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땀 ‘뻘뻘’, 커피 마시고 멈췄다

그동네 그음식6

by 이야기보따리

아버지 팔순을 맞아 베트남 다낭 여행을 계획했다. 감기가 한 달째 떨어지지 않았다. 콧물이 줄줄 흘렀고,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다른 병원이었다. 이렇게 감기가 낫지 않을 수 있나 신기했다.

20240912_140557.jpg 다낭 미케비치


한 의사는 '감기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 의사가 준 약도 별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밤이 되면 긴 기침에 시달렸고, 아침이 되면 피곤한 상태로 일어났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은 상태로 가고 싶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다낭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다른 나라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바람이 살살 불었다. 바람이 공기를 씻어내니 더운 날씨도 어느 정도 괜찮았다. 하늘은 무척 맑았다.


첫날 몇 군데를 돌았다. 다낭을 대표하는 해변 미케비치, 해수관음상이 유명한 영흥사, 별명이 '핑크성당'인 다낭대성당, 마사지를 하고 숙소 도착.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별로 힘들 게 없는 일과였지만 침대에 누우니 너무 좋았다. 씻지도 않고 한동안 누워 있었다. 여행 대신 침대에 계속 누워 있고 싶었다. 이날은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오전은 아이들과 숙소 수영장에서 놀았다.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했다. 평소라면 같이 놀았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는 걸 한참 동안 지켜봤다.


오후엔 투본강에 광주리배를 타러갔다. 다낭 가이드에게 농(대나무와 야자 잎으로 만든 뾰족한 원뿔 모양의 모자)을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은 농을 쓰고서 '키득'거렸다. 아버지는 멋쩍게 웃었다. 농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 제법 그럴 듯했다.


늦은 오후엔 호이안으로 이동했다. 예쁜 마을이었다. 해가 지기 전 도착해 어둠이 깔린 이후까지 길게 마을을 구경했다. 사진 찍을 곳이 많았고, 구경할 곳도 많았다. 마을을 몇 번을 돌았다. 오래전 일본 상인들이 여기를 드나들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20240913_184401.jpg 호이안


이야기가 많은 동네였다. 야경이 예쁜 동네라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래 전부터 유럽과 아시아 여러 상인들이 드나든 국제 무역항이었다. 골목 여기저기 옛 발자취를 쫓으며, 역사 이야기를 살피며 즐길 만한 동네였다.

주변이 어둠에 깔리자 다같이 배를 타고 소원등을 물에 띄웠다. 숙소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고, 다같이 수영을 했다. 평소라면 나도 열심히 수영을 했겠지만 저녁에도 구경하는 게 더 좋았다. 사진 찍는 역할에 충실했다. 방에 돌아와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역시 좋았다.


그 다음날은 바나힐에 가는 날. 아침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몸에 기운이 없고, 계속 땀이 흘렀다. 바나힐에 올라가자 비가 내렸다. 실내에서 놀고 나오자 세찬 바람이 불었다. 깜짝 놀랐다. 여름이 초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었다. ‘덜덜’ 떨며 다른 가족을 살폈다. 아이들도 몸을 떨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뷔페식 식당이었다. 먹을 게 많았고, 생각보다 맛있었다. 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쉬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지막날은 쇼핑 시간. 첫번째 커피를 파는 곳에 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속도 좋지 않았다. 땀이 흘렀다.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방안엔 냉기가 가득했다.


아내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그 순간에도 땀은 계속 흘렀다. 옷이 땀으로 젖었다. 20분 정도 긴 설명이 끝나고 시음시간. 내 앞에 온 작은 커피를 홀짝였다.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 속이 편안했다. 그 전까지 아프던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4일 내내 따라다니던 두통이 커피 한 잔에 사라지다니.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 자리에서 다섯 잔 정도를 마셨다. 커피와 두통이 관계가 있었던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커피가 약일 리가 없고, 앞에서 설명하시던 분도 두통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통증을 느끼지 않은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또 마셨다. 이 순간 이후 두통과 각종 통증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자리에서 아내는 커피를 꽤 많이 샀다. 커피를 마시고 내 두통이 사라지고 몸이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저녁이 되자 다시 두통이 시작됐다. 다시 몸이 피곤해졌다.

20240914_172038.jpg 여기서 기적의 커피를 마셨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를 집에 모셔드리고 곧장 병원에 갔다. 새로운 병원이었다. 병원 의사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CT를 찍는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다. "빨리"라는 말과 함께.


빨리 이 두통과 기침, 기운 빠지는 현상, 어지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종합병원에서 CT를 찍었다. 폐렴 진단이 나왔다. 그렇게 10일 입원했다.


퇴원한 뒤 베트남에서 산 커피를 내려 마셨다. 여전히 좋았다. 아픔과 상관없이 맛있는 커피였다. 그 때 커피를 마신 뒤 한동안 모든 통증이 사라진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커피 한 잔은 그 당시 잠깐이라도 통증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괴롭고 괴로운 여행이었지만 그 순간은 다시 기억해도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짧고 기적같은 시간이었다.


* 2024년 9월 다녀왔습니다.


#팔순 #다낭여행 #호이안 #커피 #폐렴



이전 05화뉴욕에서 'four' 때문에 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