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에 누워 집에 있는 수건 개수 세어보기
2017년 2월 초.
이틀 밤을 꼬박 새고 쓰러져서 잠들었고,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오전에 눈을 떴다.
이상하게 머리가 가뿐했다. 몸이 뻐근하니 목욕부터 하자고 마음 먹었다.
씻고 청바지와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서자!
노트북을 챙겨 까페로 가자!
용케도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드문 날이었다.
따뜻한 물에 오래도록 목욕을 하고 나와 머리를 말렸다. 7만원이 넘지만 색깔별로 세 벌이나 지른 케빈클라인 속옷을 입었다.
'이딴 걸 아무 생각없이 걍 막 사재끼려고 내가 그렇게 내 인생을 갈아넣은 거 아니더냐!'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손을 씻었다. 옷장 문을 열고 흥얼거리다가,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청바지를 꺼냈다. 내가 제일 맘에 들어하는 색상의 겨울 모양말도 마침 다 말라있었다.
선 채로 양말을 신고 청바지에 왼쪽 다리를 넣었다.
모양말을 신은 터라 바닥이 조금 미끄러워, 한 다리로 중심을 잡으며 다리를 쭉 뻗어 바지 안에 밀어넣었다. 허리를 세우자 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소리가 들렸다.
사실 확실치 않다. 소리가 정말 났을까? 그럴리가 없다. 내가 들은 소리는 이런 소리였으니까.
'푸욱!'
왕좌의 게임의 킹슬레이어가 내 허리에 검을 찔러넣은 느낌. 존 스노우의 애매하고 거친 공격 말고, 킹슬레이어의 정확하고 간결한 일격.
순식간에 양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왼쪽 다리 절반만 청바지에 넣은 채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간헐적 단식은 해본 적 없지만, '간헐적'이란 단어의 뜻을 이제 정확히 안다. 온 몸을 행주 짜듯 뒤틀며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뭉칠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어금니를 악 물고 '으으으윽' 앓는 소리를 안 내고는 절대로 버틸 수가 없는 통증이, '간헐적으로' 한 점에서 시작되어 몇 초동안 지속되었다. 방금 전 통증이 지나가고 나서 통증이 사라진 그 상태 그대로 자세를 조심스레 유지해도, 통증은 다시 다른 점으로 돌아왔다. 조금 움직여 자세를 바꾸면 아주 잠깐 괜찮다가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통증이 십 여 번 지나갈 동안, 방에서 기어나와 문턱을 지나 화장실 앞 선반에 둔 핸드폰을 팔만 겨우 뻗어 집을 수 있었다. '누가 있을까? 누가 날 병원에 데려다 줄 수 있지? 차가 있는 애. 그 중에 제일 가까운 애.'
조건에 부합하는 한 친구가 떠올랐다. 맹씨 성을 가진 내 친구 '맹.' 내가 만난 모든 인류 중 가장 성씨와 어울리는 사람, 맹. 맹은 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화를 냈다. 하지만 맹은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시간을 정확하게 말했다.
"하..한 시간? 하하..아..어...그럼... 으으으으읔.."
간헐적 비명에 맹은 많이 아프냐고 물었고, 나는 그 물음에 헛웃음을 짓다 다시 비명을 질렀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일산. 허리. 척추.'
몇 개의 병원이 떴다. 그 때 그 생각이 들었다. '병원까지 어떻게 갈래?'
번호를 눌렀다. 망설임없이 '나인원원'
한심하게 웃었다. '미드를 그만 봐라, 멍청아.'
이를 갈며 숫자 세개를 다시 눌렀다. 119.
전화기 너머의 구급대원이 주소를 물은 뒤 말했다.
"어느 병원으로 가실 거에요? 다니시는 병원 있으세요?"
스마트폰 만세! 검색해둔 병원 중 한 곳의 이름을 말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5분 안에 바지를 입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내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갈면 나는 소리가 이런 건가.
'난 아파. 아프다고. 못 해. 괜찮아, 못해도. 바지도 못 입을 만큼 아파. 그러니까 잘 해주겠지, 으으으아 ㅆㅂ'
울고 싶은 5분이 지나고, 계단을 오르는 구급대원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제발, 남자분들만 들어오...
