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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Jun 24. 2022

우리가 모두 마기꾼이 되어야 하는 이유

평생 지니고 다닐 마스크의 갯수

거리두기


얼마전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지도 이제 2년이 넘었군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이제 그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종종 인간관계나 개인이 처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사용을 하곤 했었지만,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그것이 강제되는 시대를 보냈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바꿔놓았을까요? 요 몇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것들이, 이제 사라진다고 하니 어색합니다.


하지만, 그리 크게 바뀐 건 없는지도 모릅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과 홍대 주차장 거리는 금새 북적입니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도 영영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라던 우려가 있었지만, 그 역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전 이제 어느새 소위 '마스크를 쓴 거리두기의 시대' 가 익숙해져 버렸는지, 마스크를 쓰고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면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기도 합니다.


우스개소리로, 이제 회사원들은, 언젠가 사무실 내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온다면 속으로 직장 상사 욕을 하며 눈빛만 생글거리면 되던 시대가 끝이 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한동안 내려놓고 살았던 표정관리 스킬을 다시 연마해야 하는 날이 도래하는 것이 두렵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그게 우스개소리가 아닌 것이, 마스크를 쓰면 분명히 나타나는 순기능이 있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마스크를 쓰면, 왠지, '우리 모두 평등한 인간이구나...' 뭐 이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투표를 하게 되면 새삼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한 명의 인간, 그래서 우리 모두 공평하게 한 사람에 한 표 씩.' 이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랄까요?


말하자면, 이 호흡기 질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비말차단 기능이 필요하다는 사실. 서로에게 내뿜는 날숨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니 가림막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야말로 이건 어떤 가치판단이 아닌 팩트니까요. 이 상황이 우리를 좀 더 평등한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는 점에서 저는 기분이 약간 좋아지기까지 할 때도 있는데요, 말하다보니, 이 지경이 되어야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만인의 평등이라는 게 과연 좋은 건가 싶기도 하네요. 뭐, 개인적인 느낌은 아무튼 그렇단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면 너도 나도 모두 존잘로 보이지 않나요? 이것이야말로 전지구적인 혁명적 시츄에이션이라 생각합니다.



내 친구의 스쿠터의 경우


제 친구 중 한명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요, 몇 년 전부터 스쿠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스쿠터만큼 편한 이동수단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야, 나이도 있고 애도 있는 넘이 꼭 그렇게 스쿠터를 타고 다녀야겠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냐제가  친구에게 물었더니, 정작  말을 들은 당사자인  친구 ,


"글쎄,  사람들 눈에는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나 보지. 자기 눈에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


음, 글쎄요, 다 큰 애 아빠가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인가. 그건 아니더라도,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건 아닌 것인가. 뭐, 그런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뭐, 모두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지는 않으니, 보편적이진 않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만약,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고 보편적인 것이 항상 상식적인가?'  


혹은, 널리 퍼져 수용이 된, 현재의 상식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당대의 상식이 아니게 될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역사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보아왔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사실 옳고그름 따위는 없는 것이냐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딴지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테구요.


"아, 뭐, 그런 건 잘 모르겠구요, 그런데 우리가 '절대'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절대' 없는 거 아닐까요?"


이 말이 굉장히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겐 도리어 이런 태도가 더 책임감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말 그대로,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으니,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말로 들리거든요.


그래서, 지혜라는 것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는 것이라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지혜로움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어쩌면 옳고그름 중에 옳은 편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돌아보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나아가, 그렇다면 나의 틀림을 바로잡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만약에 내가 틀렸다면 변하겠다는 태도가 없이, 그냥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 '너와 나는 누구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너와 나는 그냥 다르니까 맞고 틀림을 더는 논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이건 사실, 내가 누구를 공격하지도, 누군가에게 공격 받지도 않고, 내가 나와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내 앞에 있는 나와 다른 너를 없는 셈 치겠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단 말이죠.


이건 어쩌면 '관대함'을 연기하는 가식은 아닐까요?



스쿠터 타는 내 친구의 경우


점점 더 헷갈리고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군요. 뭐, 이럴 때, 이런 곳 아니면 어디서 제가 이런 생각을 두서없이 쏟아내겠어요?


좀 더 이 이야기를 미궁으로 빠뜨려 봅시다.

 

아까 그 스쿠터 탄다는 제 친구 있잖아요? 이 친구가 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배달부로 오인받은 적이 몇 번 있대요. 누가 집 앞에 서 있다가, 자기가 지나가는데 불러서 멈춰 세우면서 '아저씨, 어디 가세요, 여기에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면서, 그때 기분이 나빴다거나 그랬다는 건 전혀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며 들려줬어요.


그리고 그 친구도 자영업자인데, 요즘 모두들 힘든 시기였잖아요? 그래서, 자기도 사정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어차피 몇 번 오해도 받은 김에, 사이드잡으로 배달 알바라도 병행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친구가 해준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혼자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를 하며 이 친구가 취한 태도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왠지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으니까, 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스쿠터를 타는 것이 대외적으로는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을테니 생각을 재고해보라는 조언이었겠거니.'


두 번째 이야기에서의 태도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까요?


'그러게, 아닌 게 아니라, 난 그냥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배달 오토바이로 쉽게 착각을 하기도 하더라구.'


