크문을 열고서 짐을 내리는 것으로 봐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숙소는 2성급 호텔이었지만 모텔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래도 입구엔 ‘트립어드바이저’ 마크가 붙어 있었고, 입구 미니장엔 여행 팸플릿이 가득했다. 아침엔 조식도 나오는 곳이었다. 물론 샌드위치빵과 커피, 오렌지주스, 삶은 계란이 전부였지만.
동네는 자메이카라 불렸다. 가장 가까운 역도 자메이카역. 비록 2성급 호텔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뉴욕이었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했다. 호텔 앞에서 주변을 살펴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전부 흑인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택시를 타고 올 때도 숙소 근처에 이르러선 죄다 흑인들이었다.
뒤늦게 찾아보니 자메이카는 퀸스 지역 중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율이 높은 동네라 한다. 인도사람도 많다 했다. 그런 이들이 산다는 것은 동네 땅값이 싸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 주변엔 고속도로로 보이는 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차들이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중이었다. 그다지 늦은 시간도 아니었건만 가로등도 대부분 꺼져 있고, 그나마 있는 가로등도 희미해 깊은 밤처럼 느껴졌다.
뒤늦게 깨달았다. 뉴욕은 참 넓구나. 화려한 곳만 있는 게 아니구나. 넓은 빌딩만 가득 찬 곳이 아니구나. 하긴 서울도 그렇지. 뉴욕의 다양한 면모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뉴욕땅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 우리가 아는 정보라곤 맨하탄, 하늘을 찌르는 듯한 빌딩숲, 브룩클린, 차이나타운, 센트럴파크, 자유의여신상, 타임스퀘어. 그 정도였다.
뉴욕에 퀸스라는 지역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린 맨하탄이 곧 뉴욕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맨하탄은 뉴욕의 5개 행정단위구역 중 하나로 브롱크스, 브룩클린, 스테이튼아일랜드, 퀸스라는 4개 행정구역이 더해져 뉴욕이 됐다. 우리가 퀸스, 그 중에서도 자메이카 지역에 숙소를 정하게 된 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유는 두 마리 개 덕분이었다. 두 마리 개와 함께 묵을 숙소를 구해야 했으나 우리가 아는 맨하탄엔 개가 묵을 숙소가 거의 없었다. 운 좋게 개가 묵을 수 있는 곳은 너무 비쌌다. 이미 비행기표를 구한 가운데 눈이 빠져라 숙소를 뒤졌다. 숙소를 구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 뉴욕엔 맨하탄 말고도 참 많은 지역이 있다는 것을.
퀸스라는 지역에 다행히 개를 받아주는 숙소가 있었다. 가격도 뉴욕 물가 치고는 부담이 적었다. 하루 숙박료가 10만원이 안됐다. 동네도 자메이카 지역. 왠지 흥겨움과 예술혼이 넘칠 것 같은 좋은 느낌. 자메이카라는 이름에 속았던 것일까. 어쨌든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아내는 여행에 지쳤는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개 두 마리까지 데리고 이동했으니 힘겨운 여행이었다. 강아지들 것까지 짐도 만만치 않았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올 때 바라본 풍경을 봤을 땐 근처에 변변찮은 식당은 없었다.
그 와중에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다. 몇 달전 통화를 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걸 들은 터였다. 아내 친구도 때마침 뉴욕에 있었고, 아내보다 먼저 와있었다. 친구는 플러싱에 있다고 했다.
“플러싱? 거기가 어디야?”
“나도 몰라. 뉴욕이라고 하는데, 주변에 모두 한국사람들이야. 여기 파리바게트도 있어.”
친구는 뉴욕 친구 초대를 받아 부푼 꿈을 안고 미국땅을 밟았지만, 10일째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 친구는 출퇴근하느라 바빴다. 친구는 뉴욕 지리를 전혀 몰랐으며,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다. 뉴욕 친구가 시간을 내지 않는 한 친구는 한발짝도 나설 수 없었다.
머나먼 미국땅, 게다가 그 좋다는 뉴욕까지 와서 10일째 집에만 있으니 친구는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뉴욕이라고 왔지만 생소하기만 한 자메이카라는 동네에 와있는 우리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아내는 침대에 드러누워 친구랑 한참 수다를 떨었다.
