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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데 순서 없고, 버리는 데 원칙 없다.

탐정과 파리, 그리고 시네마

by cpt

초심자의 행운


'누구에게 나의 것을 거저 주는 것.'


지난 번 글을 뭔가 대단한 결심이나 발견을 한 것처럼 마무리해놓고 너무 뻔한 소릴 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 행동이 자신에게 주는 풍요로운 효과를 간과한다. 단지 '버리기 아까우니 아무에게나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고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반추해 본다면, 이 행위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선물을 안겨 준다.


어떤 기적? 이와 비슷한 기적.

모르는 장소에서 처음 보는 여러 사람들 중 하필 누군가에게 다가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내 말에 멈춰선 이가 그 길을 알고 있고, 자신이 아는 바를 친절히 내게 알려주는 것과 비견될만한 기적.


이 정도의 일을 약간은 경이로운 경험으로 여길 수 있다면, 도처에 그 정도의 기적이 널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침 뭔가 떠올라 메모를 하고 싶은데, 오랜만에 나와 만나 까페에 마주 앉은 이의 작은 가방에 메모지와 볼펜이 들어있고, 그가 테이블 너머로 슬쩍 던진 볼펜을 내가 손으로 탁 받아든다. 중력과 가속도, 상대방의 메모습관, 마침 그의 다음 일정에 필요했던 동선, 마침 그 시각 내가 그를 만나러 조금 일찍 도착한 까페 창가에 앉아 무심코 내려다 본 풍경과 거기 등장한 어떤 사람들의 모습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뒹굴다가 일어난 해프닝. 하지만, 그 날 그 순간 빌린 볼펜으로 끼적인 메모가, 그 볼펜의 주인공이 훗날 비참한 오후를 보내다 우연히 sns의 새로운 피드에서 발견하고 위로를 얻는 글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쳐지나다가 잠시 교차하는 순간.'


누군가는 이 말에 '오바하지 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오버까진 아니고, 한 때 이런 걸 민감하게 느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늘어져서, '얹혀 사는 원룸에서, 빌린 노트북에 끼적인', 20페이지 정도의 시나리오가 있다.

(2006년, 포항고속버스터미널)


이 시나리오로, 지금은 없어진 포항고속버스 터미널을 배경으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고 하면 진지하게 들리려나. 춘천에서 하는 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상영하며 숙소와 기차값을 대줘서, 닭갈비를 야무지게 해치우고 온 십여 년 전 기억. 그 영화제의 심사위원이었던 양반을, 두 번째 대학교에서 교수로 만난 기억. 아무튼 그 정도의 기적.


J는 대학 후배다.

레고를 바라보며 J에게 연락하려는 마음을 먹기 불과 몇 달 전, 나는 또 다른 후배의 결혼식에서 그를 만났다. 몇 년만이었다. 그의 아내는 넷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새로이 더해진 업무 탓에 김포, 일산 등지를 들를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나는 세계인의 관용어구를 시전했다.

"그래, 조만간 함 보자."

그 말 뒤로 미처 못 다 이었던 문장은, 이제 더 이상 관용어구 연습구문이 아니게 되었다.

"야, 레고 가져가."

"레고요? 크하하하.

(J는 실제로 이런 소리를 내며 웃는다.) 좋죠, 형님."


'파리의 레스토랑', '탐정 사무소', '팰리스 시네마'를 사서 조립하고 디스플레이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흐뭇해하던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결국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말 물건을 그렇게 오래 방치해뒀다는 후회는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후회하진 않는다는 감각이 내겐 중요했다. 후회하지 않는 것은, 마치 맞춤양복처럼 딱 맞는 용도로 그 물건들을 비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파리의 레스토랑, 탐정 사무소, 팰리스 시네마는 각각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상기시킨다. 그것들이 상기시키는 바와, 그렇게 상기시키는 촉매로서의 저 레고 모형들을 내가 계속 지니고 있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파리는 내게 '장 피에르 멜빌'과 '에릭 로메르'와 첫 해외여행의 기억 등등을 즉각 환기시킨다.

탐정 사무소는 '레이먼드 챈들러', '대실 해밋', '험프리 보가트', '차이나타운', '제3의 사나이'...그 외 중절모와 흑백 필름과 나무 블라인드와 관련된 모든 글과 영상을 머릿 속에 재생시킨다.