"119입니다. 문 열 수 있으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몰라, 이제.
"제가..아..그..번호 누르고 들어와주세요."
현관문 넘버락을 알려줬다. 문이 벌컥 열리다가 멈춘다. 걸쇠로 된 잠금장치를 걸어놓았구나아! 오예~!
"저...사장님? (듣기엔 좋았다.)"
"으으...아으으"
"문을 열어주셔야..."
"아아크으으으으...으..."
"아버님? (저렇게 더 부르기 전에 문을 얼른 열자.)"
이를 악 물고 현관까지 무릎으로 기어가 걸쇠를 풀었다. 나는 엄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여친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다 걸린 사람처럼 현관문 앞에 쓰러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와중에 케빈 클라인을 입어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남자 구급대원이 억지로 내게 슬림핏 데님을 어떻게든 입혀보려다가, 내가 ㅈㄹ을 하자(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옷방에서 츄리닝을 꺼내왔다. 기상 시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다른 착장이 완료되는 동안, 나는 구급대원의 신발에 왁스 바른 머리를 비벼대며 비명을 질렀다. 대원들은 내게 신발을 신기려다 포기하고, 들것에 싣고, 신발을 팔에 안겨줬다.
여자 구급대원이 선임인 듯 했다. 그녀는 내가 바지를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것에 실려나오는 순간 내게 물었다. "지갑 어디 있으세요?"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막내로 보이는 대원이 뛰어가 지갑을 챙겼다. 그녀가 막내 대원에게 말했다. "저기 담배도 챙겨드려."
머릿 속엔 담배 광고 콘티가 떠올랐다.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동안 나는 계속 악다구니를 썼고, 구급차에 실려서는 막내 대원의 손을 잡았다.
내가 검색한 병원은 모두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구급차가 멈추고 내가 내려지자, 다들 고맙게도 할렘가에서 총상을 입은 FBI 요원을 맞닥뜨린 듯 다급히 움직였다. 나는 곧바로 세 명의 팔에 들려 침상에 올려졌고, 침상에 굴러오르자 마자 진통제를 맞았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엠뷸런스에 실려오셨다면서요?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아픔이 좀 가시고 나자 추위가 느껴졌다. 이런 저런 걸 맞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이런 저런 걸 찍었다. 내 4,5번 척추 사이의 추간판이 돌출하여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그 사이 맹이 도착했다.
그 날 난 여기저기 싸인을 하고 보호자 동의를 받고 시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아닌 비수술 치료라 하루나 이틀 정도 입원 뒤 재활을 하면 된다고 했다.
맹은 내가 동의서에 싸인을 하려고 하자 간호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며,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 받은 적 있다는 후배에게 전화해 내가 받는다는 그 시술이 괜찮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난 정신이 깜빡거리는 와중에 맹이 너무 미웠다.
'아프다고! 빨리 치료받을 거라고!'
시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제를 맞고 기다렸다. 시술을 하실 원장님은 조금 뒤 온다고 했다. 잠시 자세를 고치려다 통증이 도졌다. 엉덩이와 허리를 까고 진열된 냉동포장육처럼 수술대 위에 엎어진 채로 어금니를 물고 비명을 질렀다. 부원장님이라는 분이 다급히 들어와 내 손을 잡고 진정시키는 사이 마취제인지 진통제인지를 또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경치료를 마쳤다.
간호사는 맹에게 내가 저녁 아홉시 전까진 잠들지 않게 지켜보라고 했다. 아마 내가 맞은 진통제의 양이 좀 많았기에 그런 것 같았다. 멍하고 붕 뜨는 기분이 들고 졸렸다. 그러면서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다. '마 형'이 잔뜩 맞고 푹 자다가 다신 못 일어난 게 이거 비슷한 걸까. 피식 웃음이 났다. 맹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심하게 화장실을 가겠다고 일어섰지만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간신히 땅에 발을 디뎠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남자 간호사가 와서 움직임이 많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내가 누운 자리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 관을 삽입했다. 죽이고 싶을만큼 아팠지만, 그 순간도 스리슬쩍 지나갔다.
