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면서, 궁극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수많은 선배 미니멀리스트들의 반짝이고 텅 빈 공간들을 염탐하다 보면, 나는 그냥 잡동사니를 좀 줄인 1인가구인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직도 물건이 많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변명해본다. 그 마음의 변화 중 남에게 공감받기 가장 쉬운 예는 아마 '먼지를 다소 싫어하게 됌'일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우드블라인드나 싱크대나 화장실 타일을 박박 닦는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더러운 건 여전히 더럽다. 그래도 더 말할 수 있는 눈에 띄는 변화라면, 정리정돈. 사용 중이지 않은 물건은 보관되어야 할 제 위치에 곧바로 돌려놓는 것에 관해서라면 자랑스레 말할 수 있다. 멀티탭에 꽂은 전자기기의 충전케이블도 내가 정한 순서를 바꾸지 않으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태를 위해서 추가로 필요한 물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큰 방의 구조를 또 다시 바꾸고 또 다시 물건 몇 개를 비웠다. 그러면서, 바닥에 펼쳐져 있는 요가매트와, 방 구석에 3단으로 접힌 두꺼운 요와 이부자리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아주 웃기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소비를 위해 반년을 고심했고, 지금 여기서 당당히 밝힌다. (뭘 또 당당하기까지 할라 그래.)
나는 다이슨 옴니 글라이드 무선 진공청소기를 체크카드로 사서 들고 왔다. 이마트에서 주차정산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얼마인지 알고 무게가 얼마인지도 알고 있었다. 주차하고 내려서 걸어가서 그걸 사고 다시 주차장에 오는데까지 12분 쯤 걸렸다.
그리고, 프로젝트 슬립이라는 브랜드에서 철제 프레임과 라텍스를 샀다. 태어나 처음으로 네이버 쇼핑 라이브라는 것을 실시간 시청하며 20프로 할인과 라텍스 베개까지 사은품으로 받았다. 나는 그 라텍스 베개의 가격과 만약 그 베개가 공짜로 주어진다면 쓸 용도를 알고 있었다. (지금 앉은 자리, 의자 등받이와 내 허리 사이를 받치고 있다.) 프레임과 매트리스의 가격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여러 단계의 제품들 중 얼마짜리가 적당한지 반년 전부터 정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사지 않고 있다가, 다이슨이 입주함과 동시에 사야겠다 맘 먹었는데, 왠 걸, 할인까지 하고, 선착순으로 그 베개마저 사은품으로 준다는 게다. 그래서 질렀다.
요가매트와 접어둔 이부자리가 맘에 걸렸다는 건 알겠고, 그런데 침대와 무선청소기를 산 건 왜 때문인데?!
이유는 앞서 말한 바 있다. 나는 먼지가 싫다. 그런데 내 10년 넘은 유선 청소기는 모터가 죽어간다. 차라리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물론, 내겐 이쁜 빗자루와 쓰레받이 세트도 있다. 그럼 걍 다이슨 사고 싶었단 거자나! 아니다,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사야만 했던 것이다. 다이슨의 V 뒤에 숫자가 붙는 대표적인 시리즈에 비하면 60-70%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옴니 글라이드를 사는 것은 합당하다 여겼기에 산 것이다. 내겐, 매일 매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그리고 그렇게 눈 앞에 보이면서도 미관을 해치지 않는, 가볍고 무선이면서 흡입력도 세고, 앞에 붙은 브러시를 쉽게 탈착해서 러그든 맨바닥이든 요가매트든 상황에 맞게 갈아끼고 즉시 청소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너무 비싸진 않은 진공청소기가 필요했다. 그게 있다면,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먼지가 눈에 보이는 족족,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곤도 마리에의 말에 따르면 '설레임에 몸부림치며', 청소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럼 침대는? 바닥에 깔고 자는 요는, 바닥에 닿는 부분을 번갈아가며 뒤집고 접어두어도, 먼지가 들러붙는 표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불을 접어두면 펼칠 때마다 꿉꿉함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행위, 그것으로 내 하루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나의 가장 첫 루틴, '이부자리 정리'가, 할 때마다 찝찝했다. 다시 침대를 사야하나 생각했지만, 근 1년 간 그 생각을 하면서도, 내 허리 걱정을 하느라 시간만 갔다. 그러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라텍스 매트리스 매장에서 모든 침대에 누워보았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기준 뿐이었다.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지, 그리고 그래서 누워서 뒤척일 때 움찔하게 되는지, 누웠다 일어날 때 나만 아는 그 위험천만한 감각이 느껴지는지.
