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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끊긴 태풍 속 보라카이, 스쿠버다이빙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것들이 사실은

by cpt

C와의 여행의 결말


몇 년 전, Y가 일하던 베이징에 며칠 갔다 온 것을 제외하고, (물론 그것도 해외여행이긴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는 건 십 년이 넘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칼리보 공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까띠끌란으로 갔다. C와 나는 그곳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보라카이에서 4박 5일 간 머무를 숙소를 C가 미리 예약해놓았다. 배를 타고 잠깐만 가면 보라카이였다. C는 내게, 마치, 첫 유럽여행 때 내게 계획을 묻던 친구처럼, 보라카이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 대답했던 것처럼, 깨끗한 물 속에서 스쿠버다이빙, 숙소 앞 해변에서 맥주와 담배, 그것 말곤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C는, 할 것과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며, 자기가 알아본 액티비티, 가볼 곳, 먹을 것 등등을 신나게 말했다. 난, 좋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자고 했다. 사실 나도 신이 났다. C가 그렇게 오래 살았던 라오스에 한 번 가보지 않았었는데, 우리 둘은 보라카이 바로 앞에 있었다.



판폰과 빅터


판폰은, 2019년에 필리핀 전역을 강타한 어마어마한 태풍이다. 우린 까띠끌란에서 보라카이로 가는 배를 6시간을 기다렸다. 배는 뜨지 않았다. 여행사를 끼고 온 단체손님들이나, 이미 동남아를 죄다 돌다가 보라카이에 잠시 들른 것으로 보이는 배낭여행객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이리저리 연락을 해서 다른 숙소들을 구하고 있었다. 우린 파란 하늘과 미풍이 부는 날씨를 보며, 곧 배가 뜰 것이라 믿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미 수백 명이 넘었다. 까띠끌란의 부두엔 여행객들이 속속 도착해서 가득 찼다. 저녁 6시쯤, 항구가 폐쇄되었다.


그제서야, 아직 숙소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캐리어와 짐을 끌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린 느긋했다. 왜 그랬을까? 하루 호텔값이 날라간 것이 좀 아쉬웠지만, 숙소를 금방 구할 줄 알았다. 숙소는 없었다. 꽉 찼다. 아주 허름한 곳부터 아주 비싼 곳까지, 모두 다. 다른 관광객들 중에도 우리처럼 방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헤매고 있었다. 해는 금방 졌고, 가로등은 어두웠고 차와 오토바이는 쌩쌩 달렸다. 이리저리 물어보니 차를 타고 인근의 다른 도시나 동네로 가면 구할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툭툭이(바퀴 셋 달린 오토바이) 운전수가 우릴 데리고 숙소 몇 군데를 순회했다. 결국 못 구했다. 자기가 아는 곳에 가자고 했다. 흥정을 했다. 싼 값에 넓고 빈 방이 있다고 했다.


툭툭이 운전수가 사는 동네인 것 같았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툭툭이 시동이 꺼졌다. 우리는 내려서 툭툭이를 같이 밀면서 걸어 올라갔다. 짓다가 만 건물이 보였다. (진짜다. 짓다가 말았는데, 1층엔 가족이 살았다. 2,3층이 모두 비어 있었고, 창문 자리엔 샤시가 없이 네모 난 구멍만 뚫려있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선풍기가 있냐니까 꼬맹이가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내 줬다. 배가 고팠다. 동네 슈퍼로 갔다. 관광객은 우리 뿐이었다. 동네에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있었다. 우린 컵라면과 콜라, 맥주를 사서 다시 숙소로 걸어왔다. 전기 포트가 없었다. 또 어디선가 꺼내서 주었다. 우린 컵라면을 먹고 콜라와 맥주를 마시고, 선풍기를 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태풍이 오긴 온 모양이었다. 첫 날은 그렇게 갔다.

