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힙하지 못했던 을지로 시절
을지로 3가 10번
'힙지로'가 아직은 을지로라 불리울 때, 그러니까 '감각의 제국' 과 '잔' 이 생기기 전, 졸업한 동기들과 함께 을지로 3가에 작업실을 얻었다. 스물 아홉에 들어간 두 번째 대학교를 우여곡절 끝에 졸업하고, 그 후로도 몇 년이 지났을 때 얘기다.
서로 촬영 알바거리가 있을 때나 겨우 문자로나마 생사확인을 해 오다가, 오랜만에 만나 얼굴을 맞대게 된 어느 날, 울컥하는 마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여있자고 입을 모았던 것 같다. 같은 방에 같은 크기의 책상을 놓고 서로의 골방에 쌓여있던 책을 하나의 책장에 같이 섞어놓고, 계속 이모양 이꼴로 폐끼치지 않고 가끔 우울해하며 살아가도 될 이유를 서로에게 하나씩 더 얹어주고자 했다.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다른 멤버들의 속마음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우린 이후 3년 간 수십, 수백의 나날을 함께 밤새웠지만 서로의 가장 깊은 심연의 울분과 취약함을 소심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그것을 짐작만 하며 굳이 매만지지 않는 것이, 우리 각자의 존엄을 서로가 지켜주는 그나마 쉽고 가능한 길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질릴지언정 동정하거나 모독하지 않게 하는 적정거리일게다. 우린 본능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에야.
그 곳에서, '투자 유치를 위한 기획개발을 위한 미팅을 위한 기획안을 위한 시놉을 위한 레퍼런스 작업' 정도의 목적을 지닌, '잘 되면 너희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제안 비슷한 강권의 결과로 만들어 낸, 글자와 이미지가 뒤섞인 문서 여럿, '어딘가의 대표의 지인의 아는 피디의 친한 배우와 언젠가 같이 작업을 한 감독의 아끼는 후배의 아이디어를 입에서 메모로 옮긴 짧은 단상에서 기인한 원대한 유니버스의, 아직은 국내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의 골조' 등을 우린 자주 접했다.
우린, 드물게도 모여있는, 그리고 흔하게도 일이 없는, 간혹 있는 단편영화제 수상작 연출자들이었다.
말인즉슨, 우리는, 명함과 사원증이 있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핵심역량을 아웃소싱하기에 적당한, 또한 윗선에 가시적 성과를 증명하는 동시에, 함께 뭔가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을 주면서도 우월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파트너, 그러니까, 배고픈 영화과 졸업생이었던 게다. 그들이 발굴한(어쩌다 건너건너 알게 된), 아직 빛을 못 본, 아직은 배고프고 우울하고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은(팔리는 걸 시키는대로 써본 적 없는), 하지만 업계에서 다달이 봉급을 받으며 버틴 각자의 경력만큼 쌓인 귀하디 귀한 지식과 진지한 조언으로 조금만 이끌어주면 딱 적당히 밥값을 할 것 같아보이는, '같이 모여 있는 너희'는 그렇게 작업실 월세를 근근히 충당하며 버텼다.
지금은 바로 윗 문단에 적은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최대한 건조하게 돌아보면 그 시절은 이렇다. 을지로에 모인 우린, 그냥 각자의 좀 안 좋은 시기가 겹쳤다. 그렇게 짐작한다. 공교롭게도 조바심과 들뜸과 불안이 갈무리되지 않은 클라이언트들을 연이어 만났다. 조바심과 들뜸과 불안은 쉽게 전염된다. 우리에겐 항체가 없었다. 나에 대해서는 짐작이 아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난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를 위해 내가 견인하면, 뭐라도 성과가 나고 나면, 모두가 다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사실은, 자기 안의 풀어야 될 것들을 풀고 나서야 뭔가가 되기 시작한다.
각자가 뭔가가 되고 나서야 함께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긴다.
나는, 나와 주변에 통제력을 발휘하려 했고, 완벽주의(이것에 대해 나중에 시간을 들여 따로 말하고 싶지만, 이건 짐짓 자랑삼아 쓸만한 속성의 단어가 절대 아니다. 이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인지왜곡 중 최악이라 할 수 있다.)와 흑백논리에 빠져 있었고, 속으론 뒤틀린 우월감과 경멸과 억하심정과 자기연민을 숨기고, 겉으로는 겸손함을 가장한 정신승리를 반복하고, 그럴 이유도 마음도 없는 상대에게 우아함을 바라며 마치 본을 보이듯 저자세로 일관하며, 스스로에게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자격을 지녔는지 지속적으로 되물었다.
마치 이런 비유.
