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남동생은 BTS의 RM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RM은 이런 가사를 썼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곳
자연과 도시, 빌딩과 꽃
한강보다 호수공원이 더 좋아 난
작아도 훨씬 포근히 안아준다고 널
내가 나를 잃는 것 같을 때
그 곳에서 빛 바래 오래된 날 찾네
- 'Ma City', BTS
내가 봐도, 남이 봐도, 상태가 안 좋던, 가까운 지인들이 보기엔 영 맛이 가보이던 2015년, 살던 동네를 떠나 오래된 신도시로 이사를 왔다. (오래된 新도시라니...) 저 노래를 알았다면 더 빨리 이사했을까? 이사하고도 얼마 전까지 저 노래를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크기의 인공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랑천보다는 걷기가 편했다.
상태가 좋아지려 선글라스와 신상 츄리닝을 한벌로 맞춰입고, 애플뮤직의 핫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억지로라도 매일같이 산책을 했다. 집에서 호수공원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0-30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호수 주변엔 자전거가 많았다. 나는 호수에서 걷고 싶지 도로변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공유자전거가 잘 갖춰져 있었다. 운 좋게도, 우리 집 바로 앞의 작은 놀이터와 호수 바로 앞 육교에 공유자전거의 스테이션이 있었다. 빨리 신도시인이 되고자 공유자전거 멤버십 카드를 구입했다.
공유자전거를 타다보니 쌩하니 날 앞질러 가는 로드바이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백만원은 우습게 넘는다는 자전거의 세계에 빠질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십수만원짜리 빨간색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샀다. 공유자전거보다는 기어가 좋아 빨리 달렸지만 안장은 훨씬 불편했다. 안장을 바꾸려 이쁜 가죽 안장을 알아보았다.
보기 좋은 가죽 안장이 사실 딱히 더 편하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게다가 내가 산 자전거값의 절반 정도 가격이라니 깔끔하게 단념하려던 차에, 지하철 역 앞 거치대에 묶어놓은 하고 많은 자전거 중에 내 안장만이 도난당했다. 그 와중에, 누가 훔쳐가랴 싶던 싸구려 자전거용 라이트도 함께 없어졌다. 다른 자전거들 중 나름 가격대가 있는 자전거의 안장은 육각렌치로 풀어야 탈착이 된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새로 자전거 라이트를 사면 오래 자리를 비울 땐 빼놓아야겠다는 생각과, 쉽게 탈거할 수 없는 라이트는 얼마면 살 수 있을지, 그런 종류의 라이트가 있는지 당장 알아봐야겠단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마침 잘됐어, 이 참에 엉덩이가 아프든 말든 제일 얄쌍하게 잘 빠진 가죽 안장으로 교체하자.'
'그럴게 뭐 있어 자전거를 바꿔.'
'잘못 손 대면 흠집이라도 낼까봐 가까이 오다 흠칫할 정도로 비싼 자전거라면 안 건드릴거 아냐!'
곧이어 내겐 그런데 쓸 돈 따위 없다는 생각,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런 자전거를 살 돈이 내겐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시당하고 있단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 도둑에게.
내 밥벌이 능력에.
이 도시에.
내가 사는 빌라 옆 새로 인테리어 중인 단독주택에게.
굳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달고 최신가요와 함께 날 추월해 지나가는 로드바이크 라이더에게.
산책과 러닝을 할때마다 꺼내 신는, 오래된 까만 나이키 프리런 운동화는 언제부턴가 '까망런'이라 불렀다.
고급은 아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공유자전거보다 훨씬 폼나 보이는 그 빨간 자전거를 '빨강런'이라 부르자고 했었다.
안장이 달아난 '빨강런'.
그걸 보며 왜 온통 무례한 세상에 무시당하지 않겠단 생각이 든 걸까?
호수공원 자전거 라이딩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혼자 뇌까렸다. 그럼 공유자전거를 타면 될 일이었다. 호수공원 산책의 정석은 모름지기 두 발로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싫어졌다. 게다가, 서울로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맘에 드는 자리에 내 자전거를 매어 놓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때까지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는 자전거를 타고 괜히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던 일이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돌연 실감이 났다.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안장을 다시 사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나는 뻗쳐나가는 망상을 더 풀어놨다. 무시당한 기분에서 더 나아가, 내가 분주하게 오가며 하고 있는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되물었다. 전부 하찮아 보였다. 기껏 맘을 추스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뭐라도 해보려는데, 그게 우스워 보이는 거다, 내가 그리 보이는 거다 싶었다. 우스워 보이지 않으려고(도대체 누구한테?) 여전히 멀쩡히 공유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아직 금액이 많이 남은 플라스틱 카드를 접어서 버렸다. 그게 더 우스운 꼴이었지만 난 웃지 않았다.
안장을 제외하곤 멀쩡한 상태로, 집에서 십분 남짓되는 지하철 역을 오갈때마다 매번 묶어놓던 그 자리에, 여전히 새 것인 자물쇠로 잘 채워진 그 자전거, 빨강러니를 그냥 그대로 묶어 놓았다.
한달 동안 낙엽도 먼지도 쌓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지하철역을 오갔다.
눈도 쌓였다. 나는 계속 빨강러니를 벌 줬다. 벌을 주는거라 생각했다. 자전거 도둑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했다.
아직은 고칠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뒀다.
그러면서 나는 빨강러니를 탓했다. 굳이 자전거 거치대를 지나치며, 아직 거기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갈수록 처참해지는 그 자전거의 몰골을 멸시했다.
그러다, 경고딱지가 붙었다. 경고딱지마저 너덜너덜하다 떨어졌다.
바퀴 바람이 빠졌다. 브레이크 레버가 부러지고 없어졌다.
이제 마음먹고 고친다고 해도 벗겨지고 헤진 프레임을 도색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다..
빨강러니는 사라졌다.
지하철 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자전거는 없었다. 한창 인터넷으로 알아봤던, 꽤 유명한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 고급 접이식 자전거를 위시한 매끈하고 반짝이는 온갖 고가 자전거들이 진열된 통유리창 앞에 서서 서성였다. 유리창에 내가 비쳤다.
지하철 역 앞에서 내 자전거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한 후에, 그 잘난 바이크샵에서 젤 눈에 띄는 놈은 얼마면 가져갈 수 있는지 물을 요량으로 택시를 잡아 타기 전에, 나는 굳이 집으로 다시 들어가 산책용으로 마련했던 새로 산 츄리닝 한벌과 운동화 세트를 갖춰입고 나왔다.
나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굳이 택시를 불러 이 곳으로 올때부터,
나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멍청하고 하찮은 내게 벌을 주고 멸시하려 그렇게 했다.
그렇게,
꼼짝못하게, 반등과 변명의 여지없도록 묶어놓고,
어쩔 수 없었고, 결국 회생불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집요하게 방치하다 결국 잃어 버렸다.
이건 잃은 걸까, 버린걸까, 지키지 못한 걸까, 포기한 걸까?
무엇을?
다른 것으로 차고 넘치게 채울 필요없이, 바로 그것을 다시 되찾아 그만큼만 얻고 싶다. 그러니까 무엇을?
마음을 먹었을 때 앞뒤 잴 것 없이 곧바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가까운 매장을 찾아가서, 허세 없이 고르고 무리하지 않고 사들여서, 유치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의심이나 불안없이 기분좋게, 힘차게 패달을 밟아 보던...
내 자전거?
다음 문장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러니까, 자전거가 아니라 비슷한 발음의 이것들 문제란 것.
자전거 말고, 자족감, 그리고, 자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