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알게 된 달리기의 매력
지금 사는 집은 바로 앞에 탄천이 흐른다.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과 그 주변으로 무성한 수풀, 그리고 산책로 곁을 따라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사를 오고 나서 한동안 저녁마다 탄천에 나가 산책을 했다. 남편과 하루 일과를 공유하며 걷고 있을 때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저 멀리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의 희열이 나에게까지 와 닿았다. 그들의 뜀박질에 왜 내 가슴이 쿵쾅거렸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때마다 달려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남편과 함께 때때로 산책로를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잡생각이 날아간다는 것이다. 마주쳐오는 바람이 내 머리를 타고 넘어갈 때,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잡다한 생각과 우중충한 기분까지 함께 날아간다. 특히나 주변에 땀에 흠뻑 젖어 뛰는 사람들이 많으면 이 기분은 배가된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열심히 뜀박질을 하다 보면 과학적으로는 잘 몰라도 아드레날린이 돈다는 게 지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온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내 호흡과 발과 지면이 닿을 때의 울림이 몸속의 작은 에너지를 솟구치게 한다.
-아빠가 왜 그렇게 달리는 걸 좋아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돼.
기분 좋게 달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꼭 하게 되는 말이다. 왠지 죄책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말. 좀 더 일찍 이 매력을 알았다면 좋았을 걸. 같이 뛸 수 있는 아버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취미는 '달리기'였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시면 저녁 식사 전 늘 복장을 갖춰 입고 나가셨고 봄, 가을의 주말에는 각종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느라 바쁘셨다. 출근용 구두는 밑창을 계속 갈아가며 10년을 넘게 신을 정도로 좀처럼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으셨지만 러닝화에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분이셨다. 매일매일 기록을 재고 온라인 동호회에 공유하는 일을 참 좋아하셨다.
당시 학생이던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앉아서 공부하는 것 밖에 없는 나도 집에 오면 피곤해서 드러눕기 바쁘고 주말이 되면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싫은데 아버지는 왜 집에 오면 달리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왜 몸을 혹사시켜야 하는 거지? 차라리 헬스가 낫지 않나? 폼이라도 나지.
그때 내 눈에 달리기는 그다지 간지 나는 운동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주말이 되면 집 앞 탄천에서 시작해서 한강까지 뛰고 오셨는데 운동과는 담을 쌓은 딸을 보며 종종 혀를 차셨다. 한번 달려보면 푹 빠질 거라고 같이 나가자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드라마 보는 게 낙이던 내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럼 아빠가 속도를 맞춰줄 테니 같이 나가서 걷기라도 하자 하셔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땐… 운동이 너무나 싫었고 아버지와도 그리 친근한 관계는 아니어서 둘이서 보낼 그 시간이 불편했다. 그렇게 한 번을 아버지와 함께 뛰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결국, 그 별거 아닌 것이 나에게 죄책감으로 남을지 그땐 몰랐다. 내가 나이를 먹고 달리는 행위에 흥미를 느끼고 아버지와 함께 뛰고 싶단 마음을 가질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 기회가 영영 없을지는 꿈에도 몰랐고.
그래서 그런지 실컷 달리는 중에도 내 옆을 스쳐가는 아버지 또래의 분들을 보면 가끔 가슴씩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스스로도 너무 청승맞은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자연스레 아버지와 그 옆에서 함께 뛰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자꾸만 우리 부녀는 어떤 대화를 나누며 두 다리를 힘껏 땅에 내디뎠을지. 또 어떤 길을 향해 더 달려볼 수 있었을지가 궁금해져서.
찰나의 순간,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매일 달리는 일에 열심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아쉬운 달리기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