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작가가 털린 멘탈 수습하는 주문
궁금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한답니다.
말하자면, 무명의 프리랜서 나부랭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주변의 지인들 중에는 콘텐츠 업계에서 꽤나 유명하거나, 재능을 한껏 발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엔, 작가들도 몇 있는데요, 그 중 한 명은 불과 얼마전에, 명망있는 시상식에서 상도 받았답니다. TV에서 수상소감을 찾아볼 수 있지요. 또 다른 한 명의 작가의 작품은 얼마 전 방영을 했는데, 그 작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성 있다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지요.
뭐, 제 자랑은 아닙니다. 제가 방금 말한 그런 작가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뭐 저 둘과 친분이 좀 있기에, 그들이 힘들어 하던 시기에 관해서는 조금 아는 바가 있기도 합니다.
그들도 당연히 커리어가 좀처럼 잘 풀리지 않거나, 쓰던 글이 벽에 부딪힌 때가 있었을테죠. 글을 쓰면서, 이게 맞는지, 막힌 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방향을 잘 잡은 것인지,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지 등등,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 어떨 땐, 본인이 애초 발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면서, 자신은 내놓기 부끄럽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왜 대중들의 반응이 제일 좋은지 당황스러워하는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제가 뭐 그렇다고, 지금 이 글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따위의 장광설을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도 하구요. 전 그저 제가 아는 수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혼자 작업실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어?'
그 질문에, 별 생각없이 곧장 생각나는대로 툭 대답을 던졌습니다.
'매일 눈을 떠서 거울을 보며, 거울에 비친 저 몰골이 과연 세상에 필요한지, 저 몰골이 되기까지 식음을 전폐하며 온갖 꼴깝을 떨며 쓰고 앉아 있는 그 이야기가, 과연 티끌만큼이라도 세상에 쓸모가 있을지, 매일 의심한다.'
라고 말이죠.
'가끔은 내가 바퀴벌레보다 나은 구석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모니터창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보면 배가 고파지는데, 그럴 때 뭘 먹을지 생각하는 내가 이유없이 우스울 때도 있어.'
이렇게 웃으면서 답했는데, 웃으며 대답한 게 더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대박을 치는 킬러콘텐츠를 쓰고 싶든, 노벨상이나 맨부커상을 받고 싶든, '그러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라는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쓰는 것이지요. 원작이 있는 시나리오를 각색한다거나, 장르도 예산도 주연배우도 정해져 있는 기획영화의 시놉시스를 쓰는 것이라면 사정이 좀 달라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말이죠.
그러니, 핵심은 이런 겁니다. 골방에 혼자 앉아 아직 아무도 원하지도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한글 새문서 파일을 열어 쓰기 시작할 때, 작가는 무엇에 기대어 계속 써야 하는가?
제가 아는 한, 제가 겪은 여러 문제 중, 아마도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될까요? 걍 노답인 걸까요? 자기를 괴롭히면 어쩌저찌 글자가 절로 써질까요?
제가 겪은 사소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그 경험에서 얻은 힌트가 제게는 여전히 유효한 걸 보면, 그것이 단 하나의 정답은 아니더라도 썩 괜찮은 답안이 되어주는 듯 해요.
제가 늦깍이로 들어간 두 번째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십대 끝물에 입학을 한 두 번째 대학교에서,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저의 막연한 기대가 점점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변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한다며 시작했던, 영상을 만드는 프리랜서 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요. 아무튼, 졸업을 앞두고 휴학을 하고 여기저기서 빚도 지고 졸업 시나리오, 졸업 단편영화 등을 준비하면서, 알바를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촬영장비를 이고 지고, 가서 촬영하고, 돌아와서 편집하고, 현장 진행, 섭외, 동시에 다른 기획, 그러다 남는 시간엔 내 걸 써야하니 24시간 까페에서 밤을 새고, 그러다보니 레드불과 핫식스와 말보로 레드가 혈관을 타고 흐르던 시기였습니다.
뭐 그러다, 몸이 축났습니다. 몸이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니 대충 스킵하구요, 아무튼 몸이 완전히 작살이 나기 전, 평일 오후 였습니다. 저는 느지막히 일어나 약국에 들렀습니다. 화창한 늦봄, 머리는 떡지고 슬리퍼는 질질 끌고, 위궤양과 역류성 식도염과 십이지장 궤양을 달고, 충혈된 눈으로 쓰리고 뒤집히는 속을 손으로 문질러 달래면서, 약국에 도착했습니다.
약국이 동네 시장의 초입에 있어서, 골목이 엄청나게 붐볐어요. 마침 중학교 하교시간인지 학생들도 바글바글, 퀵 배달 아저씨, 장 보는 할머니, 집에 가는 애들, 약국 안에도 아저씨, 아주머니, 학생들로 꽉 들어 차 있었습니다. 퀵 아저씨는 속이 안 좋은지 빨리 소화제를 달라고 성화, 손자랑 같이 온 할머니는 자기가 먼저 왔으니 기다리라고 뭐라 하고, 약사 두 분이 정신없이 손님들을 상대하며 이리 오라, 저리 가라, 그러다 손님들끼리 실랑이도 벌어지고, 그 와중에 누구는 누구에게 앉으라고 벤치 자리를 내주고, 또 팔에 반깁스를 한 중학생 한 명은 밥 먹고 먹으라고 약사가 건넨 약을 들고, 자긴 방금 밥을 먹었으니 지금 먹어도 되냐고 정수기로 향하고, 정수기 앞에서 손으로 펼쳐야 하는 종이컵을 못 열고 끙끙대자, 그 중학생을 따라온 친구가 대신 물을 받아주고....아무튼 난리였어요.
