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빛은
벽 모서리를 타고 내려온다.
그날도 그랬다.
도서관 옆 느티나무가
투명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긴 호흡으로 시간을 재워두었다.
기억은 이상하게도
말보다 침묵을 먼저 불러온다.
말해지지 않은 장면들이 더 오래 남고,
마침표 없는 순간들이
빛보다 먼저
가슴을 물들인다.
누군가의 어깨를 스치던 햇살은
지금쯤 어느 도시 유리창 너머로 미끄러져
이름 모를 얼굴들의 뺨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겠지.
찬란한 것은
늘 가장자리에서 익는다.
정면이 아닌,
비껴선 시선 속에서
진실이 제 몸을 드러낸다.
청춘이란
풍경을 감상하던 시간이 아니다.
그 풍경 안에서 서로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을 계절을 새겨 넣은
끝나지 않는 의식이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