팰리스 시네마는? 수많은 잠복경찰들이 차이나타운에서 테이크아웃한 종이박스에 든 누들을 집어삼키며 앉아있는 풍경 뒤에 걸려 있을 것만 같은 그 극장.


영감과 자극의 통로가 되어주리라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에 모셔놓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쌓인 먼지를 털어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플라스틱 조각들. 이것들은, 벽돌 하나하나 다시 조각내고, 설명서를 보며 다시 완성한 후에 꼼꼼이 구석구석 구경하고 싫증나기 직전까지 이리저리 쌓아올리고 무너뜨리길 반복할 이에게 가야 한다.


마침 맞게 떠오르는 대상. 내게는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


첫 스텝으로 레고를 처분하자고 한 건 우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곧이어 J를 떠올린 이후, 이 우연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출발이 되었다.


레고가 있던 자리가 휑하게 비고 나서 내 다이어리엔 세 줄이 적혔다.


파리에 다시 가자. 탐정물을 쓰자. 버디무비를 쓰자.


실현되어도, 그렇지 못해도 좋다. 물건으로 우회하지 않고 곧장 바라고 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낫다.


(이 중 하나, 탐정물을 쓰자는 바램은 얼마 전 신제품 전시회의 체험 용도이긴 하지만 인터렉티브 무비의 시나리오로 실현되었다.)



이왕이면 맞춤으로


여러 번의 반복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이 있는데,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에, 아주 약간의 양념처럼 하나의 과정이 더해지면 좋다는 것이다. 그 양념은 이렇다.


'무엇'과 '누구'를 잠깐이나마 고심해보기.

심각할 필요는 없다. 재미로 해야한다.

핵심은 재미다.

내가 이 재미를 느끼면, 받는 사람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게 의미가 된다.


그 물건이 생필품이 아닌 것이 더 효과가 크다. 누군가에겐 다소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어떤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참으로 딱 맞게 생겨난 것이면 좋을 것이다.


물론 생필품을 필요한 이에게 주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의미있는 일임과 동시에 보람도 있다. 하지만, 몇몇 경우, 물건 비우기는 봉사활동이나 구제활동과는 다르다.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양립할 수 있기에' 물건 비우기에서 다른 재미를 추구해도 된다. 봉사도 하고 구제활동도 하라. 그리고 물건 비우기도 하라. 물건 비우기로 남에게 적선하는 기분을 느끼려 하지 말고, 둘을 섞지 마라. 그럴 거면 둘 다 따로 해라. 내 생각은 그렇다. 따로 하면 각각에서 각각의 재미와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몸에 맞지 않고 헤진 헌 옷을 한데 모아 헌 옷 수거함에 쑤셔넣는 것보다, 상태는 괜찮지만 내가 입지 않는 옷을 다림질한 후에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것이 더 좋고, 아주 아주 가끔 한 번씩 필요에 의해 마지못해, 혹은 산 것이 아까워서 입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꽤 괜찮은 옷을, 마침 그런 옷을 찾고 있던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포장해서 주는 것이 더 좋다.


이보다 더 좋은 케이스는? 누구도 입지 않을 것 같은 특이한 옷, 하지만 분명 나는 그 옷을 너무너무 애정한 적 있는, 한 때 나의 애착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하지만 그 애착에 걸맞게 너무도 잘 관리되어 온, 누구나 함부로 소화할 수는 없는, 다소 실용성이 떨어지지만, 내가 이 옷을 샀을 때와 똑 닮은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꼭 한 번 갖고 싶어할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거기 더해서, 하지만 자기 돈으론 살 생각을 하지는 않을 법한, 그런 옷이라면 어떤가? 그 옷을 그렇게 딱 맞는 이에게 짜잔~건넨다.

"나에게 이런 게 있는데, 마침 네 생각이 났어."


그 상대가 나와 매우 자주 만나거나 나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조금은 있다면 더 좋다. (어, 이거 네가 언제 이러이러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얼마를 주고 가져온 후로, 옷장 어디어디 걸려서 몇 년을 방치했던 바로 그 옷이네? 참 고오맙다~.... 이럼 곤란하다.) 서로의 기질과 대충의 상황을 알고 있는, 한 때 매우 가까이 있으며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상대.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좋을만한 이벤트. 얼굴 한 번 보자는 것이었는데, '뭘 또 이런 걸 다..' 보다는 '어!~ 이게 뭐야. 오오.' 정도의 반응을 기대할만한 물건.