놀랍게도, 라텍스 매트리스 중 그 어느 것도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살이 빠지기도 했고, 조금은 건강해진 탓이라 짐작했다. 뻐근하면 스트레칭을 하면 된다. 라텍스가 나에게 위험한 물건은 아니다. 내게 라텍스가 위험했을 때엔, 그 어떤 것도 내게 안전하지 않았던 게다.
그렇다면, 적당한 가격의 괜찮은 라텍스 매트리스를 찾아보면 될 일이었다. 프로젝트 슬립은, 원가절감을 이루면서도 품질은 괜찮은, 서울시에서 지원받은 기업의 제품이다. 양면이라 한 쪽은 소프트, 한 쪽은 하드한 재질인 것도 유용하다. 프레임은 바닥에 그냥 둘 수 있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리가 있는 프레임이어야 했다. 그래야, 그 아래, 방 바닥을 매일 청소할 수 있다. 침대 아래 쪽엔, 공간을 활용한답시고 물건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내 목적은 먼지와의 전쟁이므로.
침대가 들어섰다. 요가매트는 여전히, 아니 이제 더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나는 혹시 모를 나의 허리에 일어날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금까지보다 더 스트레칭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오히려 기다리던 바다. 나는 억지로라도 스트레칭을 더 자주 하고 싶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내게는 매우 말이 되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요가매트를 말아서 벽 한 켠에 기대두는 것보다 항상 펼쳐두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매트 위에 온갖 먼지가 들러붙는 것을 매일 눈으로 확인해야했던 것이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가시나? 물건 산 걸 길게도 변명한다 싶겠지만, 아니다.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다. (구질구질하네...)
하여, 나는 다이슨과 침대를 질렀고, 그 이후로 매일 몇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요가 매트는 항상 어떤 먼지나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유지된다. 빗자루와 쓰레받이, 그리고 먼지제거용 롤러 테입이 있을 때, 좀 더 부지런히 청소를 했으면 되지 않았겠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몸을 움직이며 내 손으로 청소하는 것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적도 있다. 이불도 팡팡 털어 잘 펼쳐두었다가 잘 수납하면 되지 않냐, 또, 깔고 자는 요도 매일 펼쳐서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다시 접어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미니멀리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을 통해, 마음의 미니멀라이프를 지키려 한 결과다. 나는, 그냥 쉽게 자주 청소하고, 요가 매트 위에 내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자리를 잡는 환경을 위해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목표에서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찾아보는 것 정도가 최선이라고 단도리 지었다.
그러자, 다이어리나 메모장에 써놓은 청소기나 침대에 관한 메모나 링크, 매 달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 무엇보다 방 바닥의 먼지, 이불의 눅눅함이 해소되고 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더 자주 한다.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나면, 일반적으로, '가능하다면 셀프로 할 수 있는 환경', 혹은 다음에도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누군가를 불러서, 아니면 돈을 써서, 아니면 무언가를 사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의 효과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한 번의 소비로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 때마다 소비나 외주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재활용이나, DIY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집의 전등이 나가거나 화장실 벽걸이 선반이 떨어졌거나, 자전거 페달이 부서졌거나, 버릴지 리폼을 해서 다른 용도로 쓸지 고민이 되는 의자를 분해해본다거나, 그런 식으로 생겨난 자투리 원목으로 새로 선반을 설치하고 싶을 때, 내가 그걸 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가정용 로터리 전동 해머드릴, 목공용 핸드드릴, 임팩트 드릴, 육각 렌치 세트 따위가 새로 입주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의 연장선상이다. 이미 본전은 뽑았다. 그걸로 고친 것도, 만든 것도 꽤 있다.
하나의 물건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창의적 방법을 찾는 것도 익숙해진다. 용도가 확실한, 자주 사용하는 믿음직한 물건을,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내가 지닌 물건들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물건의 가성비를 따지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독서대를 노트북 거치대로도 쓰거나, 다 쓴 캔들 유리병을 잘 닦아 면봉 통이나 필통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품으로의 관심도 자연스럽다. 이왕이면 친환경인 것에도 눈이 간다. 얼마전, 드립커피 용 종이필터도 다회용으로 바꾸었다. 천연수세미로 왠만하면 세재를 쓰지 않고 설거지를 한다.
