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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28. 2020

[황비홍] 옛날 옛적 중국에서는

[황비홍] Once Upon A Time In China (서극 감독 黃飛鴻)


 홍콩영화가 아시아, 적어도 한국에서 맹위를 떨칠 때 극장가를 주름잡았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황비홍>이다. 어찌보면 ‘황비홍’은 '홍콩의 몰락'과 동시에 '중국의 힘'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비홍은 실존인물이다. 황비홍은 1847년 중국 광동성 광저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광동십호’의 한 사람인 황기영(黃麒英)이다. 그가 무술인으로 위명을 떨치던 때는 이홍장과 손문 사이의 어느 때이다. 중국이 한창 외침을 당할 때, 무력한 淸 정부는 끝없이 중국의 땅과 문물을 외세 침입자들에 내주지 않을 수 없다. 


노신과 손문은 모두 일본이나 미국(하와이)으로 건너가서 선진 문물을 일찍 접했다. 둘 다 처음엔 의술을 배웠다. 노신이 의학 공부를 그만 둔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우들과 함께 본 기록필름 하나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학생들 틈 속에서 노신이 보게 된 필름은 중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군이 빨갱이의 부역자 등으로 지목된 몇몇 중국인들의 목을 베는 장면이다. 노신은 그 구경꾼-중국인의 허리멍텅한 눈빛에서 중국인의 서글픈 현실을 본 것이다. 무표정. 분노나 치욕조차 표하지 않는 그러한 무지몽매한 중국인이 있는 이상, 언제까지나 중국은 외세에 짓밟히고 강탈당하는 약소국가의 벌레만도 못한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노신은 단 한사람의 신체만을 고치는 의술을 배우기를 포기하고, 중국인의 정신을 고칠 수 있는 혁명가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홍비홍도 그 시절, 그런 몽매한 중국 인민을 각성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황비홍은 무성영화시절부터 100번은 넘게 영화화된 인물이다. 그만큼 중국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협객이다. 1991년 홍콩인이 선택한 슈퍼스타는 바로 제국주의를 무찌르는 황비홍이다. 그렇다고 배타주의 국수주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황비홍이 말하듯이 중국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장기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 정신세계의 고결함은 언제까지나 지켜 나가고 말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황비홍 전편을 관통하는 무거운 의미이다. 이른바 ‘東道西器, 中體西用’ 같은 용어로 중국철학사에서 많이 논의되는 것이다. 


황비홍은 광동 불산(佛山)에 무술관을 열고 인근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스승으로 모셔지는 사람이다. 그는 해박한 의학적 지식에, 관대한 인품, 잘생긴 외모, 끝내주는 무술솜씨 등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험난하기만 하다. 


미국과 영국의 제국주의 세력은 날로 중국의 모든 것을 강탈해 가고 있으며, 청 정부의 무력함과 부패함은 모든 인민의 고혈을 빨고만 있는 것이다. 이때 미국에서 날아온 그의 이모-먼 친척뻘 되는 관지림. 관지림이 황비홍에게 서양 문물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하고, 황비홍은 그러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황비홍에 대한 관지림의 애틋한 사랑이나 원표의 등장이 이야기 줄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서극의 작품답게 뛰어난 무술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손꼽히는 것은 마지막 무술 대결장면. 복잡하고 잘 짜인 세트에서 펼치는 사다리와 장대의 현란한 무술은 이연걸을 한층 빛나게 만든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주제의식, 뛰어난 무술장면, 아기자기한 화면구성에 덧붙여 가장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이다. 이 영화는 주제가 있고, 힘이 있다. 특히 관지림이 갇히고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해졌을 때의 카메라 워크나 박진감 있는 편집은 최상급이다. 당황하는 원표, 절망하는 관지림, 그리고 초조한 이연걸. 이런 모습이 완벽하게 뭉쳐져서 영화의 극적 흥분을 더한다. 게다가 원표의 쓸데없는 첫 등장 씬과는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극적요소로 똘똘 뭉친 그의 역할이 돋보인다. 


황비홍이란 영화가 볼수록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그러한 영화외적인 요소와 영화내적인 힘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게 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속편, 속편, 또 속편...


1990년대 서극이 문을 연 <황비홍>은 끝없이 속편이 만들어졌다. 2편에서는 백련교도의 난을 다룬다. 서극 감독은 백련교도들의 반달리즘에 촛점을 맞춘다. 그들은 사이비 교주에 의해 도취되어 있다. 그들은 교주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며 외세의 총알도 막아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황비홍은 백련교도와 청의 졸개들 사이에서 중국의 암울한 현실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역사적인 인물과 조우하게 된다. 바로 손문(손중산). 손문은 신문물을 배운 후 중국의 암울한 미래를 벗어나기 위해 정치일선에 뛰어들었다. 신을 믿으면 총알도 막아설 수 있다고 총알에 가슴을 내미는 어리석은 민중을 보며 손중산을 이런다. "의술은 한 사람을 고칠 수 있지만 중국 민중 전체를 구할 수는 없다."고. 손중산의 혁명론에 황비홍은 감동 받는다. 


여기에 견자단이 등장한다. 견자단은 청 정부의 '대인'으로 백련교도의 난을 진압해야하고, 손중산같은 혁명세력을 발본색원하는 임무를 띈다. 여기에서 이연걸의 공화주의적 영웅과 견자단의 국가주의적 영웅이 충돌한다. 둘다 어쩌면 지독한 중국 민족주의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황비홍' 이연걸과 견자단은 그렇게 도도히 흐르는 중국사의 각자의 영웅인 것이다. 


이연걸의 ‘황비홍’을 만나기 훨씬 성룡의 황비홍이 있었다. <취권>속 주인공이 바로 황비홍이었다. 실제 활동기간과 사제관계의 명확성을 엄밀히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육아채, 황기영, 양곤, 임희관, 홍희관 등이 세대를 이어가며 외세에 맞서 중국인의 정체성을 지킨 셈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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