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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Jun 26. 2022

소화가능한 유별남에 관하여

도대체 적당하고 기막힌 창의력의 레시피는 무엇?

'깐느 ' 답변


얼마전 깐느에서 박찬욱 감독님이 감독상을 받고, 송강호 배우님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소식은 다들 아실 거예요.


박찬욱 감독님의 외국기자와의 인터뷰 중 재밌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여태까지의 당신의 영화들도 놀랍지만, 이번 영화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그럼 이번 영화는 더 파격적인 베드씬이나 충격적인 장면을 기대해도 좋은 것이냐?"


농담 섞인 이 질문에 감독님도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다른 감독들에게도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제게 있어서의 새로움은 왜 더 쎈 장면이 있는지의 여부인 겁니까?"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문답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K 콘텐츠가 이처럼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한국 관객들의 기준이 매우 높아, 왠만해서는 감동을 주기 쉽지 않습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맹훈련을 받은 창작자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홍상수의 경우


깐느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한 명의 감독이 홍상수 감독님인데요,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감독님이지요. 그 분이 어디선가 했던 이야기도 기억이 납니다.


어느 화가의 무슨 그림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홍상수 감독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콕 짚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했던 것이 제게는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그 그림이 지닌 추상과 구상의 비율이, 저의 미학적인 취향에 꼭 들어맞는 느낌이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 그림은 말을 탄 기사가 용을 무찌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상상하는 것처럼 스펙타클한 장관을 묘사했다기보다는, 매우 평면적이고 색감도 화려하지 않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그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저로서는, 왠지 르네상스 이전 시대나, 아니면 그 이후라 해도 매너리즘 시대의 그림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익히 아는 원근법과 소실점이 명확한 입체적인 그림이 아니었거든요. (물론, 정확하진 않습니다. 제게 인상을 남긴 기억에 의존해보면 그렇다는 얘기.)


아무튼 이 그림이 가진 그런 특징이, 홍상수 감독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추상과 구상의 비율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한 인터뷰 내용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제가 지금도 이렇게 이야길 하고 있으니까요.


추상과 구상의 비율이라는 것을 달리 말하면, 아름다움과 추함의 비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사실과 상상의 비율, 혹은 익숙함과 파격의 비율이 될 수도 있겠지요.



PD 경우


나영석 PD가 선배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하고 재능있는 예능 피디인 그조차, 다음 프로그램을 어떤 걸로 만들어야 할지, 계속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데 그걸 피한답시고 너무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떡할지, 그런 고민을 한 시기가 있었다고 해요.


그때 선배들에게 들은 조언이, '매우 익숙한 것 80-90에, 새로운 것 10-20을 더해라.' 였다고 합니다.


뭐, 모든 분야에서 그게 통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중파 PD가 다음에 만들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무언가 새로우면서도 대중친화적인 것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한다면, 선배들이 줄 최선의 조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 균형, 혹은 비율을 맞춘다는 것이, 말이 쉽지, 무엇이 받아들여지고 무엇이 파격이라 여겨질지, 어느 정도의 파격이 수용될지 등등에 대해서 누가 단정지을 수 있겠어요? 결국은 저마다의 기준이나 노하우가 쌓여가는 거겠지요.



이명세의 경우


일례로, 이명세 감독님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전주영화제에서, '이명세 감독 전작전' 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명세 감독님의 모든 영화를 상영했었는데요, 당연히 이명세 감독님도 영화제 기간 내내 전주에 계시면서 여러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 등에 참여하셨지요.


저는 운 좋게도, 전주에서 감독님의 영화도 다 보고, 한 1박2일 정도 감독님을 따라다니며 전주에서 유명한 피순대와 모주 막걸리를 얻어먹고 시간을 같이 보냈었습니다. 그때, 소위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저와 제 친구가, 거하게 취해서 다음 영화는 도대체 왜 안 만드시냐고 징징댔던 기억이 납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저와 제 친구는, 정말로 이명세 감독님 영화의 광팬이었거든요.


