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 그 음식1 괌과 김밥
"내일 아침은 간단하게 김밥이나 먹자."
토스트에 버터를 곱게 바른 뒤 한 입 깨물며 '음' 소리를 내던 아내가 고개를 들며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놀란 건 나도, 어머니도 마찬가지. 누구도 말을 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김밥이나 먹자"라는 말 앞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간단하게'라는 부사를 붙였다. 그랬다. 김밥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이긴 했다. 요리라고 부르기도 '뭐'한 패스트푸드이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가 괌이라는 점이었다.
태평양 원주민 문화와 미국 문화가 어우러진 곳. 어머니와 아내가 최근 수술을 마친 뒤 이제 조금 한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1940년대생인 부모님은 이제껏 외국을 한 번도 못나가봤다.
하긴, 부모님뿐이었을까. 주변에 그런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외국 나가는 게 이젠 대수롭지 않게 된 시대이기도 했다. 여전히 외국 한 번 못나간 어르신들이 많았지만 이젠 매년 외국에 나가는 어르신들도 흔해졌다. 그런 사회 분위기와 개인적인 여유,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어우러져 외국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첫 여행지라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를 고르는 게 만만했겠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여행은 유럽이나 미국이 좋지"라고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게 화근이었다. TV에서 여행지 소개를 하고 있었던가, 아니면 누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던가, 전후사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는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몇 가지 확인작업을 했다.
"필리핀도 좋아요. 바다도 좋고."
"필리핀 위험하다. 반군들도 있고.“
뉴스 보기를 공기 들이마시듯 즐기는 아버지는 지나치게 아는 게 많았다.
"아버지, 외국 나가면 먹는 건 괜찮겠어요? 생소할 텐데."
"난 아무거나 잘 먹는다. 그런데 그건 왜 묻노.“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말에 속았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아무거나 잘 먹는다" "아무데서나 잘 잔다"라는 말을 쉽게 믿으면 안된다. 하긴 연인 사이에서도 가장 쉽게 싸우게 되는 게 바로 이 '아무거나' 아니던가.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여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무거나' 선물하다가는 싸늘하게 달라진 얼굴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아무거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바로 이 '아무거나'다.
첫끼로 먹게 된 호텔 조식.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토스트빵과 스프, 콘프레이크와 요거트, 과일과 쿠키까지. 과일주스 종류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부드럽고 따끈따끈한 오믈렛까지. 아내와 난 접시 가득 음식을 채웠고, 어머니도 평소 식사량에 맞게 음식을 떠왔다. 아버지 접시에 놓인 건 식빵 두 개와 우유 한 컵이 전부.
"아버지, 그거 드시고 괜찮겠어요?"
"난, 아침에 많이 안먹는다 신경쓰지 마라."
누군가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라 했던가. 아침을 이렇게 굶었으니 점심을 배불리 드실 거라 믿었다. 점심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평가가 좋은 태국식당으로 정했다. 예상대로 손님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수저와 포크를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군침을 당기는 소리들이 홀 안에 가득했다.
우린 딱 한 자리 남은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들어간 뒤 종업원을 불렀다.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아버지쪽을 바라봤는데, 아뿔싸 테이블엔 세 사람 뿐이었다. 어찌 된 걸까? 식당 밖으로 나가보니 아버진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난 괜찮다. 속이 안좋다. 너희들끼리 먹어라."
아버진 알 수 없는 메뉴,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흘깃 보고선 마이클 잭슨의 스텝처럼 황급하게 뒷걸음친 게 틀림없었다. 머리 속에선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이 식당을 포기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지. 지금 모두 허기진 상태인데. 지금 먹을 만한 곳을 빨리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지. 이곳은 세 사람이 만족하고 한 사람이 불만족인데, 옮긴 곳은 한 사람만 만족하거나 네 사람 모두 불만족일 수 있는데.
결국 안전한 확률로 가기로 했다. 세 사람이 만족하는 쪽으로. 밖에 있는 아버지가 신경쓰였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음식을 '싹' 비운 어머니가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갔고, 우리도 뒤를 따랐다.
