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삶 말고.
퇴원 후 2주 뒤부터 살살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배에 찬 복대를 잘 때 말고는 한 달 동안 절대 풀지 말라고 했다. 한 달 뒤엔 양반다리를 하고 벽에 기대 한동안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버스를 타고 가까운 거리를 가보려 시도했다가, 버스가 과속방지턱에 들썩이는 순간 허리의 고무 바킹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바로 내린 적이 있다. 그다음 달이 되어야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결국엔 약 두 달 정도는, 걷지 않을 때는 가능한 움직이지 않고 다리에 쿠션을 받혀 가만히 누워있었던 셈이다. 누워서도 노트북은 열어볼 수 있고 책도 읽고 사람들과 연락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워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끼니 때우기. 누가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을 만들었나. 한 번 해보라. 이왕이면 인절미로.
작은 방에 가만 누워있으면 정면에 채도가 빠진 분홍색 암막커튼이 보인다. 그 암막커튼은 10년이 지난 물건으로, 3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언제나 내가 자는 방의 창문을 가려주는 귀한 물건이었으나, 이번 집으로 이사 올 땐 다른 용도로 쓰였다. 내게 그 분홍색 암막커튼은 궁상맞은 자취생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작은 방 창문에 그 커튼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버리기에는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여전히 멀쩡하기도 하여, 어디에 쓸까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위치에 달게 된 것이다.
작은 방에는 깊이가 꽤 깊은 붙박이장이 있다. (문틀까지 합치면 약 80cm? 말하자면 작은 방의 4분의 1 정도는 붙박이장이라는 얘기.) 그 붙박이장에는 원래 있어야 할 문이 없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전에 살던 이들은 거기에 큰 책상을 넣어두고 작업대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용도대로 그 안에 행거를 조립해 넣었다.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조립해보는 그 행거. 충분히 압력을 견디도록 단단히 길이를 늘려 짱짱하게 조립하지 않으면 언젠가 와장창 무너지는 그 행거. 처음엔 싸구려 행거의 품질을 탓하다가, 몇 번 다시 조립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 질려도 당최 부서지거나 무너지지지 않아 교체하기 애매해지는, 가성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 행거. 그 행거 앞에 암막커튼을 달았다. 심란한 옷장이 익숙한 흐리멍텅한 단색으로 뒤덮였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창문은? 잘 때 혹시나 불빛이 새들어올까 봐 암막커튼을 치고도 안대까지 하고 자는 버릇이 있던 나는, 이사하고 남은 박스들을 잘라 창문을 막고 그 위에 흑지를 붙였다. 그리고 잡지나 사진 따위를 찢거나 오려 붙였다. 그놈의 꼴라쥬 짓을 하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땐, 동아리방의 네 면 전체를 꼴라쥬로 도배했었다. 심지어 한 장 한 장 찢어서 가장자리를 은은하게 라이터 불로 그을려가며. 시간 날 때마다 그 짓을 해서 동아리 사람들 모두가 중독이 되었고, 급기야 합심하여 그 꽉 찬 꼴라쥬 위로 몇 겹을 더 덧붙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그 벽을 주인공 삼아 '꼴라쥬'라는 단편영화를 찍었지만, wmv로 뽑아놓은 640x480 해상도의 그 영화는 파일이 깨져 이제 아무도 볼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브랜 뉴 암실이 탄생했다.
