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에 관하여 또 욥기(Book of Job)다. 자주 듣지만 늘 새롭다. 몇십 년간 다녔던 교회를 언제부터 안나갔는지 묻지는 않았다. 성경통독은 커녕 짧은 기도문도 가끔 틀리는 날나리 신자인 나서는 그의 해박하고 깊은 식견을 쫓아갈 수 없다. 그는 이제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얘기가 끝나자 내가 그랬다. "있잖아. 다큐멘터리에서 중남미의 암살자(Sicario)와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 몇 명을 죽였대더라... 아무튼 25살이라고 하던데 총을 쥔채 인터뷰하다가 커텐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있었어. 그러면서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오늘 일하러 가서 죽을 수도 있고... 그런데 내겐 이제 아들도 있는데 이렇게 살게 할 수는 없다." 라고 하더라. 그 시선이 조그만 자전거를 타는 꼬마에 머물던 데 아들인것 같았어. 그 순간만큼은 아들이 그에게는 신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2. 악마에 관하여 이슬람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돼서 한동안 빠졌었는데 요즘은 중남미다. 그렇게 혼자만의 여행을 한다. 책과 동영상 그리고 검색을 통해 돌아보는데 중남미 여행은 아프다. 가난과 범죄를 빼놓을 수 없으니 다큐멘터리 영상은 침울하다. 마약 카르텔의 두목이 인터뷰 말미를 이 말로 끝맺었다. "악마의 가장 오래된 계략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겁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왜 이 말을 했을까?'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말이어서 찾아봤다. 故황현산 교수의 유작 <사소한 부탁>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 어느 예리한 설교자의 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전에 읽었는데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범죄자도, 지성인도 아는 악마의 계략. 남미에도 한국에도 소환되는 악마. 언제나 인간 곁에 바짝 다가앉아 속삭이는 악마. 중남미 역사에도 창세기부터 등장하는 악마의 존재 방식은 실로 변화무쌍하고, 수명은 길어도 너무 길다.
3. 총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1942~)라는 유명한 독일 영화감독이 있는데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만큼이나 기행이 남달랐다.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만한 배우가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이자 역시 광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클라우스 킨스키(1926~1991)다. 이런 두 사람이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으면서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밀림의 열악한 촬영 환경과 계속되는 다툼으로 클라우스 킨스키가 중간에 영화를 그만두겠다며 촬영장을 떠나려 보트를 타자, 헤어초크가 그 뒤에 대고 "내 텐트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당신이 여기를 떠나면 난 그 물건을 당신에게 쏠 것이고, 마지막 남은 한 발로 내 머리를 쏠 테요"라고 말했다. 이에 아무리 광분한 클라우스 킨스키도 남아서 마저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출간되지 않은 헤어조크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책(Conquest of the Useless)를 찾아 읽을 정도인 친구가 이 얘기를 해줬다. 나는 오래전 러시아 선원들이 들여오는 권총을 사러 부산에 갔었다가 못사고 돌아온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가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냥.... 잘 모르겠네. 아마 총을 만졌을 때의 그 서늘한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 그냥..... "