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환 Oct 14. 2020

[비탄의 섬] 대만 민주혁명 운동의 뒤안길

대만민주화운동 = 미려도 사건

去年冬天, Heartbreak Island 1995


1949년, 혹은 1950년 이후로 한국과 대만은 무척이나 유사한 역사발전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대만은 1949년 중국대륙을 공산당에게 내어준 뒤 장개석에 의해 반세기 동안 국민당 독재정권을 유지해왔었다. 그리고 민주진보당(민진당)과 엎치락뒤치락 정치교체가 이뤄진다. 우리로선 대만 현대사나 대만의 깊은 속사정을 알기는 어렵다. 단지 후효현 감독의 [비정성시]를 통해 대만 현대사의 비극을 잠깐 살펴볼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비정성시]는 대만 섬에 국민당이 정착하는 시기의 이야기였다. 그럼 대만 민주화 운동의 기점이자 폭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79년의 한 정치적 사건’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을 한 편 소개한다.  


[비탄의 섬](去年冬天,Heartbreak Island 1995)은 대만 서소명(徐小明,슈샤오밍) 감독의 1995년도 작품이다. 서소명 감독은 후효현, 이행, 담가명 감독 등 기라성 같은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지냈다. [비탄의 섬]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대만의 정치상황과 ‘미려도(美麗島)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장개석은 대만에 둥지를 틀자마자 절치부심 대륙수복을 꿈꾼다. 모든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고 국민당 일당독재로 철권정치를 강화해 나간다. 장개석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장경국 총통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1949년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인맥이 점차 사라지면서 2,000만 대만 민중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대만민주화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대만은 중국이 아니고, 국민당의 정책은 잘못 되었으며, 대만의 미래는 대만인에 의해 결정되어야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국민당 정부는 이들 반정부(민주화) 세력을 물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한다. 당시 국민당 정권은 계엄령, 야당금지, 언론자유불허 등으로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였다. 그런데 하필 1979년은 대만에게는 악몽 같은 해이기도 하다. 혹시나 기대했건만 미국정부가 마침내 대만과의 단교, 중국과의 수교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해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대만의 민주화 인사들은 대만 남부도시 고웅(高雄,까오슝)에서 ‘미려도 잡지’ 창간을 기념하는 의식과 함께 시위를 계획한다. ‘미려도’라는 잡지는 대만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기관지였다. 결국 이날 고웅에선 대규모 민중 시위가 발생한 것이다. 10만 명이 모인 이날 시위는 잠복해 있던 대만민중의 의식을 활화산처럼 ‘처음’ 폭발한 것이다. 물론, 미려도 사건(고웅사태)은 신속하게 진압된다. 주동자는 즉각 재판에 회부되고 무기징역 등에 처해진다. 그리곤 고달픈 민주화 역경은 계속되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고웅 출신의 서소명 감독은 ‘미려도 사건’이 개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비탄의 섬]을 통해 차가운 시선을 돌린다. 


여주인공 린랑은 10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다. 민주화 운동으로 10년을 차가운 감옥에서 자신의 청춘을 보낸 것이다. 영화는 출옥한 린랑(琳琅)의 흔들리는 현재와 10년 전의 상황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린랑은 대학 선배 왕융(王戎,왕룽)에게서 사상교육을 받는다. 정신적 스승인 셈이다. 그리곤 그 선배를 사랑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린랑은 낙태수술까지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다 주며 선배를 따라 다닌 것이 사랑 때문이었는지 조국민주화에 대한 신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해 겨울’ 고웅에선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선배가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에 린랑은 사제폭탄을 만들어 복수를 하려다가 10년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감옥에서 선배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리곤 10년 동안 감옥에서 벽을 보며 선배와의 해후를 기다리는 것이다. 린랑이 감옥에서 나왔을 땐 세상은 달라졌다. 민주화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린랑이 보게 된 세상은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혁명의식에 가득 찼던 선배는 이미 오래 전 가석방되었고, 결혼해서 작은 커피샵을 운영하는 ‘보수적인 중산층’으로 자족하며 살고 있다. 린랑은 세상은 아직도 혁명이 필요하다며 다시 시작하자고 하지만 선배가 보기엔 린랑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혈파 과격혁명분자로 보일 뿐이다. 절망에 빠진 아링은 결국 대담한 선택을 한다. 선배의 갓난아기를 유괴하며 혁명에의 동참을 요구한다. 



[비정성시] 등 대만역사의 비애를 꾸준히 다루는 후효현 감독과는 달리 서소명 감독의 영화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소실해가는 개인의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폭탄 투척자의 심태가 민주화였는지 사랑에의 절망이었는지는 역사 속에서 독자(관객)의 해석일 뿐이다. 


‘미려도 사건’ 그리고 대만 민주화 운동의 성과물은 화려했다. 당시 이 운동에 관여했던 민주화 인사들은 이후 천지개벽된 대만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은 야당으로 원내에 진출하게 되고, 여당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 그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난 8년간 대만은 한국만큼이나 복잡한 과거사 캐기의 진통과 경제악화, 정치적 혼란을 겪었으며 중국과의 통일이냐 대만으로의 독립이냐는 문제로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경제문제와 함께 외교적 고립 등이 뒤엉키며 대만의 정세는 그야말로 ‘심란’하다. 어쨌든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비탄의 섬]은 오래 전 EBS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 대만 원제는 '去年冬天' (지난해 겨울)이다. ⓒ박재환


이전 20화 [플라스틱 차이나] 언더 더 카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