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에 살게 되면서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생겼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접고 사혈을 배우고 계신 이선생님, 선교사로 오셔서 활동하시다가 잠시 은둔 중이신 김 선생님, 우리에게 석림을 구경시켜 주신 엘림 선교사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가르쳐주신 PT선교사님, 한인교회 장목사님, 한인교회 주방집사님 등이다.
이분들 중 이선생님과 종민아빠는 자주 어울린 편인데 함께 배드민턴도 치고 탁구도 치고 꼬치도 먹으러 다녔으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쿤밍 뒷산인 장충산에 오르는 일이었다.
산은 길게 남북으로 늘어서서 쿤밍 시 전체를 조망하는 능선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실고 있는 아파트에서 왕복 3-4시간쯤 걸리는 코스로 꼭 수원의 광교산쯤의 산이었다.
이 산은 항시 개방이 아니라 건조 기간이 아닌 여름 철에만 오를 수가 있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었으나 나는 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화구 쪽 입구 두세 군데를 이용했다.
산에 오르기 전까지 쿤밍 담배 공장길과 이름을 잘 모르겠는 쿤밍의 큰 절을 지나서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는데 일단 산에 오르면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산 중턱쯤에는 석림을 본떠서 만든 조형물과 커다란 장기판을 만들어서 휴게 공간으로 정한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간단한 간식과 생수, 쌀국수 등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이선생님과 나는 산 어귀에 있는 시장통으로 가서 꼬치와 쌀국수, 오리구이를 한 마리 시켜놓고 술을 한잔씩 했는데 술은 언제나 백맥이었다. 백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쿤밍식 폭탄주인데 백주가 40도가량의 독주여서 백주는 조금 넣고 맥주로 양을 채워야 했다.
쿤밍은 잘 알려진 대로 보이차의 세계적인 유통지인데 그래서 쿤밍 사람들은 보이차를 늘 휴대하고 다니며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중국인들이 차를 즐긴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여기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아예 찬 음료나 물을 마시지 않아서 얼음물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탄산음료나 맥주조차도 상온에 보관하고 있어서 오래간만에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때 낭패감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미지근한 맥주와 콜라를 주길래 아쉬웠는데 이것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아예 찾지 않거나 찬 음료나 맥주를 갖고 있을 것 같은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상점에 가서 구했다.
장충산은 혼자서도 자주 가곤 했는데 큰 산에 찾는 이는 별로 없는 듯했고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산을 오르는 일은 드문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