두 번째날, 필리핀 전역에 비가 왔다. 보라카이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숙소에 더 있을 수도 없었다. 까띠끌란에는 방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우린 칼리보로 가보기로 했다.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는데, 동네 남자 애가 우릴 항구까지 데려다주었고, 거기서 택시 기사를 소개해 주었다. 마침, 집이 칼리보라서 집으로 향하는 필리핀 현지인과 그를 태운 택시 기사가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택시 기사의 이름은 빅터였고, C가 일하던 코이카와 함께 일한 적도 있고, 까띠끌란과 칼리보를 잇는 길 위의 모든 가게의 사람들과 다 친분이 있었다. (내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와 빅터와 또 다른 필리핀 손님이 꼬박 하루를 더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칼리보에 금방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거긴 여기보다 큰 동네니까 방도 있겠지. 그런데, 필리핀 전역의 통신망이 먹통이 되었다. 핸드폰과 와이파이가 모두 죽었다. 왜 그 지경이 되었을지 궁금해 할 필요도 없었다. 칼리보로 가는 도로의 가로수와 전신주가 쓰러졌고, 언덕에서 내 몸 만한 돌들이 굴러내려왔다. 길 위의 사람들은 바람이 조금 잦아들면 집 안에서 나와 돌을 치웠다. 전기톱으로 가로수를 자르고 길을 냈다. 하지만 우린 칼리보까지 갈 수 없었다.

그 길 위에서, 차를 휘청이게 만드는 바람을 잠시 피해 체육관 앞에 택시를 세워두고 잠시 쉬는 동안, 눈 앞에서 전신주가 갑자기 쓰러져 축 늘어진 전깃줄에 오토바이가 걸려 사람이 날아가는 걸 보았다. C가 뛰어갔다. C가 그를 들쳐엎고 인근의 집으로 뛰어갔다. 우린 오토바이를 길에서 치웠다. 그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빅터의 친구들이 길을 오가며 길의 상황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빅터는 또한 막힌 길에 쓰러진 가로수를 치웠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그를 도왔다. 우리도 그를 도왔다. 비가 다 새서 진창으로 엉망이 된 마을 사람의 집에서 물을 퍼냈다. 모두가 모두의 담배를 나눠 피웠다. 집주인에게 커피를 얻어마셨다. 칼리보로 가는 길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빅터든 누구든, 아무도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곧, 와이파이 뿐만 아니라 전기도 나갔다.


빅터는 길 위를 오가며 사람들을 돕는 그의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상황들을 물으며, 인근의 아주 작은, 몇 개의 숙소와 학교, 음식점 등이 모인 동네로 향했다. 우리가 어제 보라카이로 가는 항구 앞에서 본 단체여행객들이 숙소에 이미 다 들어차 있었고, 미처 방을 못 구한 이들이 숙소 로비와 폐쇄된 식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학교로 갑자기 트럭들이 계속 오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수백명의 현지인들이 짐을 모두 들고 내려 학교로 들어갔다. 수재민들이었다. 까페테리아가 있는 호텔의 사장님이 빅터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은, 우리가 화장실에서 홀딱 젖은 옷을 갈아입고 씻는 동안 화장실 앞에서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말끔한 모습이 된 우리에게 테이블 하나를 내주었다. 빅터와 나, 그리고 다른 손님(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너무 아쉽다.)은 그 곳에서 다시 한나절을 보냈다. 비는 밤새 계속 쏟아졌다. C가 의자 두개를 붙여주며 누으라고 했다. 그는 바닥에서 잤다.


자고 일어나니, 해가 떴다. 태풍이 지나갔다. 하지만, 와이파이와 통신선, 전기는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빅터와 다른 손님은, 칼리보로 가보겠다고 했다. 그 곳에 가족들이 있으니, 걱정이 되어 지금 출발해야겠다고 했다. 빅터는, 또 다른 그의 친구이자 보라카이 여행 가이드인 누군가에게 우리를 보라카이의 숙소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곧, 와이파이와 전화선이 복구되면, 전화를 걸테니,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갈 때, 빅터가 태워주기로 했다. 우린 빅터와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 공항에 도착해서야 와이파이와 전화선이 복구되었다. 그 전까지, 모든 시스템이 수기로 작성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Y는 4박5일 내내 연락이 되지 않는 내가 걱정이 되어 외교부에 전화을 했다. Y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ATM기도 작동하지 않았고, 환전소도 문을 열지 않았다. 까띠끌란에서, 환전소를 찾아 헤매다, 문 닫은 환전소를 세 군대 쯤 들르고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C가 가진 달러를 가까스로 환전할 수 있었다. 이틀 동안 각지에서 태풍을 피한 관광객들이 다시 항구로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줄을 서서 배를 기다렸다. 보라카이에서 까띠끌란으로 배를 타고 나온 관광객들도 피곤해보였다. 그들은 일정이 다 끝났는데도 이틀을 더 보라카이에 있다 나온 것이었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칼리보 공항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아예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8시간을 대기해야 했다고 했다. 배에 오르자, 불과 10-15분 만에 보라카이에 도착했다.