굳이 흰 스니커즈를 신고 길을 나서서 기어이 진흙탕을 바라보면서 무사히 아무 흠 없이 그 곳을 지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는 동시에, 그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자책하고, 왜 내가 딛는 땅은 언제나 하얀 스니커즈에 맞지 않는지, 왜 내겐 이런 우스꽝스러운 하얀 신발 한 켤레 뿐인지, 왜 나는 이 신발을 신기를 항상 우기는지 따지는 기분. 그러다 한 발을 잘못 헛짚은 척 물웅덩이에 집어넣고 신발을 더럽힌다. 그리고는 체념한 듯 어쩔 수 없다며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진창과 수렁에 처박혀 온 몸이 떡지고 무겁고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지경이 되어야만 평온함을 느끼기에 이른다. 목까지 잠겨있으면 누구도 함부로 놀리지 못한다. 건져내기 쉽지 않아 보이므로. 그럴 땐 내가 오히려 진흙 묻은 손을 꺼내보이며 괜찮다고 한다. 너도 여기 들어와 볼래?
그리고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생각하기까지 많은 걸 갖다버려야 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나는 물건을 다 갖다버렸다.
물건을 갖다버리기 전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물건 버린 얘길 얼른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글은 믿기지 않게도 미니멀리즘에 관한 얘기다.)그러려면, 그때의 내 상태를 얼른 진단해야 한다. 간단한 예들을 몇 개 들고 서둘러 정리해보자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이게 잘 되면..' '모여 있는 너희가 같이...' '너희한테도 도움이 되는...' 으로 운을 떼고, '배고플텐데 맛있는 거 먹자. 이 동네 내가 아는 맛집이 있다.' 로 시작하여, '아무튼, 이건 중요하고 시급한 프로젝트니 잘 써야한다.'로 마무리 되는 미팅에서 계약서를 쓴 것은 딱 한 번이다.
그나마 그 한 번의 계약은, 내게 통상 트리트먼트(대충 분량으로 따지자면 a4 30-40장, 내용으로 따지면 대사나 디테일한 장면묘사는 없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일어날 사건은 모두 들어가 있는 상세한 줄거리)를 쓰고 받는 금액에 대해 말해달라고 한 뒤, 그 금액에 초고(대충 분량으로 따지면 a4 80-100장, 내용으로 따지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했다. 제작사는 기간 내 두 번의 수정을 명시하고 피드백을 차일피일 미루다, 내가 금액이나 마감 시한에 상관없이 그 아이템에 애착을 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을 때, 누구의 요구도 없이 계속 자료조사를 하며 고치고 있던 그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몇 년 뒤 담당 피디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는 퇴사를 했고, 아마도 기성 작가가 붙어 영화화를 준비 중이란 이야길 들었지만, 뭐, 괜찮다. 중요한 건 아니다.
기성 작가와 다른 '젊은 친구들의 시각'이 필요하다며 가성비를 따지다, 젊은 친구들이 해 놓은 밥이 식당에서 팔리려면 결국 이름이 난 쉐프를 내세워야 된다는 것 마냥 기성 작가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사례도 이제 괜찮다. 그냥 원래 그런 거니까. 진심이다. 항체가 없을 때는 세상의 모든 '원래'들에 몸서리를 쳤던 것 뿐이다. 무균실에서 증류수만 마시고 싶었던 것 뿐이다. 사람은 H2O로만 이뤄진 순수한 물을 마시면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구역질을 할 것이란 얘길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비유적으로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수십명의 사공들이 이끄는 대로 너덜너덜해진 아이템을 이리저리 기워놓고 이것이 내가 수습한,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영혼이노라 주장해야 하는 유령작가가 되어, '어쩌면 너희들에게, 혹은 너희 중 누구 하나에게 이야기의 일부라도, 혹은 다른 작은 프로젝트라도 연출을 맡겨줄 기회가 오게 되길 바랄수도 있는, 무지막지하게 엄중하고도 중요한 미팅에 가서 숨겨진 유령의 실체를 넌지시 소개해보겠노라'는 말에 모든 걸 걸어보는 건 그냥 호구짓이라는 걸 사실 알고 있었다는 자기합리화도 이젠 괜찮다.
단지 사소하게 궁금한 것이 있다.
우린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던, 하지만 되어야만 한다는 그 '기성' 뭐시기가 언제 되는 걸까.
이젠 '더 이상 젊은 나이도 아니니 제대로 하든 정신을 차리든 해야한다'던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순 없는 세상이란 걸 인정해야될 나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지망생이란 소릴 듣고 꿈이 영화냐고 묻는 업계의 갑들에게 우린 언제까지 '난 꿈꾸는게 아니라 적당한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싶다'고 해야할까.
증명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되는 것은 언제나 '꿈꾸는' 쪽이다. 누구든 헛꿈 꾸는 자를 평가할 수 있고 증명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법정의 룰을 존중해주겠노라. 허나 내가 모은 증거는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엎어진 프로젝트는 커리어가 아니다. 커리어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시작할 수 없으면 증명할 수 없다. 무한궤도. 그리고, 그래도 뭔가가 있으면 가져와보라고 말한다. 비용처리는 우리가 한다. 참가비도 상금도 장소대여비도 게스트 초대도 모두 내가 해야하는 나는 원치 않는 경기를 주최해서 준비가 다 되면 앉을 자리를 알려달라고 말한다. 앉아서 신호를 하고, 그 신호에 우리가 달리면 얼마나 빠른지 말해주겠노라 말한다. 너희가 원하는 것이니까. 라고 말한다.