그러다, 내가 직접해 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던 것들에, 예전보다는 좀 더 쉽게 도전하게 된다. 실패에 느끼는 부담도 줄어든다. 이를테면, 바리깡을 사서 머리를 직접 잘라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 '지지리 궁상'으로 보여지거나,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여 겉으론 전혀 궁상맞지 않지만, 내 안에선 그 환경을 유지시키기 위해 '심적으로 지지리 궁상맞은' 상태에 처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강박이 생기게 된다. 강박적으로라도, 어찌되었건 목표한 바를 잘 수행하고 있을 때엔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버거워지면, 딱 하나의 감정으로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
죄책감. 그걸 해내지 못하고 있고 미뤄두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둠으로써 생겨나는 죄책감.
그런 감정을 계속 지니고 있는 것과, 그냥 내가 감당하기 버거워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중에 뭐가 나은지는 뻔한 답이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서 후자를 선택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비나 지출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 시간을 확인해본다. 죄책감과 부담을 덜려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등, (사실은 마음을 먹고 하면 되는 것인데 도무지 되지가 않을 때, 우린 다른 방법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러는데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본다. 몇 달에 걸쳐, 문득문득 올라오는 생각들과 감정들.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된 영역들. 몇 달이 지나고 있다면, 그건 그냥 내가 그럴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럴 때, 아웃소싱한다.
나에게는 죽어도 귀찮은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 살고는 있는데, 그러면서 속으로 계속 죽도록 나를 욕할 것이냐? 빗자루질 말이다, 이 인간아! 아니, 그냥 무선청소기를 사서 매일 청소할래.
모든 일을 직접 할 수 있게 되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도전 자체를 즐기는 것과, 빠르게 인정하고 역량을 집중하는 것 중에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인 사업자가 세무사에게 의뢰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복식부기마저 작성할 수 있는 것 중에, 뭐가 맞는지 따져보는 일과 비슷하다. 회사 대표가 에어컨 실외기까지 고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그럴 일인가. 오히려 그게 무엇인가를 회피하는 것일수도 있다. '열심히', '쉬지 않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무언가를 계속 하는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잠 안자고, 살 빠져가며, 수액을 맞아가며 모든 것에 실수하지 않으려 꼼꼼히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스탠스를 지닌 이들과 일하는 것이나 내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피한다. 모든 것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다 쏟아붇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마치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과 같다. 할 것만 하면 된다.
그러니, 내가 빗자루로 잘 안 쓸리는 러그에 낀 머리카락을 맹렬하게 쓸다가, 다시 엎드려서 스카치 테잎으로 그걸 떼낼 필요 없다. 초강력 버튼을 누르고, 러그 전용 브러시로 한 번 밀고 치워라. 다이슨에 진 기분 따위 느끼지 마라. 다이슨에게 이길 필요 없고, 넌 못 이긴다. 그리고 그 다이슨은 니 꺼다. 너 도우려고 온 애랑 싸우지 마라.
어쩌면, 그래서 아웃소싱은 미니멀라이프의 중요한 한 태도로 보이기도 한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지금 맞은 게 그 때 틀릴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머리를 직접 자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미장원에 가는게 편하기도 하다. 머릴 스스로 자르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 사회적 인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 유튜브로 셀프 이발을 찾아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뭐든 의식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뭐가 중요한지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해라.'
'버리고 남은 것을 더 중요하게 다뤄라.'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 깜냥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책을 버리고 나면,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더 자주 빌려 읽는 것처럼, 내가 못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 즉, 한계를 인정하면 의지와 역량이 강화된다. 도움을 잘 받게 된다. 겸허해진다. 남도 돕게 된다. 아프면 병원에 가듯, 모든 것을 직접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게 그렇더라고 남에게 말해줄 수도 있게 된다.
혼자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때때로 도수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그네슘을 사 먹고,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기도 하고, 그 전에 바나나와 견과류를 먹으며 자가 치유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산책과 명상도 하고, 때로 상담도 받는다.
‘반드시 이래야 한다’거나 ‘그런 모습의 나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
혹은 단지 '그런 나'이고 싶어 뭔가 시도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중요한 건, 아웃소싱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해보자는 마음을 더 자주 갖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둘은 양립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