보라카이


드디어 보라카이에 도착했다. 태풍이 지나고 난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직 전화, 와이파이, 전기는 복구되지 않았다. 길은 진창이었고, 호텔의 카운터에서는, 우리가 예약한 방이 몇 호인지, 며칠부터 며칠까지 예약이 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켤 수 없었다. 직원들이 일일히 방을 확인하고 메모를 건네며 투숙객을 관리해야 했다. 뭐, 그래도 그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도 그랬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길바닥에서 교통사고를 수습하고 나무를 자르고 쓰러진 전신주를 줄로 메서 세우고 돌을 치우고 호텔 로비에서 호텔 사장의 비호 아래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온 보라카이 아닌가. 이쯤이야.


하지만, 자체 발전기를 사용해서 전기를 쓰는 상황이라, 에어컨이 하루 두시간 밖에 켜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살짝 정신이 나갔다. 4박 5일 중 3일 째의 밤, 하지만 보라카이에서의 첫 잠을 자다가 너무 더워 깼을 때부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헛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느냐? 전혀! 누가 보라카이에 가서 그런 나날을 보내고 올 수 있겠나? 그리고, 아직 클라이막스는 오지 않았다.



스쿠버 다이빙


나는 물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보라카이에 도착하기 전, 수영을 몇 달 배우고 있었다. 수영을 잘하고 싶다기 보단, 허리디스크에 좋아 다니는 것이 더 컸다. 하지만, 25미터를 어찌저찌 한 번에 자유형으로 오갈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뿌듯해졌다. 한창 재미가 붙은 목공 수업 때도, 마침 캠핑이나 수영, 서핑, 스쿠버 다이빙 등에 취미가 있는 형, 누나들과 친하게 되어, 이들이 각기 내게 같이 하자며 그들 각자의 취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던 터였다. '서핑이 요즘 그렇게 핫하다던데, 맞아, 영화 '폭풍 속으로'를 보면 키아누 리브스랑 페트릭 스웨이지가 진짜 넘 멋졌지.' 하지만, 서핑을 체험이라도 하려면, 아예 수영을 못 하는 건 곤란할 것 같았다. 물이 너무 무섭지만 않으면, 서핑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목공 수업을 같이 듣는 누님 중 한 명은, 스쿠버 다이빙 경력이 십년이 넘었다고 했다. 마스터라고 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내게 오토캠핑의 매력을 한창 설명하던 형님 한 분은, 다른 건 몰라도, 신혼 여행 때 했던 스쿠버다이빙은 정말 아직도 또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무튼, 그런 스쿠버다이빙이었다. 보라카이에서 딱 하나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거라고 말한 그 스쿠버다이빙. C는 수영을 매우 잘했다. 그는 오히려, 호핑 트립이나 다른 기구를 타거나 하는 것들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한 터였다. 하지만, 착한 C는 내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가장 먼저 스쿠버다이빙을 예약했다. 3일을 그냥 보내버렸으니, 다른 액티비티를 후순위에 놓더라도 스쿠버다이빙만큼은 꼭 해야 되는 것이었다.


