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보자. 알아보자. 상어와 고양이의 공통점은?
63빌딩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제가 상어를 처음 본 곳도 그곳이었어요.
어릴 때, 영화 '죠스'를 너무 좋아해서, '죠스바'라는 막대 아이스크림 껍데기에 그려진 상어 그림을 따라 그리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상어를 실물로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던지. 대구 촌놈이었던 저는 역시 서울은 서울이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상어를 왜 좋아했을까?
상어가 다 똑같아 보여도, 종류가 꽤 많거든요?
우리가 익히 아는, 미끈하게 잘 빠진 유선형의 상어도 있고, 얼굴이 희한하게 망치처럼 생긴 '귀상어'라는 애도 있고, 상어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날렵한 콧잔등이 아니라 머리가 뭉툭하고 덩치도 여느 상어보다 더 크고 피부엔 밝은 색의 점들이 박혀있어서 마치 고래처럼 보이는 상어도 있어요. 아닌게 아니라, 그래서 그 애 이름은 '고래상어'라고 부르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어한테 고래라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어떡합니까?
아무튼...
예전엔 비디오테이프라는 것이 있었죠.
거기에 좋아하는 TV프로그램도 녹화해서 다시보기도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보기도 하고.
집에 다들 하나씩 있었죠? 나만 그랬어? 저도 조상님들께 들은 얘기라 치고 넘어갑시다.
아무튼, 우리 집에 처음 비디오 플레이어라는 신문물이 도착했을 때, 같이 온 것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테이프 두 개 였어요. 그땐, 비디오 플레이어를 새로 사면 비디오 테잎을 몇 개 껴줬거든요.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지닌 공고한 취향이라는 것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시작이 굉장히 우연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어쩌면, 취향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도 어불성설일지 몰라요.
어쨌든, 저희 집에 도착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아마 피라미드의 비밀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고, 나머지 하나가 상어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리고, 저는 피라미드와 상어 중에 상어에 꽂혔습니다.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는 우선 너무 더워보였고, 훗날 대프리카라 불리게 될 도시에 살던 저는, 땀이 많아 여름이 싫었습니다.
게다가, 상어는, 아무리 봐도 동물 중에 젤 잘 생긴 것 같았어요. 그런데 웃기죠? 여름이 싫은 것 만큼이나 저는 물을 엄청나게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어두운 심해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상어를 보고 완전 넋이 나간 거에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공포와 매혹은 한끗 차이다.' 행여나 상상으로라도 물에 빠지는 걸 떠올리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섭고, 그러다 망망대해에서 상어 지느러미라도 보게 된다면, 아님 꼬르르 물에 빠져들고 있는데 거기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상어 얼굴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그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이미지 중의 하나일텐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물과 비슷하게, 제가 지닌 공포증 중의 하나가 새공포증인데, 새를 쳐다보고 있으면 상어를 떠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면서 소름이 돋는데, 그래서 새는 일부러라도 머릿속에 잘 떠올리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상어의 이미지는 자꾸 떠올리게 되더군요. 새가 무서운 것과는 달랐어요. 확실히, 전 상어의 생김새에 푹 빠졌습니다. '아, 너무 멋있게 생긴 생명체다.' 그게 제 결론이었어요. 무서운데 멋있다.
상어를 자꾸 그리면서 마음 속 두려움을 조금은 없애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고.
심지어, 어릴 때 미술대회를 나가잖아요? 거기서도 상어를 그렸어요. 거기 나가서 상어와 싸우는 잠수부를 그린 적이 있는데, 잠수부가 던진 작살이 몸에 꽂혀 피를 흘리면서 턱을 벌린 상어가 묘사된 그 고어한 그림으로 입상을 한 것은 아직도 의문입니다.
상을 받긴 했는데, 그때 상패와 함께 그림을 펼쳐들고 웃고 있는 저와, 저를 인솔했던 담임선생님의 애매한 표정이 아직 기억납니다.
그런데, 상어를 계속 그리다보니 몇가지 특징을 알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어가 그렇게 포악하게 생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상어의 이빨이 엄청 날카롭고 무섭게 생기긴 했는데, 그 녀석의 치아상태에 관한 지식을 알게 되면 좀 짠해질지도 모릅니다. 상어는 이빨이 생각보다 약해요. 모서리가 날카로운 톱니처럼 생겨서 자르는 건 잘하지만, 내구성이 의외로 약해서, 상어는 거의 매일 이빨이 빠지고 새로운 이빨이 난대요.
그리고, 상어가 먹이감을 사냥할 때 거의 턱이 빠질듯 입을 크게 벌려서 공격을 하는데요, 사냥감이 몸부림치거나 자신에게 반격을 하게 되면, 혹시 자신의 눈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눈을 감아요.
입을 잔뜩 벌리고 이빨을 드러낸,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그 상어가, 정작 그때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걸 상상해보세요. 재밌지 않나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눈이 닫히게 하려고, 눈꺼풀이 아래서 위로 닫힌다고 해요.