하지만, 수건과 레고를 비워내고 나자, 그 꼴라쥬한 창문이 좀 보기가 싫어졌다. 옷을 갈아입거나 새벽에만 마지못해 기어들어오던 그 방에 낮에 누워있으니 또렷이 보이는 게 있었으리라. 처음의 생각은, 그냥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몇몇 사진 조각들을 떼내고 허리가 좀 괜찮아지면 다시 정비를 하자는 거였다. 그러다 사진 몇 개를 떼내자 다시 더 보기 흉해졌고, 일단 우선 다 떼어내자 싶어 처음 붙여놓은 박스 종이 채로 다 뜯어냈다. 그런데 다시 붙일만한 이미지들도 당장은 없거니와, 떼어낸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자 기분이 되려 좋은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밤을 새고 어떻게든 눈을 붙이려 들어와 누워있는 게 아니라, 뜬 눈으로 거의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것 아닌가. 원래 이 방은 방문을 닫고 불을 끄면 대낮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이었다. 아파서 대낮에 그 상태의 깜깜한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약간..뭐랄까...미친 사람이 감금된 기분 비슷한 걸 느끼게 된다. 그런데 창문에 빛이 들어오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자면, 나는 약 두 달을, 새벽에 동이 트기 시작하면 즉각 눈을 떴다. 슬며시 밝아진다 싶어서 눈을 뜨고 조금만 기다리면 방 전체가 하얗게 빛나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해가 질 때도 마찬가지니 해가 뜰 때도 당연한 것 아니겠나. 항상 카메라를 뻗쳐놓고 매직 아워를 기다려 한 컷 건지려 하면 순식간에 하늘이 깜깜하게 저물고 마는 걸 매번 보지 않았나. 동이 트기 시작하면 좀이 쑤셔, 복대를 차고 롱 패딩을 걸치고 장우산을 가지고 집 밖으로 나왔다. (등산스틱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걷는 게 그리 재밌는 일일 줄이야. 아무 생각 없이 왼발 다음엔 오른발, 이 지점 다음에 밟을 위치는 저기. 이것만 생각하며 걷는다. 그 시각엔 살살 걷는 내 속도와 비슷하게 걷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그중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린 듯 하지만, 내가 제일 느리게 걷는 축에 속하기도 한다. 두 달 동안 눈도 오고 비도 오고 화창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했다. 어떤 날씨 건 발바닥과 다리와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고 천천히 두 시간쯤 걷고 들어오면 땀이 난다. 단 한 벌의 하의와 외투, 단 한 켤레의 신발, 그리고 속건성 티셔츠 몇 벌로 두 달을 능히 지냈다.
그렇게 걷고 들어와 아침을 먹는다. 하루 세 번 약을 챙겨 먹으라 했으니 밥도 세 번 먹어야 한다. 빨리 먹으면 그 뒤론 할 일이 없어 다시 누워야 하니 가급적 천천히 먹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걷는다. 그리고 눕는다. 다음 끼니가 온다. 먹는다. 걷는다. 눕는다. 다시 먹는다. 눕는다. 걷는다. 해가 지고 깜깜해지면 바로 눈을 감는다. 마치 다음날 동트기만을 기다리며 오늘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 같다. 사실이 그랬다. 그렇게 날짜가 지나가고 약봉지가 줄어들면, 시킨 대로 잘 걷고 스트레칭을 잘하고 잘 쉬면, 나아질 거라 믿는다. 그것만 생각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매 끼니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먹고 난 뒤엔 걷는다. 이 당연한 짓을 처음 배운 것처럼 하고 있으니 보이는 게 있었다.
의(衣)와 식(喰).
다시 말해,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이라며 막상 뒷전에 제쳐 둔, 먹고사는 짓의 품질.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만 가면 크기가 어마어마한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다. (그 옆엔 '한국화훼농협'이라는 꽃 공판장도 있다. 거기도 무지 크다.) 나는 한 때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그곳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걸 즐겼다. (Y에게 차가 생기고 킨텍스 이마트타운이 생기기 전까진 그랬다.) 거기엔 꽤 괜찮은 가격의 과테말라 안티구아 SHB 원두도 있고, 옛날식 왕돈까스도 세트로 파는 엄청 유명한 소바집도 있다. 무엇보다 쌀 4kg을 이동식 장바구니에 싣고 설렁설렁 걸어오기에도, 야채가 필요할 때 한두개씩 사 오기에도 무척 가까워 콧바람 쐬기에 제격이다. 덤으로, '지하실에서 키우면서 까먹고 몇 주씩 물을 안 줘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식물을 하나 사 들고 와서, 정말 그런지 실험해보기에도 좋을 대규모의 꽃시장도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키우는 스파트필름의 별명은 '쥬만지'다. 분갈이를 두 번 해주었음에도 여전히 화분이 터질 듯 자신만의 정글을 확장하고 있다.)
이동식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가는 재미가 시들해지는 만큼, 인터넷 배송 사이트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새벽 배송과 총알배송, 그리고 맛집 배달이라는 최첨단 서비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편의점에는 베트남 쌀국수와 마라탕면, 우육탕면과 야채 쌈밥 도시락, 심지어 1kg짜리 1+1 대패삽겹살까지 등장했다. 나는 마켓컬리와 쿠팡, SSG와 배달의 민족에 충성했다. 모든 개별 포장된 음식 1인분의 양은, 감질맛나게 해서 도리어 더 먹게 하려는 상술로 여겨졌다.
'최소주문가격'이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기묘한 물리법칙으로 인해 먹으면 먹을수록 쌓이는 남는 음식들, 그램 수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1+1으로 파는 것을 집어 들고 와 냉장고 가득 자리한 냉동식품, 베이컨, 카레, 빙벽처럼 꽁꽁 얼어붙은 고기들, 고기 먹을 때 제발 한번 쯤 먹자며 가열차게 카트에 싣고 온 채소들.