감독님은 대뜸, 요즘 자신은 90년대 미국 장르영화를 다시 본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너희도 온갖 영화를 섭렵한답시고 이상한 영화들 그만 보고, 그냥 90년대 미국 장르영화를 열심히 봐.' 라고 굉장히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90년대 헐리우드 영화들의 제목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고, 해는 떴고,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는 많고, 할 얘기는 넘쳐나고,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왜 다음 영화를 안 만드시냐는 우리의 질문의 답으로 감독님이 말하신 저 조언은 이런 뜻이겠지요. 익숙하다는 것이 뻔하거나 구리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잘 만들어진 무언가를 마주하면 우린 열광하잖아요. 그런데 더 나아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매우 익숙한 웰메이드 콘텐츠인데, 그것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만들어진 적 없던 것이라면, 높은 확률로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건 억지가 아닐 거예요. 그러니, 만약 그런 장르영화의 시나리오가 완성된다면,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제작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감독님의 말은 그러니까, '난 그런 걸 쓸거야, 그러니까 너희도 그런 걸 써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야.' 였던 건 아닐까.


나영석 PD의 '익숙함 90+새로움 10' 이건, 홍상수 감독의 '추상과 구상의 비율', 박찬욱 감독의 '받아들여질만큼의 파격 한 스푼', 이명세 감독의 '익숙한 장르의 재발견'. 이런 게 다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버튼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한 명의 감독이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 글은 그가 뜬금없이 내한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 감독의 이름은 '팀 버튼'입니다. 이 양반은 10 년 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는데, 이번에 온 이유도 그때와 같습니다. '팀 버튼 특별전' 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거든요.


10년 전의 전시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그 전시를 보러 갔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팀 버튼 감독이 광장시장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먹고 있는 게 사진으로 찍혀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번에 내한해서 한 인터뷰에서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꼭 또 다시 오고 싶었고, 광장시장도 또 들르고 싶었다고 말하던데, 팀 버튼 감독과 그의 작품을 잘 아는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더 재밌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사람이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독특한 시각의 작품을 만드는 괴짜로 널리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데 그 양반이, 자신의 시그니쳐인 그 희한한 폭탄머리를 하고, 동대문 바이브를 풍기며 광장시장에 섞여들어 있던 것이 생소하면서도 재밌는 볼거리였던 거지요.


그런데, 10년 전에 제가 그 전시를 가서도 의아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팀 버튼 감독은 매우 유명한 감독이긴 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시장을 갔더니 정말로 발 디딜 틈 없이 관객들이 꽉 들어 차 있더라구요. 어깨와 어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야 전시된 작품을 눈에 겨우 담을 수 있을 정도였어요. (전시의 마지막 주말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물론 전시의 내용은 매우 재밌고 흥미로웠습니다. 굿즈들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포스터, 도록, 엽서 등등. 뭐 소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굿즈 뿐만 아니라, 전시 내용도 매우 풍성했어요. 팀 버튼에 관한 깨알같은 정보부터, 그의 작업실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장소, 아주 어릴 때 그가 끄적여두었다가 수십 년이 지나 그의 작품에서 실체화된 온갖 낙서들,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디어 노트, 실제 손으로 그려서 작업한 콘티 등등. 아니 마치 언젠가는 전시를 할 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마냥,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모아두었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볼거리가 많은 전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이 전시에 온 이 정도의 수많은 인파들을, 난 팀 버튼 영화 개봉날 극장에서 본 적은 없던 것 같아.'


그렇다고 이 양반이 엄청 난해한 영화를 만드냐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난해한 영화로 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도 있잖아요? 제가 굳이 '인터스텔라'를 언급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그 영화를 본 관객수 때문입니다. 몇 명이 봤을까요? '인터스텔라'를 천만명이 넘게 봤어요.


아니 뭐, 네, 명작이니까요. 그렇다고 내용이 다소 난해하긴 하지만, 정말 너무 어려워 영 이해가 안 가는 영화도 아니고, 소위 예술영화도 아니고, 스케일도 크고 감동적인 텐트폴 무비니까. 게다가 작품성도 좋고 연기도 훌륭하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깐요. 네, 저도 그 영화 어마어마하게 좋아합니다, 정말로요.


근데 뭐...네. 천만명이 넘는 건 그 어떤 영화라도 흐름을 타고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서 일종의 신드롬이 되어야 가능한 수치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팀 버튼 영화가 인터스텔라 보다 어려운 영화인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소소한 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싶을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걸까?