그런데 그 눈 말입니다. 이게 하이라이트인데요, 상어의 눈동자는 정말 그야말로 완전히 동그랗다는 사실.
그래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굉장히 언밸런스한데, 그렇다고 상어를 그리면서 우리의 선입견처럼, 상어의 눈매를 날카롭게 찢어진 것처럼 그려보면 얼마나 이상한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63빌딩 수족관에 상어가 있다는 얘길 듣고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거기에 데려다달라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서, 다른 건 다 뒷전, 전 오로지 상어를 보고 싶었습니다. 63빌딩 전망대가 어쩌고, 남산타워가 어쩌고, 심지어 롯데월드에 가자는 말에도 시큰둥했더랍니다.
그리고, 드디어 수족관에 가서 상어를 직접 봤습니다. 저희 막내 이모부가, 저와 제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함께 수족관에 갔었는데, 저는 수족관 문 닫을 때까지 땅바닥에 앉아서 상어를 보고 또 보면서 계속 있겠다고 했답니다.
아무튼, 상어는 매력있는 넘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상어를 좋아하느냐,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물으면, 이제 전 정확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상어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 완벽하게 알아냈거든요.
상어의 디자인 말이예요. 그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동물들이 진화와 멸종을 거듭하며 지내 온 그 세월 내내 말이예요. 한 몇 만년은 되었겠죠?
생존에 더 적합하게 모습을 조금씩 바꾸고, 혹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종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도 한 그 시간 동안, 고대의 상어는 지금의 상어와 비교해보면 그 크기만 조금 작아졌을 뿐, 걍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니까, 말하자면, 얘는 처음 런칭했을 때의 프로토타입 때부터 지금 출시되는 최신버젼에 이르기까지, 업데이트가 필요없는 최신 디자인이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걸 알고 다시 보면, 상어가 정말 되게 심플하게 생겼거든요. 물론 생선들 생김새야 다 비슷하지요. 하지만, 다른 생선들을 정면으로 놓고 보면 몸이 납작하지 않습니까? 볼륨감이라는 게 차이가 납니다.
상어는 정면샷, 측면샷, 후면샷 모두 기가 막힌 실루엣과 볼륨감과 균형감을 유지합니다. 날렵하면서도 묵직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습니다. 지느러미도 마치 날개처럼 뻗어있는 것이, 아주 그냥 기가 막힙니다. 누가 얘를 가지고 디자인을 수정한다면, 누가 더 멋있게 만들 수 있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몇 만년 전에 완성된 디자인으로 아직도 출시되고 있는 이 고성능 생선의 자태를 보고 있자면, 좀 오버해서 말해보면, 뭔가 그... 지구의 세월이 느껴지고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게 됨과 동시에...
뭔 개소리야.
암튼, 상어를 보면 초딩 때 추억이 떠오른다..정도로 정리합시다.
순수하게, 정확한 동그라미 모양을 한 상어의 눈알에 감탄하며 놀라 자빠지던, 그리고 무서우면서도 매혹적인 무언가에 몰두하던, 저의 어린시절이 소환되서 멜랑꼴리해진다..뭐 그런 겁니다.
디자인이 훌륭해서 좋아하는 동물이 또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고양이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를 알고 지낸 지인들은, 지금 저 말을 듣고 구라치지 말라고 하겠죠.
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한 건 아닙니다. 심지어 싫어했다에 가까웠어요.
예전에, 제가 한창 열정 넘치던 씨네마 나부랭이였던 시절의 일입니다.
제 친구가 그 옛날 전쟁 때도 사용했다는 16mm 필름카메라를 어디서 구해왔습니다. 정말 옛날 카메라였어요. 그 카메라로, 흑백필름을 써서 단편영화를 하나 찍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친구가 쓴 시나리오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눈처럼 새하얀 털에, 눈은 오드아이인 고양이 한마리를 데려왔습니다. 그 이름도 상큼한 '체리.'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하 로케이션이 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먹고자며 '체리'의 수발을 들게 되었습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체리'는 영화 촬영 내내 우리를 엄청나게 고생시켰습니다. 아무리 문단속을 잘 해도, 조금의 틈만 있으면 경이로운 유연성을 발휘해서 집 밖으로 쏙쏙 빠져나갔고, 크래미와 맛살로 아무리 유혹해도, 자기 맘이 내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연기력은 어땠을까요? 원하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던 '체리'는,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면 화면 밖으로 우아하게 싸돌아다녔습니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밤새 울고, 사포 같은 혀로 제 얼굴을 핥고... 아.. 쓰다보니 다시 스트레스가...
암튼 그 기억 때문에 전 고양이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고양이는 정을 줘봤자, 티도 안나지 않습니까? 지 필요할 때나 슬그머니 와서 심부름이나 시키지요. 아, 근데 또, 계속 보고 있으면 귀엽고 이쁜 건 틀림없어요. 그때 제가 그 녀석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몰라요. 암튼 근데 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뻐서 사진을 좀 찍었던 것 뿐이에요...쳇.
