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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Jan 19. 2021

#6 내 안의 목소리

부모는 그냥 되는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었다. “너는 왜 너만 생각하냐. 못됐다. 넌 정말 이기적이다.”라는 말. 이 말은 꽤나 상처가 되었고, 이 말이 귓가에 맴돌 때마다 이와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애쓰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호구 아닌 호구 같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고, ‘no’를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것이 타인에게는 비교적 좋게 비쳤고, 어떤 이들에게는 “얘는 참 착해.”라는 말을 곧잘 듣게도 했다. 그놈의 ‘착하다’라는 피드백이 또다시 내게 강력한 동기가 되어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도 그만두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내 영혼과 마음이 피폐해진다는 것도 외면한 채, 나는 상당한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연애시절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평소 발 사이즈가 작아서 기성화 매장에는 신을 수 있는 구두가 없었다. 운동화만 신어도 되는 학창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어 면접도 봐야 하고, 나름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도 가야 하니 구두 한 켤레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맘먹고 백화점에 갔더랬다. 내 사이즈가 없었으니 맞춤 제작을 해야 했고, 시간이 걸려 한참 후에 받은 구두는 실망만 안겨주었다. 원래 슬링백의 예쁜 구두였기에 신발에 대한 기대감도 컸었다. 그런데 신발을 신어보자마자 나는 절망했다.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네 번째와 새끼발가락이 훤히 내다보이는 게 아닌가. 보기에도 불편해 보였던 신발은 신어볼 것도 없이 형편없었었다. 내가 난처해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거 너무 발가락이 보여서.... 못 신을 것 같은데.....”라고 하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점원은 “요즘 이런 디자인이 유행이에요. 잘 어울리세요. 이게 딱 맞는 거예요.”라며 내 말을 끊고 연신 신발에 대해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박할 기력도 용기도 없던 나는 우울한 마음을 안고 고개 숙인 채, 더 이상 할 말도 못 하고 구두를 끌어안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당연히 그 이후 신발은 신을 수 없었고, 당시 연애했던 지금의 남편은 “내가 같이 가줄게. 그거 바꾸자. 그걸 어떻게 신어. 응?”하며 나의 멍청함과 아둔함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도와주려 했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싫은 말 한마디 못하는 나는 그때도 ‘내가 발이 작아서 그런 건데..... 신발을 맞춰서 며칠씩 걸린 신발인데.... 내가 바꿔달라고 하면 점원분이 곤란할 거야.’하며 스스로를 탓하며,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다음이 정말 결정적인데, 나는 그 비싼 신발을 신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박스에 넣어둔 채 우리집 1호가 태어날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 10년 가까이 말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냔 말이다. 내가 이토록 멍텅구리 시절까지 토해내는 건,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부모의 비난 섞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너는 왜 이렇게 너만 알고, 이기적이야.”라는 말. 물론 부모는 별 신경 안 쓰고 한 말이겠지만. 듣는 아이에겐 몸속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이 말을 내 아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충동이 때때로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집 순딩 순딩 1호도 2호가 태어나면서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자신의 것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자기 입에 있는 것도 꺼내서 주는 1호 때문에, 속도 끓였고, 자기 물건을 남에게 미련 없이 턱턱 주는 것 때문에 한숨이 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에는 반기면서 환영까지 했더랬다. 드디어 우리집 1호가 이젠 좀 영리하게 행동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호도 ‘자기 꺼’라는 개념이 생기자 둘의 충돌이 잦았고, 나는 두 형제의 시끄러운 전쟁통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넌 왜 너 밖에 몰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말을 뱉어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고, 이 상황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끝내 그 말을 꾹꾹 삼키며 한 고비를 넘길 때였다.


아! 이건 유혹이었구나. 아이들을 상처 입히고 싶은 유혹!


  나는 그 순간, 부모에게서 내게, 나에서 내 아이들에게로, 세대 간 이어질 수 있는 상처의 말을 끊어낸 거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이러한 유혹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것이 유혹이고 세대 간의 문제라고 인식한 이후, 나는 더욱 조심할 수 있었고 꽤나 그 수행을 잘 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7세 이전까지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의 중심이고 전부인지에 대해서 강조하기 위해서다. 부모의 말이 아이의 내면, 성격,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그걸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사람은 쉬운 걸 선택하기 마련이다. 익숙한 걸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부모에게 들었던 가장 상처되는 말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할 뻔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아픔과 상처를 물려줄 뻔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가슴 철렁했는지. 이걸 깨닫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순간이 오자 좌절은 해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잠영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순간’‘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멈췄다는 것’이다. 부모인 내가 스스로 그 순간을 느끼고 그 말을 실행하지 않기로 행동하자, 이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깨닫고 멈출 수 있는 것’. 점점 부모로서 성숙의 길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같았다.


  부모가 자신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면, 잘못인지 모르고 계속 행동할 수밖에 없다. 모르고 하는 실수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가장 좋은 것을 먹인다고 여기는 부모가 사실은 가장 몸에 안 좋은 것을 먹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말이다.


  다행히 빠르게 스스로를 인식했고, 겸허히 나의 악한 본성을 인정했다. 그랬더니 이후에 끝없는 유혹에서 꽤나 잘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었다. 더 이상 저 밑바닥 내면의 묵은 목소리가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후의 새로운 유혹은 계속되었지만(웃음).


  한번 이겨낸 사람들은 그 성공경험이 동력이 되어 ‘이기는 습관처럼 ‘유혹을 견디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좋은 엄마’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엄마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토닥토닥해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뿌듯해 할 수 있는 부모로서의 옳은 결정과 행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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