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논문 - '선과 악', '좋음과 나쁨' 2 -
니체가 말하고 있는 ‘귀족적인’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우리 사회의 계급적인 구도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주지된 사실이다.
그가 단순히 계급론을 옹호한다는 시각은 마치 나치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을 탄압하기 위한 논리로 전락시키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고귀한 것, 좋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인 니체가 말하는 노예도덕은 그리스도교의 반란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은 “복수와 증오, 유대적인 증오 – 일찍이 지상에서 유례(類例)가 없던 가장 깊고 숭고한 증오, 즉 이상을 창조하고 가치를 변조하는 증오 – 의 저 나무줄기에서 똑같이 전례가 없는 어떤 것이, 즉 하나의 새로운 사랑이, 모든 종류의 사랑 중에서 가장 깊고 숭고한 사랑이”(51p.) 자라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예수의 등장과 바울이 고안한 그리스도교 교리로 인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증오로부터 시작된 사랑. 이는 언뜻 보면 의아한 구조다. 니체가 말하는 이 증오로부터 시작된 사랑이란 예수의 죽음 이후에 바울이 정립한 그리스도교를 가리킨다.
니체는 예수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완전한 행복이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천국(내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설파했다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 즉 ‘신의 아들’, ‘아버지의 신’, ‘천국’은 모두 심리적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이라 말한다. 예수는 니체의 그 표현대로 위대한 상징주의자인 것이다.
반면에 바울은 예수와는 달리 증오와 증오의 환상과 증오의 냉혹한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는 사회 지배층에 대한 증오를 풀기 위해 예수를 이용했다.
예수를 보통 인간이 아닌 구세주로 만들고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은 지옥에 간다며 겁을 줬다. 또한 영혼불멸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수단으로 성직자들의 위치를 격상시키며 성직자들의 지배에 복종하게끔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고 말았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면 니체가 예수를 옹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니체는 예수를 ‘숭고한 것과 병적인 것과 유치한 것이 기이하게 결합하여 있는 가장 흥미 있는 데카당’이라 보고 있다.
증오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남들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정신은 니체가 보기엔 생리적인 허약함으로 인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정신이다.
‘예수 역시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에게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준 구세주’다. 예수의 사랑의 복음에도 결국 지상의 강력한 자들에 대한 원한이 승화된 형태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 노예의 승리가 이루어진 와중에도 왜 계속 고귀한 것에 대해 떠들어 대는지 묻는 자들에게 답한다. 니체는 유럽이, 더 넓은 맥락에선 동시대인들(지금 현재 우리도 포함인)이 병들었다 진단한다.
귀족의 피에 노예의 피라는 독이 물들어졌고 이 때문에 원한이 창조적인 것이 되었으며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이루어진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고귀한 도덕은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자라난다.
고귀한 도덕은 자신의 바깥을 증오하지 않고 적대적인 외부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적인 기원을 따져보아도 평민을 가리키는 거의 모든 단어는 ‘불행한’, ‘가련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행복에 관해서도 태생이 좋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능동적인 인간이므로 행복이 곧 행동에서 나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민(무력한 자, 억압받는 자)들은 행복을 수동적으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행복은 마취 상태, 마비 상태, 휴식, 평화 등 수동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고귀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솔직하게 살아가지만 원한에 찬 인간은 솔직하지 못하며 곁눈질하는 영혼을 가졌다.
어딘가로 은폐되어 있는 그들의 세계는 소위 영리함이라 말하는(니체의 의미에선 영악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들을 갖고 살아간다.
니체의 고귀한 인간은 머리를 써가며 꾀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적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한다. 비록 그것이 어리석음으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니체의 이러한 귀족적인 것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지면 그것이 그 유명한 ‘초인’이 되는 것이다. 초인은 인간을 초월한 포지션(우치다 타츠루)이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다. 니체의 이러한 도덕의 계보를 추적하는 과정은 결국 니체 사상의 전반적인 정초를 제공한다.
선은 무엇인가. 무엇이 선이라 말해지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의문과 평소에 흘려들었을 관념을 깨부수는 작업. 그것이 니체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