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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쓰기. 그 중 '일단 쓰기'의 경우.

feat. 불렛저널 / 아티스트 웨이

by cpt

사례 연구


부록, 혹은 덤으로 짧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먼저, 시행착오 사례.


이름하여, <영혼의 방들을 위한 미장센, 2019>

(아래에, 2019년도의 다이어리 219~220p에 적어놓은 것을 그대로 옮긴다. 진지하게 읽을 필요 전혀 없다. 그냥 대충 건성으로 읽고 지나가길 권한다.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걱정 마시라. 알아듣는 게 더 이상하다.)


< 영혼의 방들을 위한 미쟝센 >

(메모를 따로 하고, 이 페이지에는 확정된 개념만을 기재할 것)


공간은 세밀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각 공간과 거기에 놓인 물건은 창조하고자 하는 영역별로 나뉜다.

놓여질 물건에 대한 기준은, 시각적 자극의 요구와 접근성에 따른다.

ex) 집필 / 명상 / 인풋 / 아웃풋 / 인풋과 아웃풋의 경계 (gray zone) / 고립 후 훈련 -> '아웃풋'에 쪽에 어울림 / 느슨한 접촉과 휴식 -> '인풋' or '경계' 영역에 어울림


- 책상 위에는 의도적 여백이 있어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만약 가능하다면 텅 빈 것이 좋다.


- 모든 공간은, 올바른 자세 유지를 위한 최선의 지원을 기본으로 한다.


- 같은 기능과 용도의 물건, 소품이라 할지라도, 각 공간에 어울리는 일관된 군으로 구별한다.


- 그 기준은 항상 새로이 감각하여 스스로 예리하게 만들고, 반드시 스스로를 논리로 설명시켜 납득시킨 후 배치한다.


- 이동 가능한 물건들은 (쿠션, 트레이 등) 사용 후, '고정 스팟'에 안착시킨다.

-> 시작적 자극 요소를 배치하기 위함 + 불필요한 자극을 배제하기 위함

-> 사용을 위해 가지고 오는 과정을 제의적 루틴으로 정착시키고 재미로 즐길 것. (의식화 / 양식화 할 것)


- 모든 동선과 행위는 구분되며, 섞이지 않는다.


- 동선과 행위가 섞일 경우, 행위 완료 후 다시 구분 짓는다.


ex) 침실에서 TV를 볼 경우 -> 침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쿠션을 괘고 or 빈 백에 기대어

노트북을 책상 이외의 곳으로 옮겨가 유튜브나 영화를 볼 경우, 외부로 가지고 갈 경우,

-> 이때, 전원 케이블은 이동시키지 않는다.

-> 몇 시간 이내로 행위를 한정하고, 그 시간에 집중하려는 의도.



'작업실'

- 같은 수납 선반, 행거, 걸이, 찻잔 등이라 할지라도, diy를 통해 뭔가 창조적 개입을 한 것들만 둔다.

- 이 공간은, 물건의 완성도보다, 직접 만들거나 구성한 물건이 더 어울린다.

- 까페나 도서관 같은 개념 -> 인풋과 아웃풋의 경계 (gray zone)

- 책상, 테이블은 비어 있고, 시간을 들여 빌린 임시의 공터, but, 주변은 풍경, 사람, 소리, 소품, 잡지, 우연한 사건 등으로 둘러싸여 '자극'이 존재한다. (시청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 '촉각' : 부드럽다, 매끄럽다 등 보다는 느껴질 때의 '재미'에 집중해서 생각해볼 것

- 그리고, '자극'과의 거리 유지 필요

-> 시선의 정면 쪽은 비워두고, 양 옆이나 후경,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에 '자극'을 주는 요소를 배치할 것.


'아웃풋 책상'

- 자세 유지를 위한 최상의 의자

- 정면은 비워둘 것

- 선별한 문구 (종류별로 하나 씩만)와 소품 만을 배치 -> 단일 품목이 절대 여러 개가 있으면 안 된다. 사용할 때마다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삭제할 것.