어떤가. 이게 과연 받는 사람에게만 좋은 일로 그치겠는가. '좋은 일 한다치고 뿌듯한 일' 보다는 확실히 내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재미가 있거나 의미가 있으면 된다지만(살면서 이 둘 모두 없는 경우의 일이 허다하지만...), 둘 다 있음 더 좋은 것 아닌가. 내게 있어 이 양념, '이왕이면 맞춤으로' 는, 그 드물다는 '재미와 의미' 두마리 토끼 잡기를 가능케 해준다.



그때그때 다른 게 국룰


J는 공동체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관심의 연장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 이전에는, 전역 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한 번 갔다오겠다며 믿을 수 없이 싼 가격에 산 비행기표가, 그를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로 안내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성지순례를 제대로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사히 이스라엘 땅에 닿아 접시를 많이 닦고 왔다. 그는 설거지를 잘 한다.


그가 설거지의 왕이 되기 이전엔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중국을 며칠 다녀왔다. 친구들에게 선물을 줄 요량으로 짝퉁 롤렉스 시계를 여러 개 샀다고 했다. 마음 씀씀이에 맞게 수십 개 남짓 사왔던 것 같다. 남들은 다들 자신의 손목에 차거나 일행의 손목에 하나씩 채워 몇 개 정도 사오는 그 짝퉁 롤렉스를, 그는 일일히 포장해서 박스에 담아 캐리어에 고이 모셔서 가지고 들어오려다 세관에 걸렸다. 나는 이 사건의 전말을, 그가 학교에서 탄원서에 서명을 받고 다닌다고 해서 알게 되었다. 그는 학교의 모든 선후배에게 사인을 받은 탄원서를 들고 법정에 서서 당당하게 자신의 변을 시작했다. (정말로 지가 직접 일어서서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판사님은 그의 첫마디를 듣고 딱 한마디로 그를 제압했다.

"독립운동하다 잡혀왔냐? 앉아."


J가 졸업여행을 떠나기 전 몇 학기 정도는, 내게 이것저것을 많이 물어보았다. 나는 학교 편집실 조교이기도 했고 학부와 영화동아리 선배이기도 했고, 여름방학 동안 담당교수님이 주관하는 디지털 단편영화 워크숍의 운영팀장이기도 했다. 그는 야심찬 첫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기독교의 엄숙한 율법주의를 비판하는 웅장한 실험영화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용이랄게.... 아마도 로베르 브레송의 영향으로 미니멀리즘적인 연출과 배우를 오브제처럼 활용하는... 그만하자.) 제목은 똑똑히 기억한다. "Principle" 그러니까 "원칙"!


마치 '도그마 95선언'처럼 패기넘치고 진지하고 발칙하고 도전적인 제목과 양식의 그 영화를 뒤로 하고, 그는 같이 사는 자신의 동기 녀석(내가 허리디스크로 시술을 받기 직전, 맹이 전화했다는 그 '허리디스크 터져 고생한 적 있는 그 후배')과 함께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오! 피세례" 웃길려고 만든 호러 영화였다. J는 그 뒤로 영상 관련 수업을 듣지 않았다.


내가 J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일단은 그냥 재미로.

그리고 J가, 내가 이제야 깨닫고, 그래서 지금에야 이 글에 쓰려고 하는 가치관 하나를 이미 오래 전에 깨우쳐 내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술인재단에서 지원해주는 10회 무료상담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상담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도 그와 같았다.

"아무런 계획도 안 해보는 건 어때요? 나랑 다음 달에 만나기 전까지만 생각하고 사는 걸로."


J는 한 때는 문화부장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오!피세례"와 '성지순례' 사이의 언젠가였던 것 같다. 그러다 문화부장관은 아니더라도 문화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되는 것의 재미와 의미에 대해 간혹 말하던 것이 점차 뜸해졌다. 학교 도서관이나 식당, 매점 등지에서 만나 어찌 지내냐고 물으며 나는 항상 덧붙여 말했다. '문화부장관은 언제 될 것이냐! 빨리 되서 내게 돈을 달라!' J는 그 시기에, 고전문학과 사회복지 등에 대한 관심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J는 뜬 눈으로 꿈을 꾸며 멈추지 않고 걷는 후배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J는 '크하하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형, 제가 요즘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요, 계획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 같아요. 전 이제 계획 안 합니다. 제가 만약 계획을 말하면 꼬집어 주세요."


