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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16. 2020

[로스트 인 베이징|사과] 베이징 발마사지 아가씨

중국 발마사지 아가씨 이야기

蘋果/ 迷失北京  (이옥 감독 2007)


원제가 '사과'인 '로스트 인 베이징'은 중국 이옥(李玉,리위)이라는 여성 감독의 2007년도 작품이다. 극 중 여자 주인공 이름이 ‘사과’(苹果,핑궈)이다. 이 영화는 최근 만들어진 중국영화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도시 발마사지 아가씨 이야기


   시골 출신의 핑궈(범빙빙)와 안곤(동대위)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 커플이다. 핑궈는 발마사지 업소에서 열심히 다른 남자의 발을 마사지하며, 안곤은 고층건물에서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유리창을 닦으며 돈을 모은다. 이들은 아마도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 ‘베이징’에서 가장 허름한 집에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핑궈는 업소 라오빤(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원치 않은 임신까지 하게 되면서 이들 커플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선택의 연속이 시작된다.


  이옥 감독은 재능이 넘치는 여성 감독이다. 놀랍게도 16살에 지방(산동성) TV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북경으로 올라왔고 이런저런 다큐멘터리를 찍어 상도 받았다. 그리고는 더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의 극영화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터치 영화 [올해 여름](今年夏天)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고, 두 번째 작품 [홍안](红颜)도 베니스에 초청받았다. 그리고 그의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이 [사과]이다.


   이 영화는 줄곧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옥 감독의 작품이며, 당대의 톱스타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비극적 상황에 빠진 젊은 커플에는 중국의 스타 범빙빙과 동대위가 출연하고 이들과 함께 홍콩의 베테랑 연기파 배우 양가휘와 대만의 중견배우 금연영(金燕玲)이 출연한다. 수많은 홍콩 누아르에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 양가휘의 ‘라오빤’ 연기도 멋지지만 이쁘기만 한 것 같았던 범빙빙의 연기도 감탄할 정도이다.


  이옥 감독은 이 영화를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하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의 영화법에는 특이한 규정이 있다. 영화 제작 전에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하고, 극장 개봉을 위해서는 반드시 ‘상영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완성본 필름을 검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중국 6세대 영화감독들이 중국의 우울한 현실을 정면에서 조망한 이른바 ‘지하전영’을 마구 해외 영화제에 출품시켜 중국의 이미지를 다운시켰다는 당국의 판단 때문에 생긴 규정이다.


   이옥 감독과 제작자 방려(方励)는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중국 영화 당국(전영 전시 총국)과 지루한 협상 아닌 협상을 해야 했다. 무려 5차례나 편집-재편집이라는 수정 작업을 거쳐 가까스로 베를린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옥 감독이 정작 베를린에서 상영한 영화는 ‘무삭제’ 감독판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영화 당국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은 불문가지. 곧바로 징벌이 내려진다. <사과>의 국내 상영이 계속 미뤄지더니 결국 상영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올해 초 전영 총국은 ‘영화 [사과]의 법규위반에 대한 통보’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전영 총국은 영화 <사과>가 규정을 어기고 해외 영화제에서 무단 상영되었기에 제작자는 향후 2년간 영화제작을 할 수 없으며 이 영화에 대한 상영허가증과 불허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디오 출시나 인터넷 전송 등도 불허된다고 덧붙였다.


  영화당국의 조치는 주로 제작자에게 집중되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 방려는 로예 감독의 <여름궁전>(이화원)의 제작자이기도 하니 당국입장에선 ‘요주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감독과 배우는 ‘자아비판’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과연 <사과>는 무슨 문제가 있는 영화일까.


   영화의 내용만 보자면 ‘군자然’하는 중국 영화당국 입장에서 보자면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단적 폐륜이나 변태적 성행위를 다룬 것은 아니다. 어렵게 살지만 희망을 가진 젊은 커플이 예기치 않은 사태에 일이 꼬이기만 하는 블랙코미디가 이 영화의 본질이다.


  이 영화는 실제 중국에서 잠깐 개봉되었다. 베를린 상영작이나 홍콩에서 상영된 판본이 112분이었지만 중국에서는 다 잘린 채 ‘92분짜리’로 개봉되었고 곧바로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자기 영화가 이런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제작자와 감독은 분통 터질 일일 것이다. 중국 많은 영화사이트에서는 <사과>에 대한 정보가 열심히 지워지거나 차단되었다. 제작자나 감독도 할 말은 많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신세인 모양이다. 전장장(티엔쭈앙쭈앙)도 그러했고 로우예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강문도 그러했다! 이옥 감독은 처음 자신의 영화에 대한 수정 요구가 있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는 당분간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라고 하니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중국의 현재적 모습을 잘 그려낸다. 그동안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대책 없는 민공(民工)들의 절망적 모습을 익히 보아왔다. 그들은 주로 중국의 미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사회적 범죄의 희생자가 되어 퇴출당하는 우울한 결말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 비록 ‘강간’과 본의 아닌 ‘대리모’라는 어두운 면이 그려졌지만 캐릭터들은 그렇게 극단을 치닫는 악인은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돈 몇 푼에 팔아버릴 것 같았던 남자도 마지막엔 ‘피붙이’를 선택하게 되고, 업소 라오빤은 ‘자신의 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인간적 희열을 느낀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인간 세상만사가 아름답거나 희망적이진 않다. 같은 마사지 아가씨로 북경에 올라왔던 핑궈의 동향 여동생은 결국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니 말이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 중국의 우울한 모습을 그리려 한 것이 감독의 애당초 의도였는지 모른다. 영화는 분명 몰카로 찍은 게 분명한 천안문 광장 모습과 북경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은 넓은 베이징의 수많은 사연 중의 하나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핑궈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챙겨 주섬주섬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나선다는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직업을 택하거나, 혹은 그런 부끄러운 직업을 택하더라도 결코 자신의 인간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쩜 슬프지만 그녀는 몸 파는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미실북경](迷失北京)이다. '북경'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 때문에 이 제목의 사용이 금지되었다고도 한다. 영화에서 핑궈의 직업은 ‘마사지 걸’이다. 중국에서는 발 마사지를 ‘세각(洗脚:셰짜오)라고 하고 이런 일에 종사하는 여성을 세각매(洗脚妹,셰짜오메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한 시골여자들이 뾰족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세각매‘ 생활에 뛰어든다. 이 영화에서도 약간 언급되지만 그러다가 매춘이나 각종 범죄에 연루되는 것도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서 ‘세각매’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실력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많은 직업훈련학교에서 발마사지를 가르치고 도시로 배출하고 있다. 인터넷 사진을 보면 이 세각매의 고달픈 삶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과]는 중국의 현실과 중국 영화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잘 만든 의미 있는 영화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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