- 일기, 저널 등을 쓰는 공간과, 네러티브가 있는 것을 집필하는 공간을 분리

- 공상, 아이디어 발상 및 인풋 공간과도 분리할 것


'기능적 인풋 공간'

- 흥미와 휴식을 위한 인풋 공간 / gray zone과 공간 공유 -> 이때, 완성도 높은 물건과 촉감, 재미요소를 섞을 것

ex) 빈 백, 좌식 테이블, 소품, 현재 읽는 소설 + 공부하는 책, 에세이, 구독하는 잡지

만약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화집은 이 공간에서 보고, 그림은 아웃풋 공간에서 그린다.

하지만 집필 공간이, 하얀 벽의 텅빈 곳이라면, 그림, 낙서, 수기로 쓴 메모 등은 저널과 일기를 쓰는 공간에서.


- 좋아하는 브랜드의 완성도 높은 물건(무인양품? 마리메꼬?) -> 아웃풋 공간 혹은 온전한 휴식공간에만 배치

- 새로 생긴 마음에 드는 물건, 혹은 완성도는 떨어지나 애착하는 물건 -> 그레이존 혹은 인풋 공간에 두어 의도적 자극요소로 기능하게 한다.

- 책들의 배치도 이 기준에 맞출 수 있다.


'비움'의 맥락

- 여백 -> 창조 -> 집중


'꽉참'의 맥락

- 균형, 규칙, 배치의 일관성 -> 기능적 공간

- 다양함, 불규칙, 다양한 색, 개조한 물건 -> 자극 공간

'완성도'의 공간

- 최상의 것 / 불필요한 자극으로 머리를 깨우는 것이 아닌, 무자극의 공간

- 선별된 오브제 -> 휴식 + 집중에 유리


('routine & habit' 페이지에 정리한 일정이 어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지 기재해 둘 것.)


저 메모를 요약하자면, 인풋과 아웃풋에 대한 엄격한 구분, 아웃풋에 필요한 자극과 인풋의 퀄리티, 공간이 돕는 집중력, 그에 따른, 공간에 어울리는 색깔과 물건의 분류 등이라 할 수 있겠다. 옮겨 적으면서도 아찔하다. 다행히 지금은 저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살지 않는다.


저 메모가 시행착오라고 말한 이유는, 지금의 나는, 인풋과 아웃풋, 혹은 모든 행위와 맥락을 칼로 두부 썰 듯 완벽하게 구분해내는 것, 그리고 각 행위에 필수적으로 정해져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만들어낸) 온갖 순서를 따르는 것에서 더이상 의미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인풋과 아웃풋은 따로 있지 않다. 인풋과 아웃풋, 그리고 그에 필요한 자극과 영감의 통로를 세밀하게 나누어두고, 내 안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기가 막힌 창의력이라는 놈을 깨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조심스레 다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창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이상 인풋과 아웃풋이 구분되지 않게 된 이유는, '쓰기'라는 행위에, 굳이 필요없는 쓸데없는 가치와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아무렇게나 그 자리에서 그냥 해버려도 되는 것이라 여기면, 오히려 더 자주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럴수록 능숙해지고, 능숙해지면 자극에 더 민감해지고, 더 민감해지면 더 쉽게 더 자주 행하게 된다. '쓰기' 대신 '그림 그리기'라는 단어를 바꿔넣어도 마찬가지다. '활쏘기'를 넣어도 똑같을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 중에, 자주 쓰고 가장 아끼는 물건을 하나만 남기는 짓을 자주 하다보면, 이걸 깨닫게 된다. 방금 쓴 문장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뭘 깨닫냐면,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물건이다." 이상하고 놀랍지 않나? 아낀다는 건,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다. 무균실에 방수포장을 해두고 조명을 비춰놓는 게 아니란 거다. 믿고 막 쓸 수 있는, 그만큼 강인하고 튼튼하고 쓰기 편리하고 이미 나를 잘 알아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물건을 우리는 좋아한다.


왜, 나의 창의력, 나의 잠재력에는 이런 대우를 해주지 않나. 나를 못 믿나? 못 믿는 건 아끼는 게 아니다.


두 번째 사례.

