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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19. 2023

새로 만든 습관-찬물 샤워

찬물로 샤워를 한지 한 달이 넘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자꾸 하면 할수록 익숙하지긴 한다. 막상 하고 있으면 할 만하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3분을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한 번도 시간을 재면서 해보질 않아서 나도 정확히 내가 얼마나 오래동안이나 찬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추측건대 1분은 훨씬 넘고 5분은 아마 안될 것 같다. 


코어 운동을 하는 날, 플랭크를 하면서 시간을 재지 않았을 때는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했는데 힘이 들수록 숫자를 빠르게 세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00초 동안 플랭크를 하기 원하지만 숫자는 150이나 그 이상을 세었었다. 막상 스톱워치 기능을 이용해서 플랭크를 해보니 100초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100초에 도달했었다.    


'찬물 샤워'로 유튜브 검색을 해보면 여러 영상이 나온다. 몇 개를 보았는데 브라운 팻 brown fat과 관련된 언급과 도파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나같이 찬물 샤워는 몸에 좋다는 내용이다. 나도 어쩌다가 걸려든 유튜브 영상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는데 내가 시도해 볼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찬물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과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 때문이었다.


첫 시도!

몸을 미리 달구어두어야 덜 어려울 것 같아서 트레드밀에서 10km를 달렸다. 운동장 트랙이나 마라톤 훈련 코스를 뛰기 어려운 날씨에 나는 종종 트레드밀에서 한 시간씩 달렸는데 평소 운동 시 땀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실내에서 한 시간을 뛰고 나면 시작할 때 트레드밀 손잡이에 걸어 둔 뽀송한 수건이 흠뻑 젖고 상하의가 물에 빠진 것처럼 젖은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 샤워실에 들어가서 평소대로 중간 온도에 머리를 감고 몸을 닦는다. 비누칠을 다 헹구어내고 샤워를 마칠 때 즈음 온도조절 손잡이를 한 번에 가장 차가운 물 쪽으로 휙 돌려버린다. 미지근한 물이 나오고 있다가 잠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흡! 하고 단말마 비명이 나온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질 못하고 몸을 손으로 문지르고 비비며 돌아선다. 순식간에 가슴이 찬물로 식고 쏟아지는 냉수를 피하듯 돌아서면  등에 소름이 돋으며 상체가 차가워진다. 이번에는 머리를 물속에 넣어서 다시 머리칼을 헹군다. 이 순서를 계속 반복한다. 가슴, 등, 머리...

흘러내린 찬 물은 하체로 내려가며 온몸을 식히는데, 별로 오래지 않아서 늘어져있던 불알은 바짝 쪼그라들어 탱탱해진다.  

짧은 찬물 샤워를 마치니 정말로 기분이 좋아졌다. 찬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샤워장 밖으로 나와 몸을 닦는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오고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껴진다. 예전 같았으면 몸에 남은 따뜻한 물기가 식으면서 체온을 떨어뜨려 몸에 살짝 한기를 느낄 법도 했을 텐데 찬물로 식힌 몸이 따뜻한 실내공기를 만나니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집에 와서의 변화도 작지 않다. 나는 가족 중에 가장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이른 초겨울부터 두꺼운 이불을 덮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온이 떨어지면 전기장판을 사용했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전기장판을 내 매트리스에 깔아주려고 했으나 나는 좀 더 기다렸다가 깔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사양했다. 예전 같으면 자다가 새벽녘에 추위를 느끼고 뭄을 웅크리거나 머리맡에 놓아둔 전기장판 스위치를 켰을 텐데 이제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첫 시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매번 샤워를 할 때마다 마지막은 찬물로 몸을 식히고 나오는 루틴을 만들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칠 때면 찬물로 샤워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 주저스러워서 '오늘만은 참을까' 망설이지만 어느새 손은 나도 모르게 휙 하고 찬물 쪽으로 돌려버린다. 이내 쏟아지는 냉수 세례. 처음이 어렵지 일단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지는 않는다. 늘 순서는 가슴, 등, 머리를 반복한다.


찬물 샤워가 거듭될수록 거부 반응이 가라앉고 재미가 느껴진다. 느슨했던 몸이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지고 기분일진 몰라도 피부가 탱글탱글 활력이 도는 것 같다. 이렇게 찬물 샤워를 즐기다가 지난주 초쯤 하루는 간밤에 잠을 좀 설쳐서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처음으로 찬물 샤워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샤워를 마치고 찬물 샤워를 시도하는데 처음으로 찬물 샤워를 할 때와 같은 단발 비명이 나왔다. 흡! 그리고 좀 힘들었다. 후다닥 숫자를 세고 나와서 몸을 닦았다. 이제까지의 찬물 샤워 이력이 0으로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다시 찬물 샤워 루틴은 이어졌고 곧 예전처럼 익숙해졌다. 


이제 한 달을 넘긴 상태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찬물 샤워의 효능을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찬물 샤워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한 두번으로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찬물 샤워는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분명하지만 약간 중독성도 있어서 나는 이제 이 신기하고 즐거운 습관을 멈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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