그 때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명복을..)의 그의 홈피 대문글(요새로 치면 프로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화는 만나서 합시다.'

그 때도 대문글의 그 개념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계획도 일체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허풍 쯤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는 장교로 전역했고, 결혼을 했고,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내가 두번 째 대학교의 졸업영화에 2천만원 쯤 때려박고 나서, 신속히 휴학 후, 메이플 스토리의 새로운 캐릭터 티져 영상 연출 알바를 할 때 즈음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넥슨 본사에 그 때 만든 영상에 쓰인 그 캐릭터 조각상이 아직 서 있... 카이저, 잘 지내니?) 그러니까, 알 사람은 알만한, 영화학교에서 단편영화 하나에 자기 모든 게 달려있다고 착각하다가, 막상 졸업 직전에, 계약은 고사하고 미팅 한 번 성사시킬 100장짜리 장편영화 시나리오 초고 하나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시기. 조바심과 자괴감과 악에 받힌 자의식과 온갖 스텝들과의 온갖 자존심 다툼과 실망과 절망과 후회와 참회와 현실인식과 발등에 떨어진 불의 열기를 느끼던 시기. 이른바 '조때따 ㅆㅂ. 나는 머저리야. 니들도 마찬가지고 제기랄' 시기.


그 때 J가 찾아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 저 영화를 하고 싶어요."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전하러 오랜만에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온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왠 영화?

"가서 하는 공부는?"

"공동체 교육, 청소년 교육 같은 걸 공부할 건데, 돌아와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거기서 그것도 공부해야죠."

뭔가 이런저런 궁리와 고민 끝에 연결고리도 찾고 의미도 찾고 방법과 과정도 모색한 듯 했다.

"굳이 그런데 왜 찾아와서 물어봐? 난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너나 나나 다를 바 없는데."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듣고 싶어서요."

J가 내게 맞고 틀린 것에 관해 묻고 내가 그에 답하는 것이, 종종 있던 대화 중 다수를 차지했었던 기억이 났다.

'principle'의 감독과 '영화과 없는 대학의 영화동아리 선배'의 대화란 그런 식일 수 밖에.


하지만 나는 지치고 착잡한 휴학생이었고, J는 거칠 것 없이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내달리기 직전의 신혼 남편이었다. J는 내게 핵심을 물었고 대답을 듣기 원했다.

"제 생각이 맞는 걸까요, 형?"


J는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가 고심한 결과, 영화야말로 '함께'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니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원하는 공부도 마치고 돌아와 영화도 만들 것이다. 영화를 매개로 공동체를 가꾸고 교육하고 자신도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대학 시절 만든 두 편의 단편은 그 과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기인식도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진지하게 시작해서 차근차근 겸허하게 해나갈 것이다. 나는 J의 그런 마음가짐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탄원서에 서명을 받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나도 진지하게 J와 대화에 임했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영화를 공부하고 만든다는 게 지금 네가 계획을 세우는대로 되진 않을거야. 절대로. 목적에 부합시키려고 하면 다 꼬일거야. 영화를 그냥 좋아하다보니 어쩌다 보니 이 지경이 되야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나도 지금 그야말로 이 지경인데."


J는 내가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물었다. 나는 벽에 부딪혔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J는 간단하게 다 알아들었다. 나는 덧붙여 말했다.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어. 의미부여도 의미가 없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지금 당장 찍고 싶은 장면이 있어? 넌 꼴려서 해놓고 보자 싶은 걸 전력투구해서 하잖아. 그렇게 해야지. 영화를 해야겠단 이유를 찾아서 끼워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님 상충하는 뭔가를 합칠 묘수를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상황은 내가 아는 너에 안 들어맞는데."

"그럼 일단 가서 뭐라도 찍고 만들어 보는 것 정도가 최선이겠네요."