묘하게도, 입원실에 누운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여러 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단지 자기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나를 이토록 케어해준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억지로 연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지도 않는 적정거리의 신경쓰기가, 뭔가 절묘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부담스럽지도 않잖아. 내가 징징대거나 갑질해서 막무가내로 얻어낸 호의가 아니라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야. 그런데 그게 날 돕잖아. 이게 바로 종심소욕불유구, 혹은 코사 노스트라의 현현 아닌가.'
살며 맞닥뜨리는 모든 사건과 관계들을 소화하며, 모두가 그 정도의 에티튜드, 딱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 모두의 삶이 멋져질 거 같았다. '힙'보다 '쿨', 아니 '쿨'보다 '찐' 의 느낌? (부연하자면, 다음날 아침 병원밥을 먹으며 이 차오르는 고양감은 한 술 뜬 차가운 국과 함께 식었다. 쓰면서 돌아보니 아마 약 기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 아님 요즘 내가 감기약을 먹는 중이라 이따위 글이 써지는건가.)
아무튼, 내가 누운 채로 열반에 이르기 전에, 맹은 내가 마실 음료수와, 치약, 칫솔, 그리고 수건을 한 장 사왔다. 아무 무늬도 글자도 없는, 비싸보이진 않지만 깨끗한 새 수건.
"뭐하러 샀어?"
"집에 가져가서 써."
"짐만 되지.."
그렇게 말했지만, 깨끗한 수건은 내 눈길을 끌었다. 새 수건을 본 게 얼마만인가.
머릿 속에, 내 집 풍경이 떠올랐다.
막내 구급대원은 부엌 옆 선반까지 가서 내 지갑을 들고 왔으니, 편집실로 쓰는 작은 방을 봤을 게다. 빌트인 옷장에 터질 듯 빽빽히 걸려 있는 옷들. 빨래 건조대. 듀얼 모니터, 컴퓨터, 아무렇게나 엉겨붙은 외장하드, 카메라, 각종 전선, 콘티, 메모지, 수첩, 창문을 모조리 막아둔 흑지에 덕지덕지 붙여둔 포스터들.
큰 방도 열려있었으니 다 보였겠지.
쌓이고 무너지고 그 위에 또 쌓여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독특한 양식의 기둥이 된 책들, 촬영 장비, 소품, 상자에 가득 담겨 쌓여 있는 A4 용지들, 냉장고에 가득 붙은 배달음식 전단지, 선반마다 쌓여있는 로션, 썬크림, 안경들, 먼지쌓인 레고 모형, 덩그러니 커다란 TV, DVD, 지난 세기말 혹은 이번 세기 초에 현상한 필름더미들, 6mm DV테잎(!), VHS 테이프(!!), 바닥에 기대어 포개져 있는 퍼즐 액자들 (반고흐, 에드워드 호퍼,스튜디오 지브리...300피스, 500피스, 1000피스....), 다쓴 캔들 유리병, 온갖 크기와 재질의 새 수첩, 새 노트, 온갖 잡동사니들...
그리고 화장실. 아직 문이 그대로 열려 있고 드라이기가 널부러져 있을 화장실. 그리고 수건. 화장실 수납 선반에 꽉 들어찬 수건들.
수건이라니! 수건이 왜?
난 근 몇 년, 엉망이긴 하지만 게으르진 않았다고 자부했다. 뭐가 됐든 몸과 맘이 분주한 딱 그만큼, 정리되진 않지만, 가만 멈춰있지 않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지하, 옥탑, 고시원, 컨테이너집, 원룸, 풀옵션, 연립주택... 살아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자취집을 거쳐 지금 살고 있는 집.
분리형 주방, 다용도실이 있는 투 룸에, 벽지가 아닌 여러 톤의 페인트를 칠한 집. 창문 사이즈에 딱 맞게 우드 블라인드를 주문해 달아 둔 집. 구석구석마다 포인트 조명을 둔 집.
그리고 홀린 듯 닥치는대로 사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온갖 물건들.
인스타에 프레이밍 잘해서 전공자답게 색보정도 심혈을 기울여 찍어 올리는, 오 마이 스윗 홈.
그러고 보니 맹은 이 집에 이사를 올 때 짐을 같이 옮겨준 친구였다. 나는 맹에게, 우리집 보일러가 아직 온수 모드로 되어있을테니 외출 모드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아홉시가 넘었고, 맹은 돌아갔다.