한번씩,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만들어져서 이젠 더이상 먹지 말라는 싸인을 보내는 음식들을 5L 짜리 음식물쓰레기 봉투 세 개쯤에 차곡차곡 나눠 담고 나면, 어김없이 특판이랍시고 파는 고기나 먹지도 않을 야채 따위를 장바구니에 생각없이 채우지 말자거나, 앱으로 배달음식 따위를 주문하지 말자는 등의 다짐을 한다. 그러다가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차라리 한번씩 마트에 가서 유통기한이 길고 먹기도 간편한 레토르트 식품을 왕창 사오란 말이다.' 읭?
분기마다 한 번쯤 있는 냉장고 청소가 야기한 '생각없이 먹고 산 죗값'과 그에 따른 자책은, 다른 쪽으로도 이상한 알뜰함을 견지하는 동력이 된다. 찬장 문을 열면 쏟아질 듯 위태롭게 쌓인 락앤락 플라스틱 용기들. 수십개의 나무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 한번쯤 규모가 큰 촬영을 마치고 나면 생겨나는 믹스커피들, 종이컵, 1.5L 스포츠 음료들, 하나씩 포장된 각종 초콜렛(흔히 제작박스라 불리는 것에 들어 찬, 사실 그렇게 많이 쟁여놓을 필요없지만, 막상 없으면 당 떨어진 스텝들이 민중봉기 직전의 표정을 지을지도 몰라 준비하는 주전부리들 일체.) 나름 알뜰하게 써볼 요량으로 사놓은 일회용 빨대, 일회용 음료컵, 컵 뚜껑, 심지어 까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의 일회용 잔에 끼워져 있던, 이쁘다 싶어 모아놓은 컵 슬리브들. 어디선가 어떻게 생겨난 수저들, 그릇들, 컵들, 유리잔들.
이건 누가 봐도 과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핑계를 댄다.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래도 종류별로 모아서 쳐박아 둔 게 어디냐? 끼니를 거르지 않는단 게 중요한 거 아냐?' 안보이니 없는 척 하는 먼지처럼 대충 뭉게고 넘어간다. 이제 그럴 순 없다. 누워 있을 때도 그렇지만 걸을 때야말로 이런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문제 삼기 적합하다. 매 끼니 후 한시간에서 두 시간. 하루에 최소 네다섯시간. 생각할 시간이 없단 핑계는 이제 댈 수 없다.
예를 들면 락앤락. 못해도 서른개는 넘을 거 같은 그 밀폐용기들. 김치 한포기를 능히 담을 수 있는 크기에서부터 양파 반쪽을 겨우 넣을 수 있는 사이즈까지. 그나마 뚜껑에 붙은 고무패킹을 일일히 빼서 씻고 완전히 마른 뒤에 결합하여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그릇은 손에 꼽는다. 나 혼자 살면서, 대부분의 그 용기들은 썪은 음식에서 풍기는 냄새를 막는 용도 이외에는 전혀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잖아. 애초에 거기 담긴 것이 없으면 그 락앤락을 박박 씻어 다시 찬장에 쌓아놓을 필요가 없지 않나.
또 다른 예로 내가 매일 밥을 담아 먹는 그릇. 보통, 그릇세트에는 국그릇과 밥그릇이 있다. 거기에 수저와 수저받침, 간장종지 같은 것들이 함께 들어 있다. 조금 종류가 많은 세트에는 대접이라 불릴만한 면그릇도 추가된다. 내겐 그 모든 사이즈의 그릇들이 적어도 서너개 씩 있었다. 나는 자취 기간을 통틀어 접시와 컵을 깨먹은 적이 거의 없다. 그 말은, 자취를 하는 내내 어디선가 생겨난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항상 대부분의 끼니를 단 하나의 그릇으로 먹곤 했다. 좀처럼 세트로는 찾아보기 힘든 사이즈의 그릇도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양푼이라고 할만한 사이즈의 사기 그릇. 나는 그 사이즈의 그릇이 세 개 있다. 그 크기의 그릇 하나에, 면요리를 가득 담거나, 이것저것 한데 섞어 볶은 볶음밥을 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밥에 계란에 간장과 참기름과 고추장 볶음을 때려넣고 비벼 먹었다. 가끔 닭도리탕이나 국을 하면, 그 양푼이만한 그릇 하나엔 국을, 다른 하나엔 밥을 담아 먹었다.
우리 동네의 자랑인 그 거대 농협 하나로마트 바로 옆에는 CJ E&M의 세트장이 있다. 가끔 방청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곤 한다. '쇼미더머니' , '슈스케'와 '프로듀스101'도 그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즐겨보던 '마스터 셰프 코리아'도 촬영을 했었다면 한 번 구경을 갔을텐데.