 버튼의 레시피


앞서 언급했던 여러 사례와 연관지어 말해보자면, 이런 걸까요?


팀 버튼의 영화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관객들이 선호하는 일반적인 추상과 구상의 비율과는 맞지 않다.'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익숙함과 파격의 비율과 맞지 않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비율이 우리와 맞지 않다.' 등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이나, 아님 다 보고 나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상에 관한 일종의 비유처럼 보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등은, 말하자면 '오락영화이지만 지적인 무언가를 자극하고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비율', 또는 '익숙한 장르적인 재미에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버무려 놓은 비율' 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한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는 거라면,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은 그와 반대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의 영화들은, 그저 보고 즐기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의 무언가를 더한다고 했을 때, 기괴하고 뒤틀리고 다소 우울한 어떤 것을 통해 얼핏 비춰보이는 세상의 어두운 한 면과, 그걸 마주했을 때의 생경한 느낌이 반드시 존재하니까요.  


말하자면, 그것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재미 이상으로 첨가된 무엇' 의 레시피와는 맞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비슷한 예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들도 크게 흥행을 못하기도 하지요.


뭐, 암튼, 전 그 전시를 다녀와서 좀 씁쓸했습니다. 그 전시를 통해서 팀 버튼 감독의 머릿속을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들기도 하면서, 이 전시 공간 안에서는 그의 괴팍함과 그로테스크함을 엿볼 수 있는 이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얼마든지 수용되고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 전시를 찾아 온 부모들도 매우 많았었는데, 그런 걸 보면, 이 전시가 창의력의 지평을 넓히는 하나의 계기로 매우 유용하다는 건데, 정작 그 창의력을 평생 가꿔 온 사람이 만들어서 내놓은 결과물에는 사람들이 왜 이만큼의 관심이 없는가.


나는 그 전시 이후로도, 개봉한 팀 버튼의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봤지만, 많게 잡아봤자 스무 명 이상의 관객이 앉아 있는 걸 난 왜 본 기억이 없는가.


, 이딴 생각을 하다가 혼자만의 짖궃은 농담 같은 생각이 떠올랐는데요, ' 버튼의 영화는 몰라도 전시는 좋았다며 굿즈를 샀던 사람들 중에,  버튼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완성한 그림책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   사람은 과연  명이나 될까.' 하는 거였어요. , 제가 잘난 척하고 뻐기거나, 내가 정말  양반의 찐팬이라고 생색내고 싶은 맘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동화책도......살짝 우울하거든요. , 달리 말해  버튼 답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도 사서   읽고  명에게 빌려주었다가, 금방 팔았어요.  그러니까 굳이  보셔도.



K   사이


암튼 그래서, 팀 버튼이 이번에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전시를 열었다며, 인터뷰를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앞서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와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핫한 한국문화의 영향력에 관한 질문이었어요. 팀 버튼 감독은, 자신은 1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이곳이 매우 창의적인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꼭 다시 오고 싶었다고요. 그래서, 지금에야 전세계적으로 한국콘텐트가 주목받고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지만, 그건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10년 전에도 이미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면서요. 그때에도 이미 그 씨앗이 충분했기에, 지금의 '오징어 게임', '기생충', 그리고 K팝이 계속 만들어져 왔고, 그것이 지금에야 주목받고 있는 것 뿐, 그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란 걸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고 극찬을 해주었습니다. 단지 립서비스로 들리지는 않았어요.


저도 그의 말에 동의해요. 한국콘텐츠가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곱씹을만한 파급력 있는 이야기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각자도생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그 안에서의 경쟁, 개개인의 불안과 욕망 등을 다양한 장르와 방식으로 콘텐츠 안에 잘 녹여서 풀어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관객들이 이입하고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고, 동시에 독특하면서 깊이 있고, 자극적이기도 하면서, 파급력 있는 메세지도 함께 담고 있어서,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이야기로 핫하게 소비되는 것 아닐까. 저의 생각은 그래요.


저는 그런데, 또 반대로, 팀 버튼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의, 굉장히 개인적이고, 탈맥락적이고, 콘텍스트 분석의 여지보다는, 완성되어서 보여지는 텍스트 자체의, 그 안에 폐쇄적으로 구축된 세계관 안에서 표현되고 느껴지는 감각적인 것들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쉽게 말하자면, 취향이 맞아야만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거겠지요.