이건 다행히 반면교사가 아니라 나름의 팁이다.


첫 번째 팁.

책의 귀퉁이를 잔뜩 접어 둔, 저명하고도 훌륭한 몇몇 책, 그 책들의 내용이 참 좋고 언젠가 또 읽을 것만 같아 버리기 아깝다면, 제발 그 생각이 드는 바로 그 때, 혹은 그 날 저녁에 시간을 내서, 아니면 새벽에 커피를 한 사발 마시고, 그 책을 당장 다시 읽고 자신의 글로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버거우면 해당 페이지를 메모하거나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팔아라. (참고로 말하자면, 핸드폰으로 찍어둔 페이지는, 며칠 내로 그 사진을 보며 다시 정리하지 않는 한 평생 다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페이지를 메모해 둔 것은 조금 낫다. 언젠가 다시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 읽을 때 그것이 유용할 때가 있다. 그보단 당연히 자신의 글로 요약해두는 것이 훨씬 낫다.)


완벽주의로 인한 기우 때문에, 그러니까, 행여 부족한 나의 역량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부족한 상태로 그 책을 스스로 요약정리하는 것으로는 그 책의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우리는 그 책을 애지중지하는 척 그대로 방치한다. 책을 읽긴 읽었는데, 사실 읽은 것이 남진 않고 책등에 먼지만 쌓이는 것을, 우리는 지식의 보고에 역사가 더해진다고 여긴다.

두 번째 팁.

애착이 깃든 책부터 버리기!

내가 신나게 책을 캐리어에 담아가서 현금으로 바꿔오는 것에 재미를 붙인 때였다. 나에게 제동을 거는 나의 영혼의 단짝들만이 남았다. 한정판 '크로우즈', '슬램덩크' 완전판, '킬링조크', '창천항로'와 '대부', '대부' 영문판, '대부' 시나리오 & 제작노트, 트뤼포가 쓴 '히치콕과의 대화',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삼국지', '삼국지 강의', '정사 삼국지'... (징하네.)


얘들은 버리기 아깝다고 하니 Y가 말했다.

"버리는 게 아니라 파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그 말이잖아."

"파는 건, 누가 읽게 될 거란 거야. 자기가 좋아한 책을 남이 좀 보라고 내놓지 그래?"

"그래도 아깝다고."

"내용이 기억이 안나?"

"그건 아니지만..."

"여태 판 책들 통틀어서, 제일 내용을 잘 알고 대사도 다 외울 책들만 남은 거 같은데?"

"사실, 내가 그걸 지니고 있다...고 매일 눈으로 보면서 확인하는 걸 못하는 게 아쉬운 거 같아."

"이미 저 책들이야말로, 굳이 진열해놓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고 덧붙여 말해도 되지 않을만큼 뼛 속까지 새겨진 책들 같은데?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자기 책장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책들이 있다면 저 책들 같은데?"

"그러니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래, 그러니깐 이제 필요가 없지. 저걸로 증명할 게 더 이상 남지가 않아 보이는데, 내 눈엔?"


Y의 말 그대로다. 나는 저 책들의 내용을 내가 다시 요약해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책들이야말로 가지고 있으며 이따금 펼쳐볼 필요가 전혀 없을만큼 이미 내재화 된 것들인 게다. 그러니, 저 책들은, 저 책들이 없어도 이미 내 책이 되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먹고 소화시키기 위한 것이란 말일까?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 쌓아만 두는 것은, 냉장고에 가득, 이쁘고 먹음직하고 몸에 좋다는 모든 식재료를 사다 쌓아놓다가, 공간이 모자라면 냉장고를 하나 더 사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해서 먹어야 한다.


'책 버리기' 챕터에 썼어야 할 것 같은 이 내용을 왜 여기에 쓰는 걸까?

그건, 이 글이 '책 버리기'보다 '쓰기'에 방점이 찍히는 내용이라 그렇다.



튜터


지난 몇 년간, 내게 영향을 준 수많은 책, 사람, 경험, 생각, 상황 등이 있을 것이다. 이 중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 두 가지를 소개함으로써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것으로, 그 제안이야말로, 이 책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밝히는, 내가 하고픈 마지막 말이다.


