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네 그음식3 – 제주와 대방어
영과 나는 30년지기다. 정확히는 30년보다 더 오랜 인연이다.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술 마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2014년 12월 연말에 영과 영의 아내, 나와 아내가 연말에 모였다. 어쩌다 보니 과거 이야기가 나왔다. 2005년엔 단둘이 여행을 갔는데 참 재밌었다. 영은 그때 큰 아픔이 있었고, 둘은 제주행 배에 몸을 실었다.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더 큰 아픔. 둘은 '자전거를 타고 제주 한 바퀴 돌기'란 계획을 세웠다. 첫날은 좋았다. 바람은 시원했고, 제주가 좋았고, 무엇보다 둘 다 기분이 좋았다. 기분만큼 자전거는 '씽씽' 잘 나갔다.
첫날 저녁 어쩌다 보니 암흑 속에 갇혀 버렸다. 첫날 목표가 성산읍이었지만 가도 가도 불빛이 보이질 않았다. 생각보다 제주의 밤은 어둡다. 어디가 어딘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가운데는 찻길, 오른쪽은 자전거길, 그 사이는 경계석이었다. 자전거길 오른쪽은 도랑이었다.
피해야 할 곳이 많았다. 도랑을 피해야 했고, 경계석을 피해야 했다. 문제는 어둠이 짙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영과 나는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스르릉' 그리는 소리를 통해 간신히 파악할 뿐이었다. 중간중간 "거기 있어요"라면서 서로를 확인했다.
가끔 차가 나타나면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렇게 밝았다. 그럴 때면 순간 바닥이 환해졌다. 둘이서 열심히 페달을 저어야 할 때였다. 그 순간은 참 짧았다. 몇 초 뒤면 우리는 다시 어둠에 갇혔다. 그렇게 9시 넘은 시간 겨우 성산에 도착했다.
우리는 '자전거 타고 제주 한바퀴'와 '가난하게 먹기'란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외에는 모두 자유. 성산읍에 도착하자 술을 파는 곳 외엔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2가지 규칙을 모두 알고 있을 영은 내 눈치를 보더니 겨우 말문을 열었다. "오늘 하루만 고기를 먹으면 안될까?"
첫날 어둠과 싸우느라 진을 뺀 둘은 그날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그 다음날부터 영은 자전거 타는 고통에 시달렸다. 허벅지가 아팠고, 무릎이 아팠고, 엉덩이가 아팠다. "엉덩이를 떼서 버리고 싶다"고 외쳤다. 타다 걷고, 타다 걸었다.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모시고 움직이는 여행이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둘은 열심히 떠들었다. 영의 아내는 재밌어했고, 내 아내는 별 말없이 듣더니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말없이 있던 아내가 입을 열 때는 결단을 내리겠다는 암시였다.
"알았어. 둘이서 함께 여행했던 그때가 그립구나. 내가 2박3일 보내줄게. 날짜 정해봐."
그렇게, 불과 2주 뒤인 2015년 1월 8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전거 여행은 이미 해봤으니 이번엔 오토바이로 정했다. 참 신기한 게 영과 내가 뭉치면 항상 여행 테마가 '고생'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랬다. 1992년부터 시작된 질기고 질긴 ‘고행여행’의 악몽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한 번도 ‘고생여행’을 계획한 적이 없었으나 운명은 예외 없이 ‘자 고생’이라며 놀라운 고통을 선물했다.
떠나기 전 확인한 바 제주 날씨는 영상이었다. 둘은 옷도 가을 느낌으로 입었다. 이미 기분이 ‘두둥실’ 떠올라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린 상태였다. 우리는 많은 걸 놓쳤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건 바로 기온.
영상은 지표에 한정된 수치였다. 제주는 바람이 무척 셌고, 그 때는 더했다. 체감기온은 영하 10-20도였다. 오토바이를 타자 체감기온은 더 떨어졌다.
둘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참 지저분하게 제주를 여행했다. 몸을 완전히 웅크려 그야말로 고등어처럼 유선형 상태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둘은 주위를 살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참 감사했고, 밖에 나서길 두려워했다. 오전 내내 이불 속에 있었고, 점심때까 돼서야 느릿느릿 오토바이를 몰았다.
3일째 마지막날이 되자 둘은 제대로 한 게 별로 없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2박3일의 귀한 여행. 아내가 선사한 깜짝 선물. 이런 선물이 우리가 사는 동안 또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귀하디귀한 선물이건만 오토바이를 타며 눈물, 콧물 쏟은 것 외엔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둘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다. 기억나는 이벤트가 필요했다.
"겨울 제주하면 대방어 아니야? 대방어 어때?"
둘은 그 동안 대방어를 이름만 들었지,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이번이 기회였다. 비행기 시간이 1시간30분 남았다. 우리가 있는 동문시장에서 공항까지는 20분. 빼기를 하면 1시간 10분. 충분한 시간이었다.
곧장 시장으로 돌격. 대방어를 파는 가장 가까운 횟집으로 쳐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방어 한 마리를 시켰다. 대방어 한 마리가 나오기 전 둘은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시간은 20분 정도 지난 상태.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5초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여기, 대방어 한 마리 더요."
이번에도 역시 20분 정도만에 대방어 한 마리를 해치웠다. 소주 한 병과 함께. 물론 처음과 달리 속도는 살짝 느려졌다. 사람 입이 참 간사해서, 똑같은 것이라도 배가 부른 상태일 때는 맛이 달랐다. 우리가 서로를 쳐다봤을 때 '어, 배가 살짝 부른데'라고 느꼈다. 내 생각엔 그랬다.
그렇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고, 역시 짧은 시간 내에 한 그릇 뚝딱. 나는 대방어값을 던지듯 건네고 곧장 택시를 탔다. 운이 좋았다. 택시기사에게 "빨리 가 달라"고 재촉했다. 택시기사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요"라면서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택시기사는 느긋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요리조리 '쏙쏙' 빠져나갔다. 택시가 멈추자마자 역시 택시값을 던지듯 건네고 곧장 달렸다. 우리가 비행기를 탔을 때 남은 시간은 채 1분이 안됐다.
살면서 그 뒤에 대방어를 몇 번 더 먹었다. 하지만 그 때 제주에서 먹었던 것만큼 더 맛있었던 대방어는 만나지 못했다. 몇 년 뒤 한 번 더 대방어를 먹고선 지금껏 그 선배와 대방어를 먹지 않고 있다.
평생 먹을 대방어를 그 때 먹었고, 전력질주하듯 입에 구겨넣은 대방어의 맛은 너무나 강렬했다. 횟집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대방어를 집어들 때 그 맛은 결코 재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초시계를 재면서 대방어를 먹을 순 없었다.
살다보니 그 때 그 순간이 때때로 그립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또 선물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겨울행 제주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어느 순간 제주에서 둘이 대방어를 먹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우리 나이가 과연 몇 살 때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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