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철학함'은 무엇인가?

by 김지민


많은 이들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라는 말이나 아니면 철학 없는 소신들이나 행동들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철학은 어딘가 자신만의 지조, 가치관, 삶을 담아내는 수식어로 바뀌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다. 어느 정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철학이 액세서리 정도로 단순히 들고 있으면 좋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만은 보기 힘들 뿐이다.


멋들어져 보이는 말들을 나열하고 이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떠들어대는 것만큼은 내 입장에서 볼 때 참을 수 없어진다. 철학은 적어도 있어 보이는 말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만큼은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정작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난감해진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이 있지만 여기서 그것에 대해 논하기란 시간도 문제고 나의 부족한 역량도 문제다. 때문에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곤혹스러운 것이다. 비록 나는 철학과는 아니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운 철학이라는 것들만 해도 나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이 허다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둔 것들이 꽤나 많았다. 지금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공부들은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중에서 아직까지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학함'이다.


내가 정의하는 '철학함'이란 텍스트를 집요하게 쫓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철학자의 책을 향해 부딪히고 깨지는 것이다. 그들의 말들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수용하고 소화하면서 그들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철학자들의 글들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고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장악하고 이해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이해는 자칫 오독이나 왜곡된 선전으로 내비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때때로 '이해하는 것'이란 말은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장악한다는 말은 어딘가 안심이 된다.


'장악'은 그들을 내 발아래에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악은 표면적인 텍스트 이해를 넘어서 그들의 의중을 심도 있게 관측하는 능력이다. 불교에서도 텍스트, 즉 언어라는 것은 그저 우리가 지은 이름표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그 본질이다. 그러한 본질을 장악해야만 한다.


내게 이러한 장악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사람은 아직도 나에게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이런 플랫폼에서 몰래 글들을 끄적이고 있다는 것이 죄스럽긴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나 스스로 독해를 해보는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미숙하고 텍스트를 읽는 것조차 버겁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철학함에 대해 고민해 보고 철학자들의 생각을 감히 짚어보며 따라가 보려 한다.


첫 번째는 아마 니체가 될 것 같다. 다음으로는 플라톤이나 고대 서양 사상가들, 혹은 전혀 뜬금없는 인물이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