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논문 - ‘선과 악’, ‘좋음과 나쁨’ 1 -
니체에게 있어서 이상주의자란 신이나 이데아와 같은 초감각적인 세계를 참된 실재로 보는 자들이다. 이상주의자들은 확고부동한 이성의 능력을 통해 바라보는 보편성을 열망한다. 그 때문인지 인간 내면의 치부를 은폐하고 도덕의 본래적인 동인과 주도적인 요인, 도덕의 발전을 규정하려는 결정적인 요인을 탐구하려는 것을 막아선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봐야 할 듯하다. 도덕은 철두철미한 이성의 합리적 계산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러한 이성의 능력에 신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못 보던 것을 발견하려고 한 사람들이 니체가 보기에는 영국의 심리학자(흄과 같은)들인 것이다. 도덕은 어떻게 도덕이 될 수 있었는가. 그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도덕의 본질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니체는 ‘선’이라는 개념과 그 유래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심리학자들의 이러한 추론을 인용한다.
원래 비이기적 행위란 그 행위가 고려했던 사람들, 즉 그 행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의 관점에서 찬양되었으며 선한 것으로 불렸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찬양의 기원을 망각하게 되었고 비이기적 행위가 습관적으로 항상 선한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마치 그 행위가 그 자체로 선한 어떤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33p.)
우리는 애초부터 비이기적인 행위일수록 그것이 선하다고 믿어왔다. 선하다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말로 비이기적인 행위는 ‘좋은’ 것일까. ‘좋음’이라는 것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니체는 이 근본적인 지점을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그리스 철학에서도 좋음은 탁월함(arete)로 해석되기도 한다. 좋은 인간이란 탁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는 ergon(기능)이 탁월한 인간을 좋은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이 좋음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최상의 것, 고귀함, 강함, 드높음, 고매함에서 그 좋음의 의미가 드러난다 말한다. 이러한 것은 즉 니체가 거리의 파토스라 말하는 것들이다. 그는 『선악의 저편』에서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57절에서 거리의 파토스란 ‘영혼 자체 내에서 거리를 항상 새롭게 확대하려고 하는 열망, 보다 드높고 보다 희귀하며 보다 멀고 보다 넓으며 보다 포괄적인 상태를 형성하려는 열망’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 높은 지배 종족이 더 낮은 종족인 ‘하층민’에 대해 가지고 잇는 지속적이면서 지배적인 전체적 감정과 근본적 감정, 바로 이것이야말로 ‘좋음 [탁월함]’과 ‘나쁨 [저열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 (35p.)
따라서 ‘좋음’은 어떤 비이기적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적’과 ‘비이기적’의 대립이 우리의 양심에 어떤 압박을 주고 있는 이유는 귀족적 가치판단의 몰락을 계기로 일어난 것이라 니체는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