"응. 그건 언제든 가능한 방법이지. 맘이 생기면 언제든지 만들면 돼. '이러이러한 것을 위해 영화를 해야겠다'라고 큰 마음을 먹고 접근하는 게 더 스텝을 꼬이게 하는 것 같아.내가 그 당위를 찾아주거나 거기 힘을 실어주는 게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J는 내 말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시도라도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유학 기간 중 배우는 공부와의 접점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논리와 당위에 대한 나의 피드백은 조금은 심심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J는 진지하게 내게 물을 것을 가지고 왔고, 나의 대답은 그의 방문 목적에 부합했다. J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영화'를 단념시킬만큼 강한 메세지를 주지도 못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내 정신상태는 그럴 생각이 있을만큼 여유롭지도 못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당시 나의 솔직하고 과격한 고백이 그를 단념시켰다.


"그리고, 영화는 같이 하는 게 아냐. 영화는 감독이 혼자 꿈꾸는 걸 눈에 보이게 바꿔서 나머지 모두를 설득하는 게 전부야. 영화? 그러니까 영화를 한다는 게, 스텝으로 참여하겠단 말이 아니잖아. 네 영화를 만들겠단 말인데, 그럼 그러니까 돈 대주고 뒤로 물러나 있겠단 것도 아니고, 이름만 어디 올리면 된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넌 '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데, '나의 영화를 모두 함께' 라고 하면 그 나머지 모두는 뭐가 돼? 차라리 내 걸 하는데 도와라고 말하는 게 솔직하지. 돈 받고 할 일을 해라는게 더 맞는 말이지. '우리 모두의 것' 이라고 말하려면 '결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행복하게 과정을 즐기자'가 가능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 내 돈으로 내가 찍는 단편영화에서도 그게 잘 안되더라. 세상 모든 일에 그 정도의 어려움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럼 난 이렇게 말하겠어. 그러니까 우린 도대체가 모든 일을 그딴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건가..라는 회의에 빠졌다고. 그러니까, '영화를 만들어야지.'나 '영화계에서 일하겠다.'가 아니라 '영화를 하겠다'는 건 이런 거겠지. 혼자는 할 수 없는, 그런데 어쩌면 단지 나의 망상일 뿐인, 하지만 대체불가한 유일한 욕망으로서의 '나의 영화.' 그 비전을 어떻게든 형상화하겠다. 이게 '함께' 하는 것을 전제하고 그 가치를 수호하는 영역일까 싶은 거야. 그걸 하겠단 거야, 네 말은."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J의 영화 만들기의 모든 과정에 과몰입해서 랩처럼 내뱉은 후에 그 당시 의심해 마지 않던 생각을 냅다 던졌다.


"영화는 ㅆㅂ 혼자 하는거야."


J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맞네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안되겠네요. 제가 완전 헛다리 짚은 거 같아요. 고마워요,형."


그 때의 내 조언이 J의 앞날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조언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집중한 대화가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J는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나아갔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참고할 수 있다면, 스스로도 정할 수 있단 말이다. 오히려 난 그 때 J에게 했던 나의 말에 갇혀 여러 해를 힘들게 보냈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은 J의 그 '무계획의 경이로움'에 대해 허풍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이제 '모든 건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 진짜 문자 그대로의 뜻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중고로 카메라를 샀다. 예전에 쓰던 펜탁스 MX와 처음 써보는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다. 펜탁스 카메라는 다시 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참에 얼굴도 한 번 보면 딱 좋겠다 싶은 누군가에게 문득 전화를 걸지도 모를 일이다.

물건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내게 어떤 물건이 있는지, 그리고 그걸 왜 지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사진을 찍으면 될 일이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여전히 좋다면. 파리가 여전히 궁금하다면. 냄새나던 센느 강 어귀에서 단단하게 잘 말아 쟁여놓은 담배를 꺼내 물고 침낭을 베고 눕는 게 비행기값을 잊게 해줄만큼 땡기면. 월세를 날리면서 집을 비워두고 몇 달 일한 돈을 홀랑 다 까먹고 돌아와도 그게 땡기면.


그럼 그러면 될 일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것. 그 뿐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베베 꼬인, 좀 별로인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 남에게도 이롭다. 그게 싫어질수도 있다. 그럼 어떤가. 물건은 제 역할을 다 했다. 아니, 있는 동안, 제 역할을 다 하게 해주는 것. 그게 우리와 물건 사이에 필요한 의미의 전부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솔직하게 집중하면 된다.