'마셰코'는 첫 시즌부터 셰프들의 직설적인 말투로 화제가 되었다. 그 중 김소희 셰프의 캐릭터가 내겐 너무 재미있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식당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비엔나에 패션과 디자인을 배우러 유학을 갔다가, 그 곳에서 일식집을 차린 후 요리를 독학하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김소희 셰프는, 이른바 '넘사시러워서 살가운 말 잘 못하는', 단점을 지적할 땐 호되게 독설을 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한 참가자와는 몇 마디 뾰족한 말을 주고받다가 참가자가 도중에 앞치마를 벗고 그 길로 본선에서 자진 하차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시즌이 계속될수록 한마디 씩 진심어린 조언과 배려로 참가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그 많은 장면 중에 내게 각인 된 순간이 있다.
참가자 중에는, 고급진 유럽 요리의 종류를 잘 아는 미식가 기질의 참가자나, 요식업에 오래 종사하며 한두가지 요리에는 자랑할만한 내공이 쌓인 참가자도 있지만, 어느 정도 요리를 즐기고 이런저런 요리를 자기 식으로 해보거나 그럭저럭 맛나게 만드는 정도의 참가자도 있었다. 성씨가 배씨이고 대구에서 식당을 한다는 참가자가 그런 케이스였다. 내가 봐도 어떤 맛일지 예상이 갈 정도의, 그렇지만 예상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라기보단, 그 음식의 맛을 예측할 수 있기에 나름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만드는 그 참가자에게 관심이 갔다. 그가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서 어느 정도로 레벨업이 될지도 궁금했다. 배씨에 대구 사람이란 것도 관심에 한 몫했다. (단순히 내가 배씨에 대구 사람이라 그렇다.)
미션에는 시간제약도 있고 익숙치 않은 재료로 익숙치 않은 요리를 해야하는 어려움도 있다. 김소희 셰프는 슬쩍 지나가며, 요리를 하는 도중에 조금 버거워하는 참가자에게, 시크하게 격려 비슷한 말을 한두마디 해주었다. 그는 긴장했고 잘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요리는 내 눈엔 훌륭하진 않아도 나쁘진 않게 완성되는 것 같았다. 바게뜨와 닭요리, 디저트도 시간 내에 만들어냈다. 만약 내가 뷔페에 간다면 그렇게 담아와서 맛있게 먹을 것이다. 큰 실수를 하지 않고, 간도 적당히 맞게, 하지만 탁월하진 않게 완성되었던 것 같다. 볼 때 내 느낌은 그랬다. 그런데 김소희 셰프가 그를 평가할 차례가 되자, 그녀는 참가자의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비스듬히 들고, 나이프로 음식을 한 부분, 한 부분 쓸어서 쓰레기통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뭐라뭐라 하면서 하나하나 지적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말이 있다.
'전쟁 시대도 아니고, 한 접시에 이게 다 뭐에요.'
전식, 후식, 디저트...다 먹자, 맛있게 다 먹자. 서비스로 이렇게 다 담아주면 맛있게 먹을텐데. 김소희 셰프는 단 한 입도 먹지 않고 모조리 쓰레기통에 쏟아넣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전쟁 통에, 참호에 수그리고 앉아서 꾀재재한 몰골로, 주변에 있는 먹을 만한 걸 모조리 반합에 때려넣고 급하게 주워삼키면야 뭐든 맛있겠지. 이것도. 아니 그것보단 맛있겠지, 이 음식은.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니? 정말 매끼니 먹을 때마다 그런 아사리판 한 가운데 살고 싶니?'
새벽 산책을 마치고 양푼이 크기의 그릇에 햇반과 카레, 계란후라이를 얹어 숟가락을 뜨다가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찬장과 냉장고를 죄다 열어 놓고 훑어봤다. 아사리판. 뭐, 또 한 번 분기마다 있는 푸다거리의 순간이 온걸까. 아니, 그거랑은 좀 달랐다. 리셋말고 방향전환.
'먹기 편하게 큰 그릇에 가득 담아서 한 끼 떼우고 잔뜩 배만 차면 되는 게 아니잖아. 배가 고파서 더 먹는게 아니잖아. 삶의 전투가 그토록 치열해서 전투적으로 주워삼키는 것도 아니잖아. 뭘 그렇게 전쟁 통에 겨우 연명하는 것처럼 굴고 있어. 할 거 하면서 인간답게 살자.'
김소희 셰프는 마셰코 방영이 끝나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는 아니지만 맥락은 이렇다.)