하긴, 팀 버튼의 첫 커리어가 디즈니에서 시작되었었는데, 거기서 쫓겨난 전력이 있지요. 그런데 웃긴 건, 그리고 나서 팀 버튼이 배트맨 코믹스 원작을 영화화한 배트맨 시리즈를 처음 감독하고 나서, 전세계적으로 슈퍼스타 감독이 되어버린 후, 그가 디즈니에서 일할 때부터 그토록 만들고 싶어했던 '크리스마스의 악몽' 이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결국 디즈니의 자회사에서 투자를 해서 제작되었다는 아이러니.



소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아무튼, 팀 버튼의 인터뷰 말미에 나온 두 가지 문답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나는 차기작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는 넷플릭스와 함께 작업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한때 디즈니도 품지 못했던 그를, 이제 넷플릭스가 협업 파트너로 모시니 세월이 무상하구나 싶더군요.


또 다른 하나는, 전시장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전시장에는, 팀 버튼의 작업실을 재현해 둔 공간이 있는데, 마침, 인터뷰가 진행된 곳도 바로 그 전시공간 앞이었습니다. 팀 버튼은 그 공간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처음 전시장에 도착해서 그 공간을 직접 보고, 실제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해요. 그러면서, 물론 실제 자신이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훨씬 더 정돈되지 않고 지저분해진다면서, 전시장에 세팅이 완료된 이 작업공간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대요.


'내가 이 책상에 앉아서 원래 하던대로 낙서도 하고 종이도 찢어 버리고, 커피도 마시고, 쓰레기도 버리고, 그렇게 점점 공간을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앉아있는 퍼포먼스를 해볼까? 재밌겠는데?'


그 말을 듣고 저 혼자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당신 뭐야? 나와.'

'쟤 누구야? 끌어내.'


부스스한 머리에 수염도 듬성듬성, 선글라스를 쓰고, 전시장 안전요원에게 양 팔이 잡혀 밖으로 끌려나가는 팀 버튼.


그리고 이런 문장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소화 가능한 범위의 유별남."


우리가 소위 말하는 창의력이라는 것은, 사실 저걸 뜻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의 방점은 '유별남' 이나 '독특함' 보다는 '어쨌든 소화 가능한 범위'에 더 찍혀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화가능함' 이라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건 달리 말하면 그냥 '안전한 구경거리' 아닐까.


저는 때때로, 어떤 콘텐츠나 예술작품을 접할 때, 총을 맞은 것처럼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혹은 온몸이 찌릿하면서 부르르 떨리는 듯한, 그야말로 충격이나 전율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거냐며 말이죠. 그 이야기는 마치 이 글의 처음에 나온 농담같은 문답 같습니다. 더 새로워졌다는 평가가 더 쎈 장면이나 더 야한 베드씬을 뜻하는 게 되는 거냐던 박찬욱 감독과 기자의 문답 말예요.


말하자면, 괜찮은 창작자가 자신의 신념과 책임과 재능을 온전히 발휘해 만든 무언가를 보았을 때 받는 충격. 그걸 처음 접한 사람이, 자신이 여태 딛고 있던 세계의 지반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통찰이나 시각. 혹은 표현. 그게 잔인하거나 엽기적이거나 깜짤 놀래키는 무서운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는 같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무엇이 소화 가능한 범위일까요. 무엇이 내가 원하는 충격일까요. 무엇이 나의 손님이 원하는 레시피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면, '대중적', '보편적' 이라는 개념은 대체 무슨 소용일까?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


그러니, 뭐가 맞는 걸까요?

나와 세상과 나의 창작물은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서로 섞여야 될까?

나에게 맞는 추상과 구상, 아름다움과 추함, 익숙함과 파격의 비율은 과연 몇 대 몇일까?


이게 다 무슨 소리냐면...

이래나저래나 넷플릭스든 디즈니든, 팀 버튼의 차기작이 무쟈게 보고 싶다는 소리지요.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그의 전시는...뭐...잘 되겠죠, 뭐.


아무튼.

굿나잇 & 굿럭.



위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여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_RHeAoWay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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