여태까지의 글들로, "그깟 짐 정리로 어쩌면 인생을 재활"한 이야기에 여러분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면, 마음이 동한다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이 두 개인교사들이 매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한 명은, 12월 말에 당장 여러분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고, 다른 한 명은 12주 동안 여러분과 순례길에 오를 것이다.


이 두 분이 어떤 분들인지는, 여러분이 각자 뒷조사를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봄이 좋다. 나는 이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연락처만 남겨드리겠다.

첫 번째 교사는 '불렛저널'(bullet journal method)이다.

내 글에 주구장창 나오는 그 놈의 '다이어리'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렛저널' 양식으로 쓴 노트다. 이 메모법에 관한 아이디어는, '불렛저널'이라는 책의 저자가 자신이 다이어리를 쓰던 방법을 몇몇 지인에게 공유하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러니까, 불렛저널이라는 것은, '라이더 캐롤'이라는 작가가 쓴 책의 제목이자, 그가 그 책 안에서 설명하는, 다이어리 혹은 아이디어 메모법을 일컫는 말이다.


각종 sns에 불렛저널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보면, 형형색색의 캘린더 그림이나 캘리그라피들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렛저널의 핵심은 소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로 알려진 이쁜 손글씨가 아니다.

불렛저널의 핵심은, '쓰기'다. 다이어리는 당연히 쓰는 건데 무슨 소릴까? 써놓은 것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행할 수 있게 쓰는 것, 생각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메모하는 법이 중요하다. 바로 해치울 일은 바로 해치울 수 있다고 표시해놓고 하나씩 처리하고, 길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이어리의 날짜들과 상관없이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계속 생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의 생각의 궤적을 그대로 노트에 적어놓는다. 생각이 끊이지 않게 하되, 그 생각에 계속 사로잡히거나 신경이 거슬리는 일 없도록 한 켠에 잘 정리해 둔다. 이것이 불렛저널의 핵심이다. 여태 내가 강조한 것처럼, 불렛저널이라는 책의 내용을 '나의 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생각을 노트에 쓰고, 쓴대로 행동하도록, 나의 생각과 우선순위를 정리한다."


여느 다이어리랑 다를 게 없다거나, 자신은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안다. 우선 '불렛저널'이라는 책을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읽어보시라.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좋다. 책을 다 읽고 내용에 공감한다면, 불렛저널을 쓰기 위한 노트를 사게 될테니.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이 판단할 일. 그러나, 늦어도 내년이 시작될 때부터는, 적어도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글로 써서 정리해보겠다고 다짐해보자. 시작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두 번째 교사는 '아티스트 웨이'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자기계발서의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은, 인터넷은 고사하고 PC도 없던 시절에 쓰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유효하다 못해 강력하다. 말하자면, 수십 년 전의 이 책은 예술하다 몸과 마음이 곪아터진 가난뱅이 젊은이들에게 꿋꿋이 살 길을 터 주었다면, 지금은 삶에 허덕이는 모두에게 창조적인 삶을 살라며 혈관에 건강하고 크리에이티브한 피가 돌게 만들어 준다.

사실 10몇 년 전에 이미 이 책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첫 대학을 같이 다니고 같이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몇 년 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다가, 나의 두 번째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내'가, 내게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이내는, 내가 그 학교에 입학하기 전, 친구들과 함께, 그 학교 정문 앞에서 '다시 까페'라는 곳을 운영하면서, 친구들과 그 책에서 일러준 대로 글도 쓰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바뀌었다며 내게도 추천을 했었는데, 그 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내'는 후에,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 밖에" 라는 책을 냈다. ‘동네가수’ 이내는 앨범도 여럿 냈다. 요즘은 '이내책방' 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이내책방라디오'라는 콘텐츠를 올린다.)