'우리 몸은 자기한테 뭐가 부족한지 알아요. 뭔가가 먹고 싶다, 당긴다는 건 지금 내 몸에 그게 필요하단 거에요. 그런데 그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말 원하는 걸 필요한 만큼 먹어야 되요. 매 끼니, 자기가 정확히 원하는 양질의 음식을, 적당히 먹어야 된단 거죠. 그게 어렵거나 사치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영양소나 균형잡힌 식사 이런 얘기는 그 뒤에 챙기는 거고, 일단 한 끼 떼운다는 거부터 인식을 바꿔야되요.'
정해진 시간에 삼시 세 끼를 챙겨먹고 규칙적으로 걷기 시작하니 매우 심플한 우선순위 두가지가 정해졌다.
1.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을 먹지 말자.
2. 저녁에 많이 먹지 말자.
그 두가지 이유의 목적은 다시 하나로 수렴된다. 건강을 위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이 기회에 몸 속 독소를 배출하는 올바른 식습관을 가지려고? 아니다. 그 목적은 이렇다.
"화장실 가는 거 힘들어. 쾌변이 아니면 더 힘들어."
골반이 상체를 지탱하며 동시에 괄약근에 힘을 주는 일이, 그리고 앉은 채로 허리를 한 쪽으로 돌리는 행동이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험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하지만, 경험자들은 입을 모아 그것부터 주의시킨다. S도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맹이 전화해서 내가 받을 시술의 효과와 위험성을 물어본, 허리디스크가 터진 그 후배이자 J의 학교 동기이자 동거인. 매번 이렇게 쓰기 귀찮아 이니셜을 하사하노라.) S 왈, "형, 앞으로 화장실 갈 때 핸드폰 꼭 챙겨요."
그러니 난 매번 양변기에 앉아 사투를 벌이기 싫다. 피할 수 없다면, 가급적 혹시라도 지인들이 급히 달려와 줄수 있는 낮시간으로 한정하겠다.
그럼 일단 기름지거나 튀긴 음식, 밀가루 등을 덜 먹고, 식이섬유를 섭취해야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고, 먹는 양도 줄여야 했다. 화장실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양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복대를 푸는 유일한 시간, 누워있는 시간 동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포체험이 시작됐다. 똑바로 누워있기가 찌부둥해져서 조심스레 다리 사이에 쿠션을 끼고 옆으로 누으면, 내 복부가 중력의 영향으로 지면쪽으로 쏠리는데, 그 때 그 무게가 척추에 주는 하중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금문교의 무게를 지탱하는 케이블들이 팽팽해지고 철골들이 끼기긱 소릴 내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마다 기립근에 힘을 주고 허릴 펴려고 안간힘을 쓰며 다시 똑바로 누워 양쪽 요방형근 뒤에 마사지볼을 끼워넣고 무릎을 높게 받쳐야 경고음이 사라진다.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종류가 다양한 알약 같은 게 있음 좋겠다는 생각. '먹는 낙'이라는 건, 내가 항상 무의식적으로 먹고 싶어하는 (혹은 우리 모두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땡기는), 튀긴 음식, 기름진 음식, 매우면서 동시에 단 것, 지하철 환승 때마다 내 멱살을 잡는 델리만쥬, 짠 것, 감칠맛 나는 것, 이런 것들을 삼키는 순간에만 잠시 스치는 것 아닐까. 그러니 그 순간을 아주 잠깐 느끼게만 해주고 즉시 필요한 만큼 배를 채워줄 알약이 있다면 밥 먹는 시간 따위 안 써도 될 텐데... 또 어떨 땐, 나에게 '식감'이라는 것은, 사실 모조리 '목넘김'으로 수렴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슨 음식을 먹어도 씹는 맛보다 삼키는 맛으로 먹는다 싶을 정도로 쓸어담으니. 그렇게 치면 빼갈이나 콜라가 최고의 음식 아닌가. 타는 듯 자극되는 식도의 감촉. 하긴, 누군가는 내게 혈액형이 콜라의 C형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내게 '역설적이게도, 타고난 건강의 반증'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먹고 그렇게 사는데 아프지 않다니... 이제 그 역설은 끝이 났다. 있지도 않은 전쟁 시대의 끝. 이제 사람답게 먹어야 한다.
아니, 거창히 말할 것 없이 심플한 이유가 생기니 고민하거나 오랜 시간 고찰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르다 실려갈 순 없다! 이보다 더 간절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나. 결론은 났다.
소화 잘 되는 음식을, 지금보다 적게, 기분 좋게 천천히 먹을 것.