아내에 따르면 친구는 입담이 좋았다. 지친데다 동병상련 사정까지 겹쳐 전화를 끊지 못하는 듯했다. 갑자기 아내가 배고프다 했다. 근처에 패스트푸드점 있는 걸 봤다며 햄버거세트를 주문했다. 감자튀김도 꼭 포함하라며. 그 말만 하고선 아내는 친구와 통화를 계속 이어갔다.
아내는 눈썰미가 무척 좋다. 한 번 본 거리나 동네인데도 어디쯤 빵집이 있다, 커피숍이 있다는 걸 놀라울 정도로 기억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가보면 분명히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여서인지 패스트푸드점이 있다는 아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맥도날드가 있었다. 생뚱맞은 곳에 있었다. 바로 근처에 고가도로가 있었고, 차량들이 ‘쌩쌩’ 달렸다. 서울로 치면 내부순환도로 느낌이었다. 그 옆으로도 차선이 여러 개 겹쳐 있었고, 교통량이 많은 곳이었다. 근처에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찻길만 가득한 곳에 덩그러니 있는 맥도날드.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종업원은 모두 흑인이었다. 뭐라고 말을 걸었다. 아, TV나 영화에서 본 영어 발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것이 정통 흑인 발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 할 말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패스트푸드점이니 주문이 뭐가 어려울까 싶었다.
생각보다 메뉴가 많았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종업원이 뭐라고 말한다. 역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빨리 주문해라.” 정도가 아니었을까. 4번이었다. 아내가 말한 건 4번에 제일 가까웠다. ‘가만, 저기 있는 저거 4번 주세요를 뭐라고 해야 할까.’
“헤이, 아이 원트 데얼 넘버 포.” 이 정도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기대한 답은 경쾌한 소리로 “오케이”라고 말하고 뒤돌아서 제 할 바를 서둘러 하는 것이었는데, 종업원은 또 뭐라고 떠들었다.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4번 달라는 것을 왜 못 알아듣지? 나는 다시 한 번 더 또박또박하게 “아이 원트 넘버 포”라고 말했다.
종업원이 고개를 갸웃했던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이나 확인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이 짧은 요구사항이 왜 이리 길게 이어져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내 발음이 ‘넘버 포’도 못할 정도로 구린가 싶기도 해서 손가락 네 개를 펴서 몇 번이나 강조했다. 종업원이 몸을 돌린 것으로 봐서 주방쪽에 전달이 된 것 같았다. 빈 자리에 앉아서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긴 지난번 ‘루이빌’이란 도시에 갔을 때 ‘월마트’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을 때 ‘월마트’를 알아들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월마트’가 그렇게 어려운 발음인지 그 때 처음 알았고, 내 발음이 얼마나 엉망인지도 그 때 알았다. 그래서 ‘넘버 포’를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했고, 숙소에 가면 아내한테 ‘넘버 포’를 제대로 교육받아야겠다 생각했다. 아내는 제법 영어를 잘했고, 혀를 굴리는 것이 내가 듣기엔 영락없는 흑인 발음이었다.
잠시 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물건이 나왔다. 종업원이 뭐라고 또 떠든다. 이제 그만 떠들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패키지박스가 네 개다. 잘은 모르겠지만 ‘마이 박스?’ ‘리얼리?’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주문이 잘못 됐다. 나는 4번을 주문했지, 네 개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넘버 포’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 긴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할 자신이 없었다. 문장 조합이 어떻게 되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오케이”라는 말을 한 건 나였다. “땡큐”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도대체 뭐가 땡큐란 말인가.
어쨌든 숙소에 도착해서 패키지박스 네 개를 내려놓자, 아내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아내는 상황판단력이 빠르다. ‘에휴’라는 한숨 한 마디를 내뱉고 “먹자”라고 했을 뿐이었다. 아내는 ‘딱’ 정량을 먹었고,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일년 내내 콜라 한 방울 먹지 않는 나는 그날 꽤 많은 콜라를 마셨고, 꽤 많은 감자튀김을 먹었으며 꽤 많은 햄버거와 닭고기를 먹었다. 뉴욕 맥도날드 콜라는 한국 맥도날드 콜라보다 양이 많았으며, 햄버거 또한 컸다. 자메이카가 주는 푸짐한 환대인사였다.
* 2012년 12월 2주 동안 뉴욕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