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백만 명이 살고 있는 윈난 성의 성도이지만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북쪽 지역에 살다 보니 다운타운에서 벗어난 외곽이라 그런지 거리의 패션이나 상점들이 유행에 한 템포 뒤처진 느낌이다.
쿤밍에서 지내는 동안 글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하러 노트북 하나 들고 죽치고 들어앉았다가 들고 나는 사람들 구경을 하던 업소들이 있었다.
그중 한 곳이었던 <카페 프라하>. 이 집 주인장의 언니가 원래는 고성이 있는 도시 리장에 문을 연 카페였는데 고성의 오래된 구옥을 고쳐 유럽 감성의 카페를 만들어서 꽤나 운치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게스트하우스도 겸해서 백인 위주의 외국인들이 머물다 가곤 했는데 유명세를 타자 여동생이 쿤밍의 운남대 앞에 분점을 차리고 거기도 잘되자 내가 살던 북쪽 지역에도 또 분점을 냈다고 한다. 이곳 2층의 한쪽에 앉아 넓고 편안한 의자에 몸을 기대어 일은 안 하고 넷플릭스 영화만 주야장천 보다 온 기억이 있다. 이곳의 여직원과 사장이 영어가 좀 되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장사가 안돼서 걱정이기는 해도 유쾌한 카페였다.
이 집은 쿤밍에 살 때 술친구였던 전직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자 여행가이드 이선생님과 자주 갔던 시장통의 꼬치집인데 각종 꼬치와 쌀국수, 볶음밥 등을 팔던 집이다. 이 시장 뒤가 장충산 올라가는 등산로여서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 이 집에 들러서 하산주 겸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았다. 이 꼬치집 옆에서 파는 오리구이 카오야를 한 마리 사서 그림처럼 나누어 먹고 쌀국수 하나 시켜서 나누어 먹고 꼬치 몇 개를 먹으면 저녁과 술이 부르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이 배불리 먹고 마셔도 한 번도 200위안(약 3만 5천 원)이 넘은 적이 없으니 중국의 물가는 사랑이다.
이 집들은 운남대학교 앞의 카페들인데 대부분 외국인과 대학생들이 주요 고객이었고 종업원들도 영어를 조금씩 했다. 운남대 앞 카페에서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교수로 보이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 운남대 앞에는 예전 연대 굴다리 앞의 <오늘의 책>만 한 서점도 하나 있었는데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중국책들 한쪽에 외국어 책 코너도 있어서 몇 권 뒤적이기도 했다. 운남대 앞 카페 거리에는 한국어 간판도 몇 개 보이고 한국 음식점도 있었지만 모두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전혀 한국식이 아니어서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한국식 화장품과 한국 음식들이 인기를 끌자 중국인들이 흉내를 내서 영업을 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