그릇을 종류별로 두개씩만 남기고 모두 누군가에게 주거나 버렸다. 두 명 이상의 손님이 올 경우, 크기가 제각각인 각기 다른 그릇을 모두 꺼내 대접한들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의 집에는 그리 많은 손님이 올 일이 별로 없다. 락앤락은 유리로 된 것들만 남겼다. 플라스틱으로 된 것들보다 유리로 된 것들이 씻고 나면 냄새가 밸 일이 좀 적을 것 같아서였다. 오래된 컵들도 버렸다. 버린 컵을 대체하여 오래 쓸 컵을 필요한 만큼 새로 샀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사지 않으려 노력했다. 볼 때마다 예쁘고 마음에 들만한 컵들을, 용도를 고민하고 여러 개를 서로 비교하다가 하나씩 사들였고, 늘어난 만큼 기존의 것을 처분했다.
오래된 수저통을 버리고,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수저들은 모두 버렸다. 새로 수저를 샀다. 끝이 눌어붙은 뒤집개는 버렸다. 나무로 된 것을 새로 샀다. 수저와 포크는 혹시 몰라 4인분만 남겼다. 그 중 평소 안 쓰는 것들은 따로 서랍에 수납했다. 국그릇이나 면그릇보다 큰 그 양푼이는 도저히 버리진 못하고 구석에 두었다. 양은냄비와 오래되어 타버린, 크기가 다양한 여러 개의 프라이팬들을 모두 버렸다. 질 좋은 프라이팬 하나와 깊이가 꽤 있는 웍 비슷하게 생긴 팬을 하나 샀다. 실컷 잘 쓴 뒤, 더 이상 쓰기 힘들다 싶으면 지체없이 새 것으로 교체했다. 오래된 프라이팬을 더 쓰는 것이 알뜰한 것이 아님을 인정했다. 다른 걸 아끼고 건강하게 먹을 걸 해먹자. 그걸 못하면서 다른 핑계를 대지 말자. 군데군데 구멍이 난 천으로 된 냄비받침도 버렸다. 끝이 썩은 도마도 버렸다. 마음에 드는 냄비받침과 실용적인 소재의 도마를 샀다. 싱크대 아래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믹서기를 다 분해해서 박박 닦았다.
냉장고에 들어 찬 과일과 야채가 곧 버려야할 상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믹서기에 죄다 넣고 갈아마셨다. 음식물쓰레기봉투는 2L짜리만 사두었다. 반찬은 꺼내서 끼니때마다 작은 접시에 따로 담았다. 국그릇에 국을, 밥그릇에 밥을 담아먹기 시작했다. (국그릇은 뼈 통으로, 밥그릇은 계란 풀 때나 쓰던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소고기를 아주 조금씩 사서 그때그때 먹었다. 아스파라거스를 구워먹었다. 식당에서 먹는 스테이크 못잖게 근사한 끼니를 눈뜨자 마자 아침에 먹는다는 것에 뿌듯해졌다.
빌레로이엔보흐 유리잔에 소위 '매실 온더락스'를 해 마시면 굳이 음료수를 사놓을 필요가 없다. 그 전엔 단 한번도 고향 집에서 보내 온 매실원액을 다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근사한 컵에 담아 마시지 않아서다. 만들지 않으면 결코 생기지 않는, '여유'를 만들어내지 않아서다. 아무 컵에나 아무렇게나 따라서 얼음과 물을 섞어 휘휘 저어 한 컵을 원샷하면 될 것을, 그 전엔 그럴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안 먹었다. 그 때가 지금보다 정말로 그럴 시간이 없었을까.
우리 어머니의 명언이 있다. '힘은 내면 난다.'
그 말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유는 내면 난다.'
마음에 드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없던 것들이 생겨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띄는대도 그대로 두면, 은연 중에 체념과 울분이 쌓인다. 평소엔 그걸 잘 모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버리기만 해도,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뭔가 허해서 자꾸 사서 모으거나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으론 충족이 안 되던 것들이, 오히려 사는 것은 적어지고 버리는 것이 많아지면서 충족이 된다. (물론, 뭔가 사기 위해 이유를 들어 뭔가를 버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만, '뭔가를 사려면 같은 용도의 뭔가를 버린 후에.' 라는 원칙 정도를 견지하면 그 부작용은 어느 정도 예방이 된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존재 이유는 보통 '혹시나 하는 불안함'이거나 '아, 영광의 순간이여' 들이다. 그러니 우린 보통 혹시나..하며 불안해하며 살게 되거나 '저 땐 저랬지'라며 과거를 파먹고 뒷걸음을 치며 살게 되기 십상이다. '이건 없어도 돼. 만약 필요하면 그 때 사면 돼. 그 때 이걸 살 능력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 그럼 능력을 갖춰서 사야지. 꼭 필요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려면, 혹은 '지금의 나는 저 때의 나에 못 미쳐. 아니, 저 때는 다 지나갔어. 지금 나는 그 때와는 달라. 저건 그 때엔 최선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이제 뭘 할거야? 지금 뭘 해야 돼?' 라는 마음을 먹으려면, 단순하고 명확한 기능에 충실한 것들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정확히 자기 몫을 하는 것들을 사용하여, 의도를 관철시키고, 원하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행위를 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지닌 것과 나 사이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 확실한 효능감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내면 나온다. 아니, 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잘 먹고 잘 살려고. 뭐가 잘 먹고 잘 사는 건데? 글쎄. 그냥... 사람답게?