수영을 그렇게 잘하는 C도, 기본적인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하는 듯 했다. 오히려 나는 별 느낌없이 짧은 영어로 OK를 연발하며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착용했다. 잠깐동안 발판 위에서 물에 1미터 정도만 들어가서 수신호와 수압에 따라 해야 할 행동수칙을 연습했다. 올라가자, 내려가자, 준비되었다, 위급상황이다 등등의 수신호. 우리와 함께 교육을 받는 일행 중에는 한국에서 온 일가족도 있고, 커플도 있었다. 일가족은 몇 번의 경험이 있는지 자연스러워 보였고, 커플들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마스터는, 그들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마스터가 몸에 붙은 끈을 당겨, 곧장 수면 위까지 떠오르게 해줄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면,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이 정말 맑았다. 가장 아래, 바닥까지 다 보였는데, 그래봤자 까마득한 바다가 아니라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심 5,6미터 정도 되는 물로 보였다. C와 나를 담당한 다이버가 우리 눈을 보며, 수신호를 하며 우리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깊게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패닉이 왔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숨 쉬는 법을 까먹었다. 바다가 위아래앞뒤에서 한 번에 확 펼쳐졌고, 나는 숨을 들이키지도 내뱉지도 못했다. 코로, 입으로 물이 미친듯이 들어왔다. 다이버가 내 수신호를 즉시 알아챘다. 그는 C의 잠수복의 끈을 당기고, 나를 잡고 위로 올라갔다. 물 만난 물곰처럼 바다를 만끽하던 C는, 영문도 모른 채, 잠수복이 부풀며 곧장 수면으로 올라왔다.


두 번 정도 더 시도했지만, 손과 발이 굳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난 그냥 배에 올랐다. 배에는, 일가족 중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평온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다이버들이 내 상태를 체크했다. 자신이 그런 공포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다가, 맞닥뜨려서 알게 될 수도 있다고, 종종 나처럼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음료수를 마시고 햇빛을 받으며 누웠다.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보라카이엔 첨 왔어요?"

"아, 네."

"우린 애들이랑 같이 매년 와요. 벌써 5년 됐네. 애들이랑 아빠랑 다 스쿠버다이빙이랑 물놀이를 너무 좋아해."

“아...좋네요. 어머니는 안 하세요?”

"모든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안 그래요? 나는 여기서 혼자 조용히 앉아서 구경하는 게 좋더라구요."



나는 어떠냐면


모든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가 무엇인가를 원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그것이 내게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물 속에서 패닉이 오는 스쿠버다이빙이 아니라면, 그걸 모르면서 그냥 계속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해보지 않고 꿈꾸기만을 계속 하는 경우다. 적어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그래서 패닉이 오기 전까지는, 우린 그게 내게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조차 모른다.


그래서 어땠냐고?

C는 평생의 안주가 하나 생겼다. 그 때 내가 소스라치며 정신이 나간 얼굴로 수신호를 하던 것을 흉내내곤 했다. 나는, 여태 말하던 그게 남았다. '이야기.'

"이틀 동안 전기 나가고 전화도 안되서 택시기사 아저씨랑 같이 개고생을 했다니깐. 그리고 드디어 도착해서, 물에 들어갔는데, 나한테 물은 정말 아닌거야. 아닌 건 아닌거야. 스쿠버다이빙? 쉬워보이지? 정신 나갈 수도 있어. 진짜. 내가 그랬다니깐?"

이러고 다닌다.


그리고, 나는 등산과 캠핑을 가겠다고 마음 먹고 있다. 거기선 숨은 쉬어지니까.

아무튼,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걸, 사실 못하는 사람이었던 걸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다.


아마, 이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 중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중에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사실은 원치 않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 원하는 것 또한 바뀐다는 것. 어쩌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도 바뀔 수 있다는 것.


뻔한 말이라고? 정말 알고 있나? 당연히 여기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이해하고 동의하고 경험 뒤에 곱씹어 보고 끝내 체화해서, 삶을 변화시키고 돌이키는데 반드시 적용하며, 그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 비로소 ‘아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겨우 알아갈 마음이 생겨 살펴보는 중이다.


C와 나는, 간절히 며칠 더 있고 싶었다. 보라카이도 좋지만, 까띠끌란과 칼리보로 가는 길 사이를 또 돌아다니고 싶어했다. 나무를 치우고 물이 넘친 집들을 정비해주고 커피를 얻어마시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고, 빅터에게 동네 구경을 시켜달라고 하고 싶었다. 우린 우리가 이문동에서 함께 살 때, 집 앞 골목의 눈을 죄다 쓸어 없애던 때를 동시에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난 어떤 사람이냐면...' 이 뒤에 덧붙일 것에 관해 잘 아는 것. 그것에 관해 맘에 들어하지도, 맘에 안 들어하지도 않는 것.

그런 걸 배우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생각한 것을, 언젠간, 늦더라도 반드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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