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뛰면 됐지 꼭 그렇게 선정적으로 입어야 해?
달리기, 그것도 장거리 달리기 즉, 마라톤은 이제 온 국민의 생활 스포츠가 된 듯하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3대 메이저 국내 대회 '춘마'(조선일보 주관 춘천 마라톤 대회), '제마'(중앙일보 JTBC 주관 서울 마라톤 대회), '동마'(동아일보 주관 서울 마라톤 대회)의 접수일이 되면 예외 없이 등록접수 서버가 불통이 돼버린다. 접수를 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 역시 흔한 일상이고 여러 매체와 SNS에 주관사 비난이 도배되고 나면 주최 측의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사과문 발표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마라톤 대회의 접수만이 아니다. 달리기에 필수적인 러닝화 제조사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유명 마라톤화의 신제품 출시일에 새 신발을 장만하려는 러너들이 쇄도해서 제품을 주문하는 공식홈페이지 접속 역시 폴코스 완주보다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가까스로 사이트에 접속을 해봐야 대중적인 사이즈는 의례히 매진 상태이고 이늘 러너들 사이에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일명 '되팔이'로 불리는 직업형 웃돈 판매자들이 매크로 등의 불법 프로그램으로 확보한 러닝화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수십만 원에서 원래 가격의 배도 넘는 웃돈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팔아넘긴다. 수요가 공급의 수십 배가 되다 보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런 달리기 열풍에 편승하여 나 역시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데 동네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여 새벽 정모나 '번개' 달리기에 참가해 보면 선수 출신 고수들이나 기록이 좋은 젊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나 같은 신입 회원들을 지도해 준다. 달리는 것은 건강한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제대로 잘하려면 의외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선배 마라토너들은 자기 시간과 비용까지 써가면서 후배들을 가르쳐 주지만 호기심 많은 초보들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을 헤아리지는 못해서 이들 '고수' 러너들을 쫓아다니며 이유도 모르면서 나는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하면서 다 그래야만 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옳은 방법이었다.
이해 못 했지만 따라한 일 첫 번째는 러닝 쇼츠라고 불리는 달리기용 반바지를 민망할 정도로 짧은 것을 입는 것을 따라한 일이다. 러닝 용품점에 가보면 달리기용 쇼츠는 대개 5인치가 일반적이지만 그것은 초보나 입문자들이 주로 사용하고 경험이 많은 선수들일수록 길이가 짧은 3인치 쇼츠를 착용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길이만 3인치가 아니라 심지어 옆은 통풍을 위해 시원하게 트여있는 경우도 있어서 건강하게 그을린 준족의 마라토너가 착용했을 때는 섹시한 허벅지가 힐끗 보이기도 해서 자못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당연히 나 같은 초보는 3인치는 손도 대지 않고 5인치를 집어 든다. 이걸 입고 뛰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 이런 보수적인 길이의 쇼츠를 입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런 걸 왜 입나 싶어서 3인치 쇼츠를 한번 입어보았다.
헐... 달리기가 훨씬 가뿐하고 양다리에 걸리적거리거나 허벅지를 간섭하는 옷자락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5인치를 입었을 때와는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아랫도리가 시원하게 오픈된 느낌으로 달리기 트랙을 돌면서 잘 뛰는 선수들의 반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럼 그렇지, 모두들 3인치짜리 '삼각 빤스'만 한 반바지로 엉덩이와 가운데만 가리고 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삼각 빤스 스타일의 짧고 옆이 터진 러닝 쇼츠 애호가가 되었다.
그다음은 싱글렛이다.
말이 좋아 싱글렛이지 우리가 어려서 여름철 일상복으로 입던 바로 그 '난닝구'이다. 똑같은 난닝구도 부르스 윌리스가 입고 '다이'하도록 '하드'한 경찰로 액션을 펼치면 그럴듯한 의상이 되듯이 난닝구를 입고 달리는 고수급 선수들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기능성 소재로 된 티셔츠를 입고 대회에도 나가고 연습도 했었는데 유난히 기록이 좋은 선수들은 싱글렛을 선호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그들은 한겨울 대회에도 티셔츠를 마다하고 싱글렛 복장으로 달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어깨를 덮는 짧은 반소매의 유무인데 소매가 있을 경우 어깨는 물론 땀이 많이 발산되는 겨드랑이가 옷에 덮인다는 점이 체온에 영향을 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주문한 싱글렛. 난닝구와 똑같은데 소재가 좀 다르고 약간의 디자인 변형을 주었다는 이유로 5만 원대의 사악한 가격이라 심드렁하게 받아서 입었는데... 우와! 정말 난닝구와 똑같은 착용감이었다.
하지만 싱글렛을 입고 달려보니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겨드랑이의 열은 곧바로 공기 중으로 발산되어 버리는지 땀 배출량이 체감될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어깨가 오픈된 것도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달리면서 팔 치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팔과 어깨를 간섭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운동범위가 인상적이었다. 10km쯤 달려보니 싱글렛을 입고 뛸 때와 티셔츠를 입고 뛸 때는 체온의 차이가 분명할 것 같았다. 훨씬 가뿐하고 자유로운 상체의 움직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달리기를 할 때 3인치 쇼츠 빤쓰와 싱글렛 복장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올 가을 접수한 여러 대회에도 이 복장으로 달릴 예정인데 내 기록 향상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달리기에 빠져서 용품을 구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 과감하게 짧고 오픈된 쇼츠와 싱글렛 복장을 추천한다. 달리기는 운동 중에서 가장 간단한 장비를 갖고 경기에 임하는 종목이다.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상하의 한벌과 운동화가 전부다. 짧은 쇼츠와 싱글렛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서 당신의 기록을 단축시키고 열발산과 체온 유지에 도움을 주면서 달리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