혼자 덩그러니 6인실에 누워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지금 집에 내가 새로 산 수건은 몇 장이 있지?
언제 샀지? 수건은 많잖아.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수건은 없어.
수건이 그런거지. 좋아하는 수건이라니.
아니, 내가 좋아하는 수건이란 게 있을 수도 있잖아.
문득, 나와 7년째 연애중이던 Y가, 내게 읽어보라고 준 책이 떠올랐다. (우린 한창 우리가 함께 있을 공간에 대해, 물건과 공간에 대한 취향에 대해 하나하나 오랫동안 얘기하길 즐기고 있었다.)
비싸고 좋은 오일 하나만 있으면 여러 종류의 화장품은 필요없다거나 아주 좋은 물건을 심혈을 기울여 하나를 사서 오래 쓰는 간소한 삶에는 돈이 오히려 더 많이 든다는 말이 적힌 책. 다 읽고 나서도 그리 깊은 공감은 되지 않던 책. 그 책이 계속 기억에 남은 건, 그 책이 나온 뒤, 너무하다 싶을 만큼 비슷한 디자인의 표지를 한 책들이 놀라울 만큼 여러 권 등장한 탓이지 내용을 기억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Y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 타샤 튜더가 내겐 더 이입이 되었다. 타샤 튜더처럼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재미있어 보였으니까. 뭔가가 집에 가득하거나, 눈 앞에 뭔가가 가득 펼쳐지면 뿌듯할테니까. 혹은 남에게 자랑삼아 보여주기 좋을테니까.
하지만, 그래서, 수건은?
15년 넘게 자취하며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이고 지고 다닌 그 다 헤진 수건들은? 절대 인스타그램 따위에 찍어올릴리 없으니 계속 그 수건들을 쓰겠다고? 수건 뿐이겠어? 눈엔 안 보이는 니 속에서 곪아터진게 디스크 뿐이겠어?
하얀 민무늬 수건 한 장, 치약, 칫솔, 지갑, 담배만이 올려진 침대 옆 선반을 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편했다. 심지어 핸드폰 충전기도 없다. 핸드폰은 곧 꺼졌다.
Y의 그 책은 분명히 큰 방 정면 책장의 제일 왼쪽 위에서 두번째 칸에 있을 터였다. 거기가 내가 분류한 '기타 등등' 칸이니까. 지금 떠올려 보면, Y는 진정한 선구자였다. 내가 그 책을 Y에게서 건네받은 건 2017년 그해로부터도 이미 몇 년 전이었다.
나는 이틀을 더 있다 퇴원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 방 책장을 훑었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를 찾아냈다.
곧바로 발바닥이 뜨끈하다 못해 뜨거워지고 방 안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펼치지도 않은 책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입원한 그 날, 맹은 내 부탁을 받고 고맙게도 내 집에 들러주었다. 훗날 맹은 자신은 분명히 온수모드 버튼을 껐었노라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2월. 실내온도는 40도가 넘고 있었다. 맹은 내 친구다. 그러니까, 맹은 이틀 전에 내 집에 들러 보일러를 조작해주었다. 이틀 동안 보일러는 맹이 조작해 둔 대로, 혹은 자기 마음대로, 아무튼 나를 반길 준비를 했다. 나는 맹을 여전히 좋아한다.
나는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끓기 직전의 집을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텅 비어 있던 이 집의 처음을 봤던 맹은, 이제 내가 다시 이 집을 비우는데 시동을 건 셈이었다.
아..맹!
나는 맹이 사준 흰 수건으로 땀부터 닦았다. 그리고 바닥에 누웠다. 입원실에서 문득 느낀만큼의 영혼의 고양감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허리를 지지기에는 안성맞춤인 바닥온도가 내 기분을 붕 뜨게 만들었다.
'문을 직접 열어주셔야 되요.'
나를 일으켜 세웠던 구급대원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 문을 열면, 어디로든 길이 열릴까?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허리는 아직 뻐근했기에, 영화 '옥자'에서 모든 비만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옥자의 일어나는 포즈처럼, 누운 몸을 옆으로 빙글 굴려 팔꿈치를 짚고, 상체를 천천히 펴고, 살금살금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수건을 꺼내 한 곳에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