바쁜 척 힘든 척 어려운 척 잘나가는 척 모자란 척 불행한 척 행복에 겨운 척... 척척박사인 척 말고.
그냥. 나 답게. 살려고.
'플레이팅의 중요성' 정도로 정리될 김소희 셰프의 독설짤은 내게 희한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시작은 거대한 양푼이 그릇에 밥을 먹지 말고 '그릇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먹을 것을 제대로 담아 먹자'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날짜와 시간, 싱크대와 찬장을 정리할 요일, 냉장고를 한번씩 비우는 날짜, 1주일에 한 번 장보는 시간을 정하게 되었다. 아침 식단과 저녁 식단이 정해졌고, 일주일에 먹을 육류의 양과 종류도, 각각의 반찬과 요리를 담을 그릇의 종류도 정해졌다. 한달 식비로 쓸 알맞은 금액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나는 내가 음료를 마실 때 입에 닿는 컵의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을 선호하는지 알게 되었다. 찬 음료와 뜨거운 음료, 아메리카노와 라떼, 차와 우유, 그냥 물. 모두 담아서 먹는 컵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러니까,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에서 컵이나 식기는 여러 종류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컵과 식기는 딱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 한다.
들은 얘기로, 와인의 종류마다 담아서 마시는 잔의 종류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입에 닿는 컵의 두께, 지름의 차이, 깊이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와인의 종류에 따라 어떤 잔이 더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고급스런 취향이나 여유부리는 허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닌 것에 관해서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지닌 것들이 나를 말해준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내 통제나 설명 아래 있는 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아닐까. 그렇게 자기를 존중하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나면 남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겠지.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말마따나 '각자도생' '무간지옥'이라지만, 말이야 바른말, 지금이 무슨 전쟁시대도 아니고 말이다.
'필요에 의한 당위'라는, 전 지구적 미니멀리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경쟁에서의 비교우위를 판가름하는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아니라, 소박하게 자족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여유로 구제활동에 임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릇을 버린 썰로 이딴 소리까지 지껄이는 글이니 실로 나비효과.
덧1_아쉬탕가
퇴원 후 두달이 지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더 이상 공포체험이 아니게 된 이후, 정통 아쉬탕가 요가를 가르치는 요가원에서 재활요가를 했다. 처음엔 무릎꿇고 앉는 것도 힘들었는데, 시간을 들여 끈질기게 시키는 대로 해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작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먹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우쳤다. 여유는 내보려고 하면 난다거나 힘은 내면 난다는 생각에 더해, 하려다 보면, 참기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다보면 어느새 된다는 걸 확인한 것이 매우 중요했다. 한 자세를 십분 넘게 유지하며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수업 시작 때 보다 훨씬 유연해진 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 성씨도 배씨... 이 글의 출연자들은 오늘 이 글을 위해 모두 성씨를 통일한 건가.)
10회의 재활 수업이 끝난 후,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요가매트와 밸런틱(요가할 때 쓰는, 지압봉처럼 생긴 나무스틱)을 샀다. 물건이 늘었다는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니고...(왜 변명하고 있지?) 몸이 어떤 상태일 때 어떤 걸 하면 어디가 어떻게 개선되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내겐 엄청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지압 마사지나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의 동작들이지만,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퀀스에 나오는 동작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지금도 한번씩, 스트레칭을 하거나 밸런틱으로 마사지를 하면, 한시간은 금방 간다. (물론 죽을만큼 아프거나 땀이 육수처럼 쏟아질 각오를 해야하지만.)
덧2_음식 명상
요가 얘기를 굳이 하는 것은, 그 재활요가 수업 중 가장 인상적이던 순간을 굳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가 되는 '먹는 것'과 연관된 이야기다. 흔히 '먹기 명상' 또는 '음식 명상' 이라는 것을 했을 때의 경험이다.