오후 시간은 김밥집 찾는 게 관건이었다. 오후에 미리 예약해놓은 일정들이 있었지만 일정을 소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평양 바다에서 돌고래들이 점프를 할 때도, 요트 위에서 원주민이 노래를 부를 때도, 낚시를 하던 누군가가 '낚았다'고 소리를 칠 때도 머리 속에선 오로지 '김밥' 뿐이었다.
검색으로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 건 없었으니까. 경험자도 없었으니까. 그래, 믿을 건 택시였다. 한국에서도 지역 여행정보를 가장 잘 아는 건 택시. 여기서도 택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기억 속 파편을 간추린 추측이다. 아마 한국인 택시기사를 찾았을 것이다. 외국인 택시기사는 패스. 한국인 택시 기사를 찾은 뒤 한국인 택시 기사한테 김밥을 파는 곳을 물어봤을 것이다. 택시기사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기억이 이어진다. 택시는 바닷가쪽에서 내륙쪽으로 들어갔다. 15분쯤 들어갔나? 20분쯤. 동네는 살짝 을씨년스러웠다. 어두웠다. 간판이 있었지만 불이 희미했다. 놀라운 건 가게들이 제법 많았고, 그 중 상당수가 한인식당이었다는 것. 택시는 우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몇몇 식당을 수소문한 결과 김밥을 파는 곳을 찾았다. 유레카.
김밥은 내일 먹을 것이라며 주문을 부탁했고, 메뉴판을 쭉 훑어보았다. 아내는 돌솥밥을 시켰다. 메뉴 중 '병어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괌에서 병어조림이라니. 병어는 담백하면서도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어류다.
"아버지, 병어조림 어때요?"
"난, 괜찮다. 너거 먹고 싶은 것 시켜라."
전라도에 가면 '거시기'로 모든 말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말로 '괜찮다'도 그렇다. 그런데 '괜찮다'는 일종의 암호다. 높낮이, 빠르기, 톤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버지의 지금 '괜찮다'는 '완전 오케이'였다.
김치, 오이소박이, 콩나물무침, 어묵조림, 미역무침과 같은 밑반찬이 나왔다. 아버지가 반찬을 입에 넣는 걸 여섯 개의 눈이 조심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무려 두 끼를 굶은 아버지. 이번 식사마저 마치면 이런 대략난감이 없었다. 우물우물 씹어서 삼킨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맛있네."
여섯 개의 눈이 형광등이 켜진 것처럼 환해졌다. 선거에서 당선자 발표를 기다리는 지지자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버지는 뒤이어 소주를 시켰다. 흥이 오른다는 증거. 첫 잔을 비우고 난 뒤 갑자기 주위가 새까매졌다. 우리 주변 뿐 아니라 온 세상이 까매진 것처럼 느껴졌다.
"정전이예요. 종종 이래요."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심드렁한 말투였다. 인간에게는 시각도 있지만 후각도 있고 촉각도 있다. 게다가 인간이 만든 빛은 꺼졌지만 어슴푸레한 달빛도 있고, 별빛도 있다.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음식을 집어들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어둠이 한편으론 오히려 좋았다. 시각이 꺼지자 미각과 청각이 오히려 강해졌다. 젓가락질 소리, 씹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한석봉이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것처럼 우리는 음식에 더 집중했다. 어둠 속에서 넷은 조용히 음식을 음미했다. 아버지가 소주 두 병을 비웠으니 그날 저녁은 성공이었다 봐야 하지 않을까.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식당 이름이 궁금했다. 그 날 저녁은 정신없이 택시 기사를 수배했고, 택시 기사의 임기응변에 의해서 그 식당을 찾았다. 여행책에도 없었고, 어느 블로그에도 소개되지 않은 곳이었다. 하필이면 저녁까지 고생한 핸드폰이 식사 땐 빨리 충전해달라며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남은 사진은 정전 되기 전 찍은 밥상 사진이 전부.
도대체 그 동네는 어디였을까. 김밥과 병어조림을 파는 곳. 한인식당이 여러 곳 있는 곳. 관광객은 전혀 없이 오로지 주민들만 찾는 곳. 이 정도 정보만으로 그 동네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찾지 못해도 괜찮다. 이미 그 맛은 내 기억의 지도에 뚜렷한 좌표로 찍혀 있으니까.
* 부모님을 모시고 2016년 11월에 괌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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