2019년에 무슨 맘이 들었는지, 그 책을 다시 찾아봤다. 책을 샀다. 책을 읽었다. 책에 적힌대로 해보았다. 그리고, 그 책에서 제안한 것 중 하나인 '모닝저널', 달리 말해 아침일기는 아직도 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똑같은 노트를 사서 계속 쓴다. 매일 쓰진 않지만, 쓸 때면 항상 새벽에 일어나 딥펜에 잉크를 찍어 적는다. 그럼 기부니가 무쟈게 조크든여.)


여러분이 할 것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사는 것 뿐이다. 이 책은 빌리지 않고 사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을 진지하게 대한다면, 12주 동안 이 책이 시키는대로 해보아야 하니까. 아티스트가 되지 않아도 된다. 아티스트에게만 필요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나 또한 예술 운운하고 싶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써서, 어떤 방식으로, 나의 무엇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우린 사실 잘 모른다. 나는 그랬다. 누구보다 생각을 멈추지 않고 살아간다 자부했지만, 머리만 복잡해졌다. 그리고, 12주 동안, 이 책은 그걸 해보라고 한다. 아주 솔직하게.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는지, 자신을 얼마나 못미더워 했는지, 확인해보라고 한다.


추천의 말은 이렇게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충분할 듯하다.

결국 이 두 튜터들이, 내가 이 글들을 쓰게 만들었다.



그래서,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


해야 할 일이나 계획, 혹은 일어난 일에 대한 소회를 쓸 때, 우린 우리를 속일 수 없다. 가능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에게 항복해보자. 항복하고 나서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글로 생각을 적으면, 생각이 글씨를 쓰는 속도에 맞춰 달리던 속도를 늦춘다. 내게 아우성치던 말들이 조금씩 조곤조곤 읊조리는 어조로 바뀐다. 그럼 들린다. 내가 하는 말이 들린다. 내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본 적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럼 받아 쓸 준비가 된다. 받아쓰다보면, 할 말이 더 생긴다. 글이 써진다.


나에 대해 생각하기.

보이지 않는 맥락을 찾기.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맥락 안에 안착시키기.

그것을 쓰기.

솔직하게 쓰기.

다시 내게 말 걸기.

화두를 던지고 답하기.


혼자 써서 스스로에게 읽히는 글이니, 나오는대로 쓰면 된다.


만약, 솔직할 수 없다면 쓸 준비가 안 된 걸까?

나만 읽을 것이니 자기검열 없이 쓰자. 말이 쉽지, 사실 처음엔 쉽지 않다.

하지만, 연습하면 된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럼 차츰 어렵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남에게도 말하고 싶어질만큼 생각이 정리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검열 없이 쓴 그 글들이, 남에게 읽히기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뭐 어떤가? 아직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았다. 우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마무리 지으면 될 일이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럼 다시 읽어 본 뒤에 스스로 내용을 고치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의 고유의 기업문화가 요즘 핫하다. 널리 알려진 그들의 '자유와 책임' 문화 중 솔직함에 관한 것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업무 상 행한 치명적인 실수마저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일컫는 그들만의 용어 '선샤이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들의 솔직함에 대한 신조는 이런 것들이다.


"당사자에게 말하지 못할 말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하지 말라.” “절반의 솔직함은 냉소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자신에 관하여 글을 쓰는 중에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쓰는 건 어떤가?

그렇게 쓴 글을 남에게 보여주면, 자신은 그 말에 책임져야하게 된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어떨까?

그럼, 남에게 글이 보여져도 될 준비가 된 것 아닐까?


많은 이들이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 자신을 위한 일종의 선언으로써 글을 쓸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언을 행여 모두 지키지 못해도 상관없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엔 힘이 있을 것이다.

생각이 정리된다면, 삶이 따라올 것이다.

반대로, 남에게 말하려고 남에게 읽히려고 글을 쓰는 행위를 하는 동안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내가 믿던 것,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이 드러난다.


다만, 솔직하라.

할 수 없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라.

그리고, 일단 써보라.


나를 믿어보자.

나아질 용기를 내자.

그런 나에게 기회를 줘 보자.

무언가 창조해낼 수 있는 내게 귀 기울여 보자.


나의 생각을 쓰자. 지금, 일단, 글자로 써 보자.


그럼,

모두들, 굿나잇 &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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