방법은 이렇다. 손에 들린 음식을 바라보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것에만 집중한다. 다른 생각을 버리고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유심히 살펴보고 촉감을 느끼고 식감을 느끼고 몸에 흡수되는 것을 느끼고, 지금 눈 앞에 존재하는 음식물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 그것이 내 몸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지금, 여기, 음식에만 집중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의 경우, 바나나 하나를 그렇게 먹었다. 선생님은 내게 '먹기 명상'이 끝나면 알려달라며 방을 나갔다. 개인 수업이라 나 혼자 은은히 바람이 부는 방 한켠에 등을 기대 정좌했다. 바나나를 보고 생각을 멈추고 지금에 집중하며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한입씩 먹었다. 최대한 조그맣게 베어물어 보았다. 그 와중에, 잘린 단면의 생긴 모양, 질감, 섬유조직의 모양, 씹히는 맛 등등을 곱씹으며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 노력해보았다. 어느 순간 입에 한입 베어물고 꼭꼭 씹는데 웃음이 터져나왔다. 소리내 웃는 웃음이 아니라, 아래서 차올라 슬슬 넘쳐서 흐르는 것 같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쉽게 말해 실성한 듯 실실 쪼갠다?)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뭐가 그렇게 흡족한 지 바나나를 원자단위로 분해라도 할 듯 바라보면서 혀에서부터 위장까지 3D 그래픽이 홀로그램으로 펼쳐지기라도 하는 듯 눈앞에서 바나나가 내 몸에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이 다시 오지 않으니 아직 수업 끝날 시간이 덜 되었겠거니. 일단 흐름을 끊지 말자. 다시 바나나에 집중.
아무튼 그렇게, 뭐 단순히 말하자면 바나나를 꼭꼭 씹어먹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배가 너무 불러 마지막 한 입 정도는 먹지 못하고 남겼다. 마저 먹고 내려갈까 하다가, 급하게 입에 넣어 삼키기는 싫어 남은 것을 그대로 접시 위에 두고 방을 나섰다. 아래층 로비로 내려가는데 계단을 오르는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다시 로비층으로 앞장 서 내려갔다. 나도 로비층으로 따라내려갔다. 다른 수업을 들으러 일찍 온 회원 두어 분, 카운터의 코디 선생님도 한 분 계셨다. 다들 흥미롭게 쳐다보는 듯 했다. 뭐, 혼자 수업을 듣는 남자 회원이 그리 많지 않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나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나를 말없이 한참 보더니, (내가 혼자 방에서 짓던 흡족한 표정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떠셨어요?" 라고 물었다. "생각보다 집중이 되던데요. 그리고 이상하게 배가 너무 불러서, 사실 먹다가 조금 남겼어요." 선생님은 놀라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업 시간 90분인데, 지금 30분 오버된 거 모르셨죠? 주무시나 해서 올라가보려던 거에요." 평소처럼 수업 시작 후 스트레칭 30분 정도. 음식 명상에 대한 설명 조금. 일주일간 있었던 일 얘기 등등. 아마 그 시간을 다 합치면 4-50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최소한 한시간은 훌쩍 넘게 바나나 하나를 들고 앉아 먹고 있었던 게다.
난 진지했다. 선생님도 진지했다. 그 효과도 진지하게 말하지만 놀랄 노자였다. 내가 정말이지 꽤나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던지, 요가원 블로그엔 내가 그때 한 재활수업일지가 올라가 있다. 나는 요즘도 한번씩 뭔가 아니다 싶은 시기가 오면 바나나를 사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요즘은 하나를 5분에 걸쳐 먹는 것도 버겁...)
덧3_개별적용 비법 레시피
당연하지만, 그 뒤로 완벽한 식습관이 언제나 유지된 건 아니다. 하지만, 뭐에 집중하면 되는지 정도는 알 것 같다.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은 꽤 든든한 일이다. 허리가 어느 정도 뻐근하면 내가 근래 어떤 자세였는지, 잠에 잘 들지 못하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윗배가 더부룩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위가 아프면 다음 식사를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하는지, 마음이 분주해지면 몇시에 일어나 어디를 걸어야 하는지, 어떤 컵에 뭘 따라 마시고 무슨 향을 켜놓으면 내 맘이 어떻게 될지 아는 것.
그러니까, 이건 다 도대체 나는 어떤 인간인지 조금 더 알기 위한 짓인게다.
덧4_다음 과제
식기를 비우고 간소하지만 신경 쓴 요리를 직접 해서 기분 좋게 먹고, 먹고 난 뒤엔 걷고, 요가로 재활을 하고, 스트레칭에 습관을 들이면서, 96kg이던 몸무게는 세 달 뒤 88kg이 되었다. 조심스레 츄리닝과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벗고, 벨트와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어보았다. 구두를 신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당연한 수순으로, 옷장에 걸린 옷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은 도대체 다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