저는 이 두 이야기를 연달아 혼자 곱씹어보다가, 이 친구가 이 두 이야기를 제게 하면서 그 행간에 어떤 숨은 의미를 담아두었을리는 만무하지만, 저 혼자 무언가를 포착해내고 넘겨짚어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 있더라구요.


'이 친구가 지금 내 앞에서,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오토바이 배달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방금 저 생각 또한, 저 혼자만의 넘겨짚음 이잖아요?


나의  넘겨짚음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스스로 변호하면서도, 못내 찝찝한 기분이 드는 ,  생각이 맞다면 나의 친구는  기준에서  별로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되고, 그의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단지 다름을 용인하지 못하는 내가  별로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은  혼자 속으로 이런 결론에 다다르고 있으면서  친구에게 내색도 하지 않는 내가 너무 가식적인 것은 아닐까 자문도 하게 되더라구요. 생각은  뻗어나갔어요. 우리는, 누군가가 지닌 어떤 부정적인 선입견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선입견이 생성되기까지 어떤 연유가 있는지 누군가는 물어봐주기는 할까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친구는 그냥 정말로 아무런 저의도 없이 그저 겪은 일과 하는 생각을 담백하게 말한 것이고 나야말로 어떤 선입견에 빠져 그 발언을 판단하고 있다는 게 아마 가장 사실과 가까웠을 겁니다.


물론, 생각들은 그냥  머릿속을 떠돌다 금새 사라졌습니다. 점점  앞에 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단 느낌에, 그냥 생각을 떨쳐내고 함께 저녁밥을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혼자 넘겨짚는 나의 경우


뭐, 그러니까, 그 날, 저는 저 혼자 뭔가 깨달을듯말듯 뭔가를 느꼈는데, 그걸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말로 예민하게, 사려깊게, 생각을 계속 하지 않으면, 우린 까딱 잘못하면 정말로 별로인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별로이든, 아니면 어느 순간 나를 맞닥뜨린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별로라고 넘겨짚든,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는 지혜를 운운하기 전에, 우리는 은연중에 너무나 많은 것을 서로에게 드러내는 것 같아요. 혹은 오해를 사거나, 혹은 오해라고 생각했던 우리 각자의 조금 별로인 모습을 서로가 민감하게 감지해내고 단정짓지요.  


우린 그러니까 약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다소 별로인 서로들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우린 걍 별로야. 가식 떨지 말자.' 이런 결론을 내려는 건 아니에요.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건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요식행위일 뿐이야.' 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라도, 그것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가식적이나마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진 척' 연기하는 것. 나의 진심이 어떻든, 나의 진심과 상관없이 그런 척 할 수 있는 여유를 한 번 가져보는 것. 지금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를 연기하는 것이, 상대방이 실제로 자신이 지금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할 수도 있잖아요. 그 기분은 그렇다면 거짓이 아니라 실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나의 그런 연기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가 공격받거나 오해 받을 소지가 없이 안전한 환경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물론 그러면서 스스로 가식을 떨고 있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지금 나의 겉모습과 속마음이 같지 않음에서 오는 괴리니까, 그건 나 자신이 인지하고 해결할 수도 있는 나의 문제인 것이고, 우리는 타인과 교류할 수 밖에 없음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가식이든 단지 겉모습일 뿐이든, 혹은 그 모든 것을 연기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든, '친절하게 경청하는 척' 하는 걸 연습하는 것. 겉치레라고 생각되는 걸 무시하지 않고 한 번 해보는 것. 그 자체가 사실은 중요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충분하다고 여겨질 순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왜냐면, 정말 티끌만큼의 마음도 없다면 연기조차 할 수 없을테니까요. 우선 그런 티끌만큼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운동과 요리의 경우, 아니 그뿐만 아니라


그래서 저는, 뜬금없이, 아직은 우리에게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외쳐봅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마스크의 필요를 알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네요. 아 물론, KF94 말고요...


우리에겐, 때때로 보기 좋은 '스킨'과 그걸 소화해낼 '스킬'이 여럿 필요할지 모른다. 친절을 가장하는 것도 의미 있을 때가 있다. 뭐 그런 생각입니다.


운동에서 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들 하지요. 사람들은 누군가를 놀릴 , '폼만 그럴싸하다.' 라고 하지만요. 놀라운 사실은, 정확한 폼을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폼이 정말  사람의 실력을 향상시켜줍니다. 그래서 운동에서 폼이 좋다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 같은 뜻으로 쓰여지면 안됩니다. 정말이지 폼은 중요하니까요.


우린  이렇게 쉽게 말하지요. '그릇보다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한 거야.' 그런데, '음식이 맛있으면 됐지.' 라고 하면서, 요리한 음식을 스테인레스 양푼이에  때려넣어 휘휘 저어서 그걸 먹으라고 누군가에게 건네면, '맛이 없어 보인다.'  넘어서, 정말로 맛이 없다구요. 그래서, 음식에 진지한 사람일수록 플레이팅에도 진심인 법이겠지요. 하다못해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을 먹더라도 맘에 드는 예쁜 접시에  담는 것부터가 시작인  같아요.


이런 것들이, 단지 운동이나 요리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 사이에도, 그런 드러나는 꾸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시적이나마 근사한 폼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면, 그것이 클래스가 되는 이치일까요?


.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매너' 라는 것이군요.


아, 근데 어쨌든, KF94를 벗는 날은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굿나잇 & 굿럭.




위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AkGO0ZVr35Y&t=6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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