근데, 언제부턴가 걍 대놓고 고양이가 좋더라구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은(경기도 '고양'시), 도시의 이름처럼, 마스코트도 고양이고, 길냥이도 매우 많고, 사람들도 길고양이들을 매우 이뻐하고 좋아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곳인데요, 저도 덩달아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러다가 제가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고양이란 생명체는... 잘 생겼어...
그리고 이 고양이과 동물들 말예요. 고양이, 표범, 재규어, 호랑이, 보브캣, 퓨마... 얘네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솔직히. 길쭉하게 늘여놓거나 좀 찌그려뜨려놓거나, 색칠을 달리하거나, 무늬를 좀 넣거나 뭐 그 차이지, 사실은 같은 디자인인 거예요.
동네에서 호강하는 길냥이들을 보면, 가끔 뒤룩뒤룩 살이 찐 녀석들도 눈에 보입니다만, 걔네들도, 저랑 한번씩 눈싸움을 하다가 재빠르게 움직일 때 보면, 정말이지 게을러 터져서 하루 종일 졸면서 식빵이나 굽던 넘들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야생의 스웨그를 뽐내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갑자기, 볕 드는 골목에 던져져 있던 식빵이, 퓨마로 변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말하자면, 뭔가 원형적인 디자인에, 아직도 남아있는 원색적인 야생의 면모 한 스푼.
그래서, 걍 고양이를 좋아하려구요.
물론 상어가 더 잘 생겼...
위의 그림 속 고양이는, 귀가 한 쪽이 살짝 잘려나가 있어요.
우리 동네 길냥이인데요, 제가 '짝귀'라고 이름 붙여줬습니다.
저희 동네는 지하철 종점 근처인데요, 언젠가, 지하철 종점에 누군가를 마중나갔다가,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 서 있는 이 녀석을 처음 봤습니다. 그 땐 완전 애기였는데요, 신기하고 귀여워서 사진을 막 찍었어요. 얼마 전에, 그때가 생각나서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보니, 이 녀석을 처음 본 그 날이 벌써 3년 전이더군요. 암튼 첫 만남 때부터 은근 관종이었어요. 사진 찍히는 걸 즐기더군요.
그 당시에도, 귀 한 쪽이 잘려나간 걸 보고, 다시 만나면 알아보겠구나 싶었는데, 그 뒤로 지하철 역에서 저희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작은 공원에 자리를 잡았더군요. 그 뒤로 '짝귀'라고 제 멋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나다니는 동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쓰다듬기 좋을만한 곳에 느긋하게 누워 조는 것이 하루의 일과인 녀석입니다. 요즘은 점점 뚱뚱해지고 있어요.
그 녀석과 매일 마주치는 그 공원에는 모래가 깔린 오래된 놀이터가 있어요. 언젠가, 멀쩡한 놀이터 모래사장을 갈아엎고 우레탄 바닥을 깔고, 공원 보도블럭을 죄다 다시 깐다고 몇 주간 공사가 이어졌어요. 그 동안, '짝귀'를 위시한, 공원 터줏대감 길냥이들이 자취를 완전히 감췄어요. 공사가 다 끝나고도, 한 2주간 '짝귀'를 보지 못했어요. 그때까진 몰랐는데, 제가 그 길을 오갈 때마다 기분이 너무 가라앉더라구요.
다행히, 그 뒤로 몇 주 지나니, 새로운 보도블럭과 놀이터 바닥에 적응을 했는지, 길냥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짝귀'도 새로 깔린 보도블럭이지만 위치는 여전히 그대로인 자신의 지정석에 다시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굽기 시작했구요. 제가 걔를 보고 청승맞게 혼자 울컥해서 인스타에 갬성 똥글도 올렸더랍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오며가며 지나치던 저 고양이가 오늘도 저 자리에 있다는 게, 은연 중에 나에게 되게 큰 위안이 되었구나...라는 거예요. 좀 억지스럽지만, 끼워맞춰보자면, 이건 마치, 상어의 생긴 꼴이 몇 만년 째 그대로라는 사실에서 오는 위안과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아, 얘는 안 변하는구나.'
'아, 얘는 똑같구나.'
'점점 뚱뚱해지고 있는 우리 동네 짝귀가, 오늘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낮잠을 자는구나.'
그런 한결같음을 보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가라앉았다가 붕 뜨곤 하던 내가, 다시금 차분하게 안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때에 따라 변하고, 바뀌고, 유한하고, 한계가 명확한 나라서, 그런 데서 위안을 얻는 거 아닐까요? 영원불멸할 것만 같고, 계속 변치 않고 익숙하게 유지될 것만 같은 것에... 말이예요.
나는,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바뀌는데, 그럼에도 얘는 그대로니까요.
그러니까, 걍 원래 상어를 좋아했고, 요샌 고양이도 좀 좋단 말을 이리 길게 하네요.
암튼,
굿나잇 & 굿럭.
위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vbFmA9Fws&t=60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