우린 '출발선에 서기 위한 경주에 참가하기 위한 접수대로 가는 길'조차 모르는 기분으로 지냈다.
경주마가 되려면 부지런히 영양을 보충하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부단히 훈련하라는 말이 들려온다. 똑같은 워딩을 각자 한 번씩 진심을 다해 전해온다. 우린 흘려들을 수 없다. 그 와중에 여물을 얻어먹기 위해 품삯을 받고 밭을 갈고 있으면, 조련사들이 우릴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꿈이 경주에 나서는 것이냐고 묻는다. 밭을 가는 것은 경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린 그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초라한 뒷다리에 힘을 줘서, '미치고 팔딱 뛴다.'
이것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한번씩 철 지난 실없는 농담을 떠올리듯 피식 웃게 될 뿐이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다.
'그런 데랑 일하지 말고 나랑 하자'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것들 중 '내 것'이라 할만한 것은 없다. 그 사람들 중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 괜찮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고, 그들과 좋았고, 그들에게 고마웠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내가 괜찮지 않았던 건 그냥 나의 문제였다. 그러니 나는 어떤 일도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 말들을 써도 괜찮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가진' 물건들을 계속 줄였다. 결과적으로, 내 물건을 버리니 내가 남았다. 하지만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다. 서두르지 말자. 조바심과 들뜸은 잠시 제쳐두고 마저 이야기해야한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업영화 초고를 한 번, 각색을 한 번, 웹툰으로 방향을 튼 아이템의 원안의 트리트먼트를 한 번, 만들어졌지만 사람들 기억에는 남지 않은 바이럴 광고를 수십 편, 사내 방송 대본 쓰기, 광고 조명팀, 메이킹 촬영, 기업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영상 편집(연례행사인 이 일은 두 해에 걸쳐 계속했다. 그들은 내게 항상 계약서를 써 주었다. 나는 화학품을 가공해 뭔가를 만든다는 이 생소한 회사의 본사 건물을 지날 때마다 맘 속으로 응원한다. 지금 이 글을 쓰다보니 내친 김에 내년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그냥 재미로 만들어주고 싶어진다.), 강남의 어느 유치원 졸업생들의 중국어 연극 촬영 등을 닥치는대로 했다.
광고 현장 메이킹을 찍으러 갔더니, 첫 대학 동기가 PD로 있던 때도 있고, 외국도서전시의 재고정리 알바를 갔더니, 거기 오프라인 행사 담당자가 몇 해 전 나와 함께 켐페인 광고를 진행하던 이라, 나를 감독님으로 부르며 당황해하던 적도 있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22kg이 넘게 살이 쪘다. 자려고 누으면 내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말소리로 변해 어깨를 타고 넘어가 귓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귀마개와 안대를 하고, 아로마 디퓨져를 켜고, 파도소리, 이발하는 소리, 산사의 풍경 소리, 차 창 밖 빗물 소리 등등의 온갖 ASMR을 밤새 틀어놓아도, 미명이 밝아오기 전까진 절대 잠들지 못했다. 화가 나고 지쳐서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동네를 쏘다니다 편의점에서 아무 도시락이나 집어들고, 그걸 전자레인지에 돌리는데 걸린 것보다 짧은 시간 동안 입에 모조리 밀어넣고, 줄담배를 피며 혼잣말로 욕을 하며 가로등에 발길질을 하며 집까지 걸어오면 지쳐 잠이 들었다.
거의 매 순간 누구에게나 화가 나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인상 찌푸리지 않으며 웃으며 천천히 말하는 나의 일그러진 표정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고, 그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이불로 베개와 쿠션 두개를 둘둘 말아놓고 발로 밟았다.
'이걸 왜 내가 수습해야 되지.' '왜 말할 때 나오는대로 쉽게 말하지?' '내가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저 사람은 감당할 수 있을까? 짐작도 못할텐데 왜 내게 함부로 하지?' '내가 해야 될 건 이런 게 아냐.'
'누가 저 무능한 자를 저 자리에 뒀지?' '운도 실력인가.' '사실 가장 바보는 나야.'
'이번 일만 잘 정리하면.' '이번 주말만 지나면.' '다음 주 평일 이틀 동안엔 내 걸 써야지.'
자주 눈 밑의 피부가 경련을 일으켰고, 입가엔 버즘이 피었다.
대충 이런 상태. 흔한 밑바닥. 눈에 보이는 결말.
과정 상의 디테일은 각자가 조금씩 다르겠으나, 대동소이한 30대 프리랜서의 지리멸렬한 드라마, 그 중에도 특히 뻔한 사례모음집이 내게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