저는 약을 받으러 와 놓고, 약국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한 30-40분은 그랬던 거 같아요. 약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다가, 사람이 좀 빠지면 다시 들어오자 싶어 약국 밖으로 나와 시장 구경도 했다가, 그러면서 그냥 사람들 대화도 엿듣고, 오가는 사람들 동선을 눈으로 쫓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목이 메면서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좀 뜬금없는 생각과 거북한 기분이었는데, 그게 뭐였냐면, '내가 저 사람들 속에 끼어들어서 약을 받아갈 자격이 있나?' 이런 이상한 생각과 슬픈 감정이었어요.
저들은 모두들, 바쁘게, 분주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저는 그들과는 다르게 그들과 툭 떨어져서, '뭔가 실재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는' 사람 같은 거예요. 이게 무슨 기분인지 이해하실지는 모르겠는데...암튼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여태 살면서 가장 큰 소외감과 좌절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하는 일은, 결코 한가하거나 하찮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바쁘게 분주하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물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때 하는 일, 사는 삶은, 세트장에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에 카메라를 놓고, 그 앞에 임시로 놓여진 물건들을 비추고, 정해진 말을 하는 인물을 찍고, 그걸 이리저리 기워서 편집해서,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기 좋게 잘 만들어서, '이게 사람들에게 더 어필하려면 이래야 돼.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바꿔보자.' 고군분투하는 일의 반복이었는데, 그 일이 재밌거나 하고 싶은 일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그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쪼개서 겨우겨우 끄적이고 있는 나의 글이란 것이 과연 현실적인 이야기인가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가 궁금해하거나 기다리고 있냐면 그것도 아니고...
난 아파서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놓고 집에서 며칠을 그저 누워있다가 겨우겨우 일어나 약국에 왔지만, 한 발 떨어져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누군가에겐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소한 일 중에 하나인, 이 '약국에 들르는 하루 중의 일과' 라는 것이 저에겐 갑자기 엄청 어색해졌습니다. 이런 맘도 들었던 거 같아요. '니가 뭘 했다고 아파?' '남들 눈엔 지금 내가 뭐하는 인간으로 보일까?'
저 사람은 우편배달부, 저 사람은 장 보다 들른 아주머니, 저기 담배 피는 아저씨는 책방 사장, 중학생, 약사, 요리사, 알바생... 등등 모두 다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겠는데, 지금 그래서 어떤 이유로 무얼 하는지 보이는데, 난? 나는 뭐지? 남이 보기에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지금 난 어디서 뭘하는걸까?' 싶더라구요. 그 생각에 빠져 시간이 계속 갔습니다. 울적하고 가라앉는 기분이 스멀스멀 더 커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계속 보다보니 뭔가 보이는 게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 그걸 발견해낸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 지금도, 그때 그런 생각과 관점이 그 순간 생겨난 것이 저에겐 정말 너무 큰 행운이자 복이라 생각합니다.
소화제를 달라던 퀵 아저씨는, 헤드셋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계속 통화 중이었는데, 듣다보니 '저 아저씨는 지금 이 일을 관두고 싶은가보네...', '저 할머니는 손자랑 친해지고 싶은데 손자는 할머니가 어색하고 싫나보네?', '반깁스를 한 친구를 따라온 쟤는 저 친구를 좋아하는구나.'
울적한 기분이 조금 가시고 나니, 저는 관찰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저 둘은 어떤 관계인지, 약사가 아주머니에게 왜 저렇게 말했는지, 아줌마가 이렇게만 말했어도 저 약사는 퉁명스럽게 받아치지 않았을텐데, 누가 저 아주머니가 약국에 들어오기 전에 겪은 일을 봤다면, 아주머니가 무례한 게 아니라 지친 거란 걸 알텐데... 등등.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난 뭐하고 있는걸까?' 를 벗어나,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뭘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건,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눈 앞의 삶을,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때, 그것의 증인이 되는 것. 전 그걸 증언하려고 그걸 보고 있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순간순간을 살아내느라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 미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흘려보내는 것. 제가 하려는 건, 그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거였어요.
그들이 저보다 못나서 그걸 못하고 있는 것도, 제가 그들보다 잘나서 그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이 저들의 삶을 살면서 저들의 일을 하는 동안, 내게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러니 나는 그걸 보고 담아놓고 꿰어서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거구나.'
말하자면,
'내게는 사람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 이야기할 시간이 위임되었다. 그러니, 내가 쓰는 이야기라는 것은, 사람들이 과연 궁금해할지, 재미있어 할지, 의미있다 여길지, 내가 그 이야기로 성공할 수 있을지, 따위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위임받은 바를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이건 내가 위임받은 일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가 현실에서 한 발 붕 떠서, 도무지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가, 갑자기 모든 게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데, 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여야 하냐면, 어떤 의미가 있다거나 나는 어떤 사람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야기하지 않고 그 시간에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내게 위임한 것들을 말하는 이야기여야 해. 그들이 내게,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내가 거기서 의미를 찾아 이야기해달라고 한 것들. 내가 그 증인이 되어야 해.'
그것이 나의 선민의식은 아닐까 다시 돌아보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제가 특출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평일 낮, 바삐 돌아가는 시장, 북적이는 약국에서 이 자리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며 저런 걸 듣고 저런 걸 보고 있을 수 있으니, 이것은 나의 일이다. 그건 어려운 일도 하찮은 일도 무거운 일도 가벼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삶과 자리처럼, 제게도 이것이 제 삶과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글이 안 풀리면, 약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 스스로 위임받은 저의 임무를 떠올립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자랑스러운 작가 친구들이 다시 또 벽에 부딪혀 힘들어한다면, 이 이야기를 해주면 되겠군요. 아마 그것도 저의 임무이려나요.
위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https://youtu.be/wvdnpEq3u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