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엔딩? 빨간 차여! 나의 런웨이레드여!
소심한 중년 남자의 독립 선언 같았던 빨간 차 구입은 비장하게 포장하여 구입을 성사시켰으나 정작 내 마음은 갈팡질팡 용기백배했다가도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그까짓 빨간색 차가 무슨 대수일까 싶었는데 어느새 아내 말처럼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이런 나의 우유부단함을 돕듯 빨간 차는 남의 손으로 떠나버렸고 이제는 흰색 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니 목청 높인 나의 '빨간 차' 의견을 모냥빠지게 스스로 번복할 필요 없어져서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불현듯
빨간색 매끈한 자동차가 도심을 질주하는 모습과 그 차에서 내리는 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휴대폰벨이 울렸다. 이제껏 자동차를 소개해주던 카마스터였다.
"고객님, 지금 문자로 할인 조건이 좋은 차량 몇 대 보내드렸습니다. 혹시 보셨나요?"
카마스터가 보내온 차량들 중에 내 눈길을 확 잡아 끄는 차량이 있었다. 내가 선택을 망설이고 있자 그는 그동안은 수도권 차량만 알아보다가 전국으로 범위를 확대해서 내 구미에 맞을 것 같은 차들을 수배한 것 같았다.
런웨이레드, 그리고 할인금 740만 원!
다시 런웨이레드가 출고가능 리스트에 올라온 것도 반가운데 이번에는 할인금액이 지난번보다 두 배도 넘게 많았다. 이건 무슨 일일까?
"올해 3월 출고된 차량인데 전주 대리점에 전시되어 있던 차량입니다."
예전에 알아봤던 300만 원을 할인해 주던 차량은 지난달 생산분이었는데, 지금 새로 보여준 빨간 차는 출고된 지 두 달이 지난 차여서 할인 액수가 커졌고 거기다가 전시차량이라 추가 할인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내가 원하는 모든 옵션이 들어있는 풀옵션 차량이었고 전륜이 필요하지 않았던 터라 이륜구동인 것도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전륜구동 차량은 앞 트렁크 속의 적재공간인 프렁크 크기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정부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더하니 나는 7천만 원짜리 차량을 구매하면서도 돈을 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네, 이걸로 최종 주문하겠습니다."
카마스터는 처음에는 가족들 의견을 물어봤었지만 이번에는 일사천리로 계약과 해당 자동차의 송달을 진행했다. 또다시 마음이 바뀔세라 나는 한 번에 차량 대금을 입금해 버리고 등초본을 보내면서 전기차 보조금 신청도 진행했다. 이제 런웨이레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차량이 된 것이다.
망설여도 되는 단계에서는 하루에도 오만 번씩 마음이 바뀌더니 빨간색으로 대금을 치르고 나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젠 운명이려니, 애초부터 내 색깔, 내 차려니 싶었다.
이미 출고되어 차고에 있던 차는 마치 우리 아들이 주문한 치킨처럼 순식간에 내가 사는 동네로 배달되었다. 카마스터는 이 차량에 틴팅과 코팅 등 의례히 해준다는 서비스 품목등을 추가하느라 며칠간 차를 인테리어 업소에 맡겼고 드디어 오늘 차량을 받으러 만날 약속을 했다.
막상 마주한 내 빨간색 자동차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렇게 예쁜 색깔을 왜 마다했던 것일까.
전기차는 처음이라 카마스터는 차량 내부의 여러 가지 설정들을 설명해 주었고 드디어 차를 갖고 집으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내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던 순간인 것 같다.
집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나는 3차로 우회전 차선에 있었고 내가 우회전을 하려 하는데 내 좌측에 있던 화물트럭이 가운데 차선에서 우회전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인도받은 지 이제 채 5분이 되지 않은, 주행거리가 10km일 뿐인 내 런웨이레드 기아 EV6의 좌측 펜더와 범퍼 전체, 보닛까지를 찢어 뜨리며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마침 내 뒤를 따라 오던 카마스터가 황급히 산산조각이 난 내 차 옆으로 다가와서 나를 진정시켰고 잠시 후 보험회사 직원들과 망가진 차량을 싣고 갈 레커차와 렌터카를 가져온 직원들 등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쌓았다.
모두들 나의 선홍빛 런웨이레드 차를 보면서 혀를 찼다.
세상에 이제 막 출고 한 차네요.
이걸 어째?
아니 어쩌다 이랬대요.
행인들도 가만히 지나치질 못했다.
오전 내내 카마스터로부터 EV6 차량에 관해 설명을 듣고는 정작 내가 집으로 몰고 온 차는 보험사에서 렌트해 준 테슬라였다.
멍해서 넋이 나가있던 정신이 돌아오고 찬물을 좀 들이키면서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지 말았어야 했던 차였나 싶은 생각보다는 액땜을 제대로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빨간 차는 정말 아무나 타는 게 아니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