촬영 알바를 갈 땐 그때그때 빌리는 장비와 스텝구성이 바뀐다. 소규모로 촬영할 일에 더해 혼자서도 가능하겠다 싶은 일들이 생겨나서 산 미러리스 카메라다. 그리고 이제 남에겐 전혀 무용하고 심지어 보여지지도 않을지 모를 무엇인가를 혼자 찍고 있다. J에게 소리높여 말할 때처럼 그야말로 '혼자' 찍고 있는데, 'ㅆㅂ 혼자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예전엔, '제대로 된 영화'를 찍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낭비하는 것만 같아 절대 시도하지 않던 짓이다.


'절대'라는 것은 없다. 그렇게 '쓸데없이 절대적인 기준', 그러니까 마치 돌판에 새긴 'principle' 마냥, '이데아에 한참 모자라고 못미치는 자신'을 비추던 거울은 다 박살나고 있다. 회색 면티와 뉴발란스 992만 입는다고, 남는 시간에 내가 아이패드 미니미나 페이스노트 따위를 만들었던가 말이다. 오히려 창조에 방해가 되는 것을 없애기 위한 '원칙'을 고수하겠다느니 진상을 피우다 창조할 시간 따윈 없었던 게다.


그러니 모든 건 그때그때 바뀌는 거다.

일관성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건을 버리거나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반복되면 그걸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 물건을 들여놓은 것도 나, 그 물건을 비우고 있는 것도 나다.


그 때도 그 때엔 지금이었고, 지금도 지금이고, 장차 그 때가 지금이 될 게다. 순간만이 있다.



Like water


이소룡의 유명한 인터뷰가 있다.

'Like water.'

그는 물처럼 움직이라고 말한다. 물은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이 되고, 접시에 담으면 접시 모양이 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세차게 흐르면 나무를 부러뜨린다.


지닌 기질 그대로.

순간에 집중하기를.

다른 저의 없이 그냥 보이는 그대로기를.

물처럼, 혹은 아이처럼.

그게 아니라면, 아무 생각없이 아무데서나 하루 종일 식빵 굽고 졸고 있는 길고양이처럼.

(고양이가 짱이다. 귀여우면 다다.)


레고를 보며 J를 떠올리고, J를 떠올리며 J와의 대화를 기억한 것은 정말이지 초심자의 행운처럼 내 시작을 손쉽게 해주었다. 자칫 물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겹게 시작할수도 있는 것을,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레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순서와 그 첫 방식이 연결해준 또 다른 것들이 나를 숙달시켰다.

'이왕이면 맞춤으로.'

혼자 고립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물건을 줄이는 방식. 뭔가에 이바지하고 연결되는 방식.

물건은 물처럼 흐른다. 손에 쥐고 팔로 감싸안고 있으면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악취를 풍기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은 이후 내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말하자면, '걍 그때그때.'


은연 중에, '내가 맘에 들어하는 것'과 '나를 마음에 들게 여기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떻게? 뭐 걍 자연스럽게.



덧1


이 모든 것을 이미 20대일때 알고 있던 J가 멋져보였다. (뭐, 알고 말했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말로 내뱉은 바의 퀄리티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 녀석의 아이들에게 멋진 아저씨가 될 거라 생각하니 신이 나 레고의 먼지를 털었다. J는 큰 아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레고를 보자 '우와' 하고 소릴 내는 아이에게 '프릳츠' 유리컵을 꺼내 마실 것을 따라 주었다. 나름 예쁜 컵을 고르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컵은 버리지 말자. 그럼 다른 컵들을 다 살펴봐야 된단 뜻이네. 컵, 그릇, 식기를 비우자.'


덧2


J는 유학을 무사히 마치고 왔고 여지껏 영화는 찍은 바 없다. (요즘은 유튜브를 한다.) J와 그의 아내는 네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있다. 그들은 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를 운영한다.


덧3


그 때 수많은 물건더미 속에 처박혀 있어 결국 찾아내지 못했던 레고 조립 설명서는 책장까지 비운 후에야 찾았다. 이걸 빌미로 얼굴